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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댁 Mar 19. 2019

너를 만나기 60일 전

정말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사실 나는 그렇게 커피를 좋아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런데 왠지,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얄팍하다느니 간사하다느니 그런 말을 덧붙여가면서 하루에 커피 한잔 이상은 꼭 마시려고 애를 쓰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나 스스로도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나는 31주 차 4일을 보내고 있는 후반대의 임산부이다. 임신을 해본 여자이거나 그 누군가의 남편이거나 혹은 친인척을 통해 겪어보았다면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임신 후 아가의 성별은 보통 16주에서 늦으면 20주 안팎이 되면 보통은 산부인과에서 담당 선생님의 힌트나 조언을 통해 바로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들이라면 ‘크면 축구를 잘하겠네요’라던지, 나 같은 경우에는 ‘핑크가 잘 어울리는 아이네요’라는 등의 뻔한 힌트.


그렇다, 나는 31주 4일 차의 딸인 태아를 배에 품고 있는 만삭에 가까운 산모이다. 하루에도 얘가 딸이 맞긴 한 건지 어쩌면 그렇게 내 배를 축구공 차듯 아프게도 걷어차는 느낌이 하루에도 뻥뻥 뻥 수십 번도 더 드는지, 거기다 명치는 왜 이렇게 멍든 것처럼 아프고 답답한지, 소화는 또 왜 이렇게 안 돼서 하루에도 수십수백 번을 이렇게 괴로울 거면 차라리 빨리 낳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지.... 주위에 이미 아이를 낳은 엄마이거나 산모인 친구들은 내가 이런 말들로 하소연을 하면 모두 이렇게 조언한다.


“야, 그래도 애는 뱃속에 있을 때가 진짜 행복한 거다 너? 나중에 애기 나오고 나면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울어재끼고 내가 똥 치우고 밥 주는 기계가 된 거 같더라니까?”


그런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참 임신이 정말 누군가의 말대로 축복이 맞긴 한 건지, 누가 그런 축복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로 여자에게 짊어지기 버거운 무거운 짐을 지어준 건지, 모든 엄마들이 전부 자신의 살과 몸매를 희생해가며 낳고 당연한 듯 키우고 있으니 내가 이런 하소연하는 것쯤이야 너무나 하찮은 걱정이고 고민으로만 치부가 되는 것인지.... 그런 생각들을 하고 나면 친구들에게 혹은 친정엄마에게 털어놓으며 하소연하던 내 입을 그냥 꾹 닫아버리게 된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며 한숨 쉬는 내 친구 혹은 동생들을 귀여운 듯이, 혹은 하찮은 듯이 대해버리겠지...? 하아.... 깊은 한숨이 푹 흘러나온다.


소화가 안 된다는 핑계로 답답한 집을 나와 근처 카페에서 따뜻한 밀크티를 한잔 시키고 앉아 다이어리를 정리해본다. 20대 초반 때부터 꾸준히 일기처럼 써오던 일정 정리장. 이것만큼은 아가 엄마가 되어도 놓치고 싶지 않다. 뭔가 먼 훗날의 내가 나를 돌아보면서 꼼꼼히 기록하고 기억해두는 습관을 잊지 않도록. 그러나 이것도 곧 일분이 멀다 하고 알 수도 없는 이유로 울어재끼고 고막을 쨍쨍하게 강타할 아가의 울음소리에 포기해버려야 할지도 모르는 취미 중 하나로 전락해버릴지도 모르지. 아는 언니들이 말하기를, 집 근처 카페 나가는 것도 힘들어진다는 독박 육아. 그 고충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아기를 낳기 한 달 전부터는 움직이기 힘들어도 집 근처라도 어디든 부지런히 다닐걸 그랬다며 호소한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괜한 조바심이 들었다. 내가 너무도 부정적인 이야기만 잔뜩 들어와선 이렇게 명치가 답답해질 정도로 매일매일 체해있는 건 아닐까? 정말 아가를 갖고 낳고 기르는 건 너무 힘든 고충 일 뿐인 걸까? 그 고충을 당연한 듯 길러온 우리 엄마들은 정말 신 같은 존재인 것일까, 그래서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는 그렇게 범국민적으로 널리 널리 불렸던 걸까? 하루에도 수십수백 번씩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들이 내 위와 뇌를 잔인하게 짓누른다. 그래, 그런 거야.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 너만 특별하고 너만 괴로운 게 아니야. 그러니까 약한 소리 말고 더 단단하게 살아가. 모두가 전부 다 그런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 약한 소리 하지 마. 이런 생각들이 내 뇌를 누르면 내 명치까지 숨이 눌린 것처럼 멍든 듯이 아프게 막힌다.


아, 엄마가 되는 길은 정말이지 멀고도 험하구나.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봐. 서른 하고도 사 년이 지나가는 이 세월에도 이런 탄식을 하고 있다니. 나보다도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 굳건하게 살아가는 동생들이자 인생 선배들이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다.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순항하게 될까, 아니면 이대로 명치가 숨에 막혀 절규하듯이 침몰하게 되어버릴까? 하루하루가 밝은 마음가짐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노력하는 나에게도 결국 이런 시련이 찾아오는구나 싶다.


하늘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고 했는가, 그렇다면 나도 이 시련을 잘 견뎌내어 내 2세를 이 세상에서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도록 모진 비바람을 막아주고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나의 사랑하는 그이와 함께?


그래도 여전히 무서운 건 사실이야, 무서운 걸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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