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너무 좋았어!
“등이랑 다리 중에 어디로 해드릴까요?”
테라피 직원의 물음에 내 눈은 동그래졌다. 조리원 오기 전에 간단하게 찾아본 블로그의 글 대로라면 테라피는 전신 마사지 같은 느낌이었는데, 직원의 말은 이번 산전 테라피는 1차와 2차로 나뉘는데 2차 테라피에서는 등과 다리 마사지를 모두 진행해주지만 1차는 서비스로 들어가는 거라서 등과 다리 중에 더 아픈 곳 한 군데만 받는 거라고 한다. 아 어쩌지 등 허리 어깨 목 골반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안 불편한 곳이 하나도 없는데.... 잠시 고민에 빠져버린 나를 보며 기다리는 눈빛을 보내는 직원의 눈치를 슬쩍 보다가 소심한 듯 물었다.
“보통 여기 테라피 받으러 오는 산모들은 등을 많이 받나요, 다리를 많이 받나요?”
“보통은 배가 많이 무거워져서 하중이 다리로 많이 쏠리니까, 대부분은 다리를 많이 받으세요”
“다들 그렇게 한다니 그럼 저도 다리로 해주세요”
“네 준비해 드릴게요”
그 말과 동시에 탈의하고 입을 간단한 속옷을 준 여자 직원은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커튼을 쳐주고 나갔다. 나는 옷을 신속하게 탈의하고 입고 온 속옷을 마사지용 속옷으로 갈아입은 뒤 직원이 손짓으로 가리켰던 마사지 베드에 슬쩍 누웠다. 오일로 마사지를 하는지 베드에는 매끄러운 판이 깔려있었고 바닥에 온열 패드를 대놓았는지 맨 살이 닿아도 따뜻하고 기분 좋은 온도의 감촉이 느껴졌다. “다 갈아입었어요”하니 바로 베드로 입장 한 직원이 입에 마스크를 하고 손에는 수건 몇 장을 든 뒤 나의 아가가 잠들어 있는 배가 눌리지 않도록 죽부인 모양의 따뜻한 배게 인형을 끌어안고 눕게 했다. 그리곤 먼저 내 발을 닦고 시작해주겠다고 한 뒤 익숙한 듯이 왠지 수줍어지는 나의 발을 잡아끌어 가지고 들어온 수건으로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라벤더 향이 포근했다. 수건을 따뜻한 라벤더 오일이 섞인 물로 적셔온 모양이었다. 3월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은근히 날씨가 추웠던 탓에 차가웠던 발이 따뜻하고 향기로운 수건으로 감싸 지자 순간적으로 눈이 부드럽게 감겨내렸다. 평소에 한 번씩 내 말에 무심하게 행동하는 신랑에게 “자기는 너무 무심해!”하고 투정 부렸던 내 말들이 순간 미안해졌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니.. 직장 여자 직원에게 ‘부인을 평생 아주머니로 두고 싶다면 그냥 데리고 사시고, 여자로 곁에 두고 싶다면 조리원 데려가셔서 마사지랑 다 챙겨 받게 하셔야 해요! 안 그러면 여자는 아기 낳고 바로 몸 다 망가져요!’라는 조언을 듣자마자 내 손목을 잡고 바로 조리원에 가서 2주 조리 등록하고 예약금을 그 자리에서 당장 걸어 준 신랑의 마음이 순간 고맙게 느껴졌다. 물론 그 여직원에게도 감사했고 :)
발이 다 닦이자마자 조리원 산하의 테라피 샵 직원이 나에게 아가의 태명과 개월 수 등을 물어보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손으로는 능숙하게 발바닥을 마사지해 주는데 묘하게 간지러운 듯 찌릿찌릿했던 발이 점점 혈액순환이 되는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밤새 뭉쳐서 주무르고 주물러도 도통 풀리지 않고 저리던 종아리도 오일을 발라 팔로 부드럽게 밀어주고 풀어주는데 정말 행복감이 두피 끝까지 밀려들어와 순간 ‘아 아가 갖기를 잘했네, 내가 아가 덕분에 호강을 다 하네’라는 감사함까지 들었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등, 허리가 다리보다 더 아팠었는데... 등뿐만 아니라 다리도 정말 꾸준히 말도 못 하게 아팠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뭉쳐서 돌만큼 단단해져 버린 알이 박힌 종아리가 어느 정도 흐물흐물 해졌을 무렵, 마사지하던 손과 팔이 허벅지로 올라왔는데 허벅지 마사지는 또 어찌나 아팠는지! 평소에 허벅지에 근육이 잘 생기는 타입이라 자주 주물러 줘야 하는데도 팔도 아프고 어깨도 아파서 혼자선 주무르지 못하고 신랑에게 부탁해서 시킨 폼롤러로 셀프 마사지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시원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 내게 이번 테라피는 정말 혁명에 가까운 것이었다. 물론! 다른 마사지에 비해 특별하고 소름 돋게 실력이 좋았다는 게 아니다, 나도 결혼 전에는 친구들과 마사지 샵도 가서 받아보고 친정에 있는 전신 마사지 기계에서 마사지도 자주 받아보았기 때문이다. 그 마사지들이랑 기술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나의 상태가 아가로 인해서 면역력도 많이 떨어져 있는 데다가 아가를 품기 위해 뼈 마디들과 자세들이 많이 안 좋아져 있는 탓에 이런 마사지들이 하나하나 감동적인 것이다. 나름 요가 지도자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는지라 몸의 감각의 변화에 대해선 예민한 편이므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동의 이유는 분명 아가로 인해 변해버린 내 몸 탓이리라.
조리원에서 등록 서비스로 제공해준다는 테라피 문자를 처음 받았을 때엔 ‘서비스? 요즘 움직이는 것도 다 귀찮고 마냥 누워만 있고 싶고 침대랑 한 몸 돼서 쉬고만 싶어, 어차피 서비스면 무료인데 그냥 가지 말까? 다 귀찮아!’라는 생각이었는데, 신랑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까지 복잡 미묘하게 다 느껴지는 지금의 간사한 나를 보면서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정말 너무 좋아! 내 몸이 동파육이 되어버린 느낌이야!’라는 생각이 든다. 말랑말랑하고 수저로만 눌러도 녹아버릴 것 같은 그 부드러움의 최강자 동파육 말이다. 온몸 구석구석 다 뭉쳐서 단단하고 아프게만 느껴지던 내 몸이 이렇게 살살 녹아내리는 것 같다니, 한 번이 아니라 열 번 스무 번 백번이라도 받고 싶어! 하나도 안 귀찮아! 그때의 귀찮아하던 나에게 돌아가서 입을 때찌때찌 해줘야겠어!
그리고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나처럼 임신에 대해 전혀 무지하고 모르는 산모가 있다면, 그리고 그녀에게 나 같은 테라피 서비스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장 달려가서 백번 천 번 꼭 받아야만 한다고 타일러주고 싶다.
여러분, 산전 산후 테라피 꼭 받으세요! 안 받으면 후회해요!
그렇게 내 몸을 동파육으로 만들어주고 아가에게 배를 어루만지면서 태담도 자주 해주시라는 꿀팁을 준 테라피 직원의 따뜻한 조언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어깨와 목도 아프다는 날 위해 한번 오일로 부드럽게 어깨와 목, 두피까지 어루만져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마사지는 끝이 났다. 내 몸에 묻은 오일을 닦아주고 따뜻한 손으로 바디 로션을 발라준 뒤,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혈액순환에 좋은 따뜻한 티를 제공해주겠다는 말과 함께 직원은 테라피 실을 나갔다. 다리가 살살 녹아내린 듯이 풀려서 일어나서 걷는 것도 아깝게 느껴질 정도의 몸을 살살 일으켜 옷을 갈아입고 테라피 실을 나섰다.
코 끝으로 느껴지는 향긋하고 따뜻한 촉촉함이 테라피실에 더 오래 머무르고 싶게끔 만들었다. 나와서 서비스를 제공받았다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는데 그동안 멍든 듯이 꽉꽉 막혀 답답했던 명치가 순간적으로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가에게 밥줄이 되어 줄 가슴도 무척 부풀어 오르고, 아가를 품는 틀이 되어주는 배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탓에 그 사이에 낀 명치만 고래 등에 터지는 새우처럼 임신 기간인 9개월 동안 내내 명치 부분 갈비뼈가 멍든 듯이 아파왔다. 아가로 인해 위가 눌려서 9개월 동안 내내 체한 느낌으로 식사도 버겁고, 아가의 집이 장을 눌러서 밤새 탈도 자주 나고 화장실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던 내 몸에 아주 큰 선물을 준 느낌이었다. 몸이 행복하다는 느낌을 9개월 만에 처음 느껴본 것 같았다. 이제 한 달 뒤, 출산을 한 달 앞두고 2차 테라피가 또 진행된다고 한다. 이것도 서비스라 일정을 놓치면 다시 제공은 불가능하다고 하니 어떤 급한 일정이 생기더라도 꼭 시간을 억지로라도 내서 참석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이건 모두 나를 위해서, 내가 컨디션이 좋으면 내 아가와 또 신랑에게도 모두 영향을 미칠 테니까!
꿈같은 한 시간을 보내고 한결 행복해진 몸으로 집에 돌아와 신랑의 볼에 뽀뽀를 하고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하니 어리둥절한 얼굴이 된다. “왜?”라고 물어오는 그에게 “그런 게 있어”하고 신랑이 좋아하는 오리 고기를 구웠다. 그래 다들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이렇게 한 번씩 해소하고 사나 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