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새댁 Apr 28. 2019

성장

37주 3일, 너를 기다려온 날들



나 딸이 갖고 싶어




나의 말에 출근하려 준비하던 신랑이 왠 엉뚱한 소리를 하나 싶은 의아한 표정으로 말해왔다.


“이미 가졌잖아?”

“배속에 있는 딸 말고, 배 밖으로 나와있는 딸”


날씨가 부쩍 따뜻해져서 그런지 집 앞의 놀이터에 짧은 머리를 양갈래로 귀엽게 따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아가들이 눈에 띄었다. 평소에 말이 많은 편이라고 종종 들어오던 나는 요즘 부쩍 내 편인 내 딸을 어서 뱃속에서 끄집어내서 같이 손을 잡고 쫑알쫑알 이런저런 수다들을 늘어놓고 싶어 졌다. 아마도 유튜브에서 본 아기자기한 출산 브이로그들 덕분이리라.


예전엔 지나가는 조그마한 아가들만 봐도 무섭고 두렵고 마냥 남의 일인 것만 같았는데 요즘 들어 태동도 크고 내 아랫배를 묵직하게 누르는 태아가 더 이상은 두렵지 않아 졌다. 어차피 겪어야 할 태동이고 출산과정이라면, 이제는 더 이상 회피하거나 무서워하지 말고 차라리 최대한 빨리 부딪혀서 아가를 빨리 성장시키고 싶어 졌다. 그리고 남들 못지않게 내 아가를 예쁘고 튼튼하고 사랑스럽게 키우고 싶어 졌다.


발로 힘차게 내 뱃가죽을 밀어내는 느낌이 들 때마다 아프고 당겨서 불편한 느낌에 바로 자리에서 주저앉거나 누워서 하루 종일 거의 일어나지 않다시피하던 나는 요즘 막달 유도 출산 운동을 한답시고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꼭 걸으려고 노력하고 밤에는 짐볼 운동도 열심히 챙겨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도 갖고 싶어, 내가 꾸며줄 수 있는 평생  날 배신하지 않을 나의 편. 신랑을 더 닮았을까 날 더 닮았을까? 신랑을 닮아 좀 예민한 편일까 아니면 날 닮아서 털털한 편일까? 밥은 잘 먹는 편일까 식성은 까다로운 편일까? 많이 우는 편일까 조용해서 거저 키웠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얌전한 아이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긍정적인 설렘으로 바뀌는 나의 멘탈에 감사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동안 느껴오던 우울증의 감정이 기폭제가 되어 바닥까지 더 깊게 가라앉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너무 귀여워!”


유튜브를 보다 보면 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 있다. 초보 엄마든 베테랑인 둘째 셋째를 가진 엄마든 그녀의 아가는 오롯이 엄마가 요리해서 주는 이유식을 입에 알뜰하게 밀어 넣으며 병아리처럼 오물오물 씹어 목 뒤로 꿀꺽 삼킨다. 아가는 그저 엄마가 주는 음식과 말들이 그를 만드는 모든 것의 자양분이 된다. 그녀가 있어야만 밥도 먹고 응가도 하고 땀도 닦고 씻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아가에게는 그녀가 온 세상이며 우주인 셈이다.


임신으로 인해 오롯이 나만 바라보며 나한테만 기댈 수밖에 없는 날 닮은 작은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어찌 나에게 찾아온 기적의 봄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아가로 인해 울적하고 괴로웠던 나의 신체적 변화로 인한 우울증이 마법처럼 긍정의 감사함으로 탈바꿈되었다.


너로 인해 우울했다가, 너로 인해 행복해지는구나


어쩌면 내가 너의 우주가 아니라 네가 나의 우주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랑해 금동아, 어서 건강하게 울음 터트리며 엄마와 아빠의 품에 앙증맞게 안겨주길 바라



나의 우주, 나의 아가
너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엄마는 걸을게!




매거진의 이전글 봄과 여름 사이 그 어디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