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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과 죽는 일

나 집이 걱정했어. 만나서 반갑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님이 명언을 남기셨지만, 살아보니 삶과 죽음은 동전 앞 뒷면처럼 세트로 이루어져 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살아가는 것은 나의 이야기, 죽음은 남의 이야기 같았으나

오십 넘고 보니 사는 것도 내 이야기, 죽는 것도 내 이야기처럼 조금씩 거리를 좁혀 가고 있는 것 같다.


승범이 취직하는 것도 봐야 되고, 유학 간다는 둘째 준비도 해줘야 되고 수민이 스카우트되는 곳에

도장 찍는 걸 봐야 되고 남편이랑 함께 여행도 가야 되고 할 일이 너무 많아 아직 죽을 수는 없고

한참 뒤에 가고 싶지만 사람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가 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이번에는 쓰려고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늘 아까운 마음을 갖게 하겠지만, 우리 아버지도 그 편에 속한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새로 하셨던 임플란트를 얼마 쓰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슬퍼하셨지만, 나는 아버지가 은진이 서울대 합격하는 것도 못 보고 돌아가셔서 속 상하다.

이년만 참으시지, 뭐 그래도 아버지 나이 일흔넷이었겠구나




지지난주, 성당에 한 시간 전에 입당을 해서 교중미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께서

어느 할머니에게 다가가 아주 반갑다는 말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집이, 걱정했어. 만나서 반갑다

침묵이 누르고 있던 교중미사 전 성당 안에서 할머니의 말씀은 폭죽처럼 팡하고 터졌다.

그동안 보이지 않으셨던 할머니가 다시 나와 앉아 계시니 얼마나 반가웠으면

미사 전 엄숙함만 가득 찬 성당 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날려버리셨을까!

노인들이 많은 우리 성당은 늘 나오시던 노인 분이 교중 미사에서 보이지 않으면 돌아가셨거나

요양병원에 계시거나, 입원하셨거나 셋 중 하나이다.

인간의 말년은 사지선다도 아니고 삼지 선다면 끝이다.


다시 만난 할머니가 반가워, 그분이 돌아가시지 않고 다시 나와 앉아 계시는 것이 반가워

말의 꽃이, 언어의 폭죽이 터진 것이다.

노인들이 많이 계신 우리 성당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항상 본인이 앉으셨던 자리만 고집하시는 편이라

매주 미사 때 고정석처럼 본인 자리를 지키시는 분들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가 어느 한 주 고정석에 다른 분이 앉기 시작하면, 그건 일이 났단 얘기가 되는데

삼지선 다중, 3번까지만 유추할 수 있는 상황에서 4번 조금 아프셨지만 다시 일어나셨다는

상황을 보여 주셨으니,

"나 집이 걱정했어. 만나서 반갑다"는 말씀이 폭죽처럼 터질 수밖에 없었다.

성당 안의 침묵을 잠시 깼으면 어떠하리, 어차피 죽는 게 두려워서 나온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성전 안이니

떠드는 사람 누구라고 이름 적지 않아도 예수님도 성모님도 혼내지 않으셨을 것이다.


몇 주 전, 막내 동서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조문을 다녀왔다.

산 사람의 축제인 결혼식장은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장에 가도 낯설지 않으나

죽은 사람의 잔치인 장례식장은 아는 사람일수록 더욱 낯설다.


검은 옷을 꺼내 입고 봉투에 돈을 넣고 절을 하고 적당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주는 대로 밥을 먹고 잠시 앉아 있다가 나오는 곳이지만 장례식은 익숙하지 않다.



일본 영화 바닷 마을 다이어리에 나오는 한 장면


15년 전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세 자매의 모습이다.

일본의 장례식 복장은 성별 관계없이 검은 옷이면 되고, 스타킹은 검정 중에서도 살이 비치는

밝은 검은색을 신어야 한다.


부조금은 너무 새 돈을 넣으면 마치 그분이 돌아가시기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헌 지폐를 넣거나, 새 돈일 경우에는 반으로 한 번 접어서 자국을 남긴 다음 넣거나 한다.

부조금도 나중에 일부를 돌려받거나 일정 금액의 답례품으로 받기 때문에

상갓집에 방문해서 돌아올 때 소금과 함께 답례품 카탈로그를 받아와서 주소를 쓰고, 원하는

답례품에 표시를 해서 보내면 받을 수 있고, 이를 こうでんがえし [香典返し] 코우덴 가에시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화장이 끝나면 유골이 수습된 유골함을 받지만 일본은 화장이 끝난 고인의 뼈를 유족이

젓가락으로 집어서 유골을 수습하시는 분께 건네면 수골 하시는 분이 젓가락으로 건네받아

유골함에 넣기 때문에 젓가락과 젓가락이 맞닿는 행동은 수골 과정을 연상시키므로, 반찬 등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식탁 예절이라고 교토 YMCA선생님에게 들었었다.


젓가락과 젓가락이 부딪치는 것들, 깻잎 뗄 때 그럴 때 절대로 도와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천주교 신자로 세례 받은 지가 이십 년이 넘었다.

대단한 걸 실천하고 사는 신자는 아니지만, 어느 해서부터인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기도를

하는 걸 해드리기로 했다.

영성체 후에 잠시의 짧은 시간이지만 돌아가신 분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잠시라도 평화가 한숨처럼 스미기를 바랐다.

마음속으로 내 신앙생활의 실천으로 삼았던 일이니만큼 나 자신과 했던 약속처럼 지키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돌아가신 분을 위한 기도는 끝이 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이의 죽음, 모르는 이의 죽음, 쓸쓸한 죽음, 대단한 죽음

하루라도 그치지 않을 때가 없으니


사는 일과 죽는 일은 같다는 것을 알게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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