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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홈즈

어른이 되는 과정,  내가 찾는 내 방

방이든, 집이든 자기가 있을 곳을 찾아서 집을 나가야 될 때가 되면

자식도 다 키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이때부터 본격적인 시작이긴 하지만, 집을 나가는 자식의 트렁크를 보면 서운함에 눈물도 나고

눈물이 나는 게 엄마 마음이다.

https://blog.daum.net/sesmam87/112


구미 선수단 숙소에 수민이를 내려놓고 수원으로 올라오면서 가방 두 개에 꾸려진 막내의 단촐한 운동복과

운동선수 같지 않게 강단없어 보이는 어린 아기같은 걸 두고 오는 게 마음에 걸려서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며

울고, 경부 고속도로를 달리며 또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었다.


운동선수 특채로 무려 4년 장학생에 빛나는 우리 막내는 집이 선수단 숙소였다.

살 집을 구하는 수고스러움은 없었지만, 층층시하같은 윗 선배들부터, 함께 방을 써야 되는

룸메가 어떤 성격인지, 랜덤같은 조건에서 4년을 살아내야 되는 타지에서의 생활이 스무살 짜리에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을것이다.


집을 떠나서 사는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을 성장시킨다.




2018년도 교토에 건너가기 전, 나도 방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학교의 기숙사는 교토 역 근처 만숀이었기 때문에, 학교까지 전철을 타야 해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집을 구하고 싶었고, 내가 살 곳은 내가 찾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낸

https://www.h-nw.jp/ 교토 하우스네트워크라는 회사를 통해서 걸어서 학교까지 다닐 수 있는

만숀을 찾아냈다.

내가 살 집을 조건에 맞게 찾아주던 담당자 이름은 대마(對馬)-つしま 対馬 쓰시마상이었다.

쓰시마상과 하루에도 서너 번씩 메일을 주고 받으며, 일본에서 십년이상 살다 온 둘째 딸의 학교 친구

엄마와 상의를 하가며, 집을 구했다.

아니 방을 구했다.


일본의 집은, 보증보험료, 화재 보험료, 보증금에 해당되는 しききん(敷金) 시키킹,

집을 빌려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주는 れいきん[礼金] 레이킹 - 돌려받지 못하는 돈이다.

열쇠 교체비(열쇠를 사용하는 집이 많아서 새 집을 구하면 열쇠 교체비용을 내기도 한다)등

보증 서 줄 사람이 있으면 보증보험료도 아낄 수는 있지만

수수료가 여러가지 이름으로 붙어서 초기 비용이 우리나라보다 더 들어가는 편이다.


물론 일본의 모든 집에 しききん(敷金) 시키킹과 れいきん[礼金] 레이킹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둘 다 없는 집도 있긴 하다.


우리나라식으로 생각하면 보증금 しききん (敷金) 시키킹은 집을 해약하고 나올 때

모두 돌려 받을 수 있는 돈이지만, 일본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집을 빼겠다고 부동산회사 홈피에 신청을 하면


解約受付を受理いたしました。

弊社管理物件をご利用いただき、誠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当受付をもちまして、新規のご入居者様の募集を開始いたします。
キャンセルは原則できませんので、ご了承ください。

해약 접수를 수리했습니다. 우리 회사 관리 물건을 이용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해당 접수로써 신규 입거자 모집을 개시하겠습니다.

캔슬은 원칙적으로 할 수 없으니 그렇게 알아주십쇼.


친절하나, 곱씹으면 싸가지없는 문구가 쭈욱 딸려 나오는 안내문구를 확인하고 나면 관리회사에서

마지막 집의 상태를 보러 오는

たちあい[立(ち)会い- 타치아이(짐을 다 뺀 후 관리화사 직원이 나와서 집상태를 체크하는 과정이 남는다.


이때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 지, 깎이면 얼마가 깎이는지가 결정이 되는데

왕 싸가지, 재수탱이 담당자가 나와서

곰팡이가 많아서 약품 처리 비용이 많이 들거라며, 나의 보증금 조용히 3만 9천엔을 포기시켰다.

"잘 먹고 잘 살아라, 하우스네트워크"




둘째가 갑자기 살 던 집을 빼고 다시 집을 구해 이사를 해야 했다.

"엄마 물이 새고 공사를 하는 지 아침부터 쿵쿵거리고 무서워"

건물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집을 팔았고, 새로 인수한 사람은 곧바로 공사에 들어가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건물을 때려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건물 공사를 시작하니, 이사를 나가달라는 명령문 같은 공고문을 딸이 사진으로 보내왔다.

훅 들어오는 본론에는 '이사'나가달라는 말이 요점이었고, 번거롭게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애초에 우리나라말에 없는 말처럼,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봉천동 샤로수길 원룸을 얻어 줄 때는 내가 함께 다니며 집을 봐줬지만

느닷없는이사는 혼자 할 수 밖에 없어서, 오전 알바끝나고 학교 다녀와서 공인중개사와 집을

보러 다니는 겁나 바쁜 생활을 한 후에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전세 보증금을 집주인에게서 돌려 받고, 새로운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지불하고, 친구 차를 빌려서 이삿짐을

나르고, 당근에서 좌식 쇼파를 사고,행거를 사서 새 집에 몰아 넣고 딸의 이사는 결국 눈물로 끝이 났다.


"엄마, 행거가 택시에 안 들어갈 것 같아. 판 사람이 택시에 들어갈거라고 했는데 크고 무겁고 아 진짜 짜증 나"


신림동 어디 쯤에서 전화를 건 딸은 길에서 행거를 들고 울면서 전화를 한 걸로 이사의 고달픔을 풀어냈다.


원룸 이사든, 서른 평 넘는 집의 이사든 세상의 모든 이사는 힘든 일이다.




쾰른 음악대학에 유학 중인 딸의 친구는 독일에서 이사를 한 번 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알아보고 가전가구는 새로 들어 올 사람에게 넘기고,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해가며 독일 이사를 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힘든 데 독일 이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코로나만 아니면 독일로 날라가서 이사를 도와줬을 든든한 엄마가 있었으나, 혼자 이사를 다하고

집도 취향껏 꾸민 아이가, 남의 자식이지만 참 대단하다 싶었다.


우리 아이도 원룸 이사 후에 "오늘의 집"을 참고해가며 꾸몄다고 완성본의 사진을 보내왔다.


사람만 사진빨이 있는 게 아니라 집도 사진빨이라는게 있어서 사진으로 본 딸의 원룸은 그럴싸했고

전에 살던 집보다 잠도 잘 잤다고 했다.


사진 속에 맥주 네 캔이 보여 사진 찍기용이었냐 물었더니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혼자 다 마시고 잤어"


집이 편해서 잘 잤는지, 맥주 네 캔 덕분에 잘 잤는지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싶지만

이사 후에 정리를 다 해놓고 혼자 마시는 맥주가 너무 맛있더라며

길에서 행거를 들고 울던 딸은 이제 웃으면서 이사 이야기를 했다.


방이든, 집이든 자기가 있을 곳을 찾아서 집을 나가야 될 때가 되면

자식도 다 키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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