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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댁 Mar 31. 2019

낮과 밤 같은 기분의 온도차

보이는 것과 내 마음은 다른가 봐


오늘은 만삭 사진을 촬영했다. 사실 이 촬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심 고민을 많이 했다.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너는 배 많이 안 나왔어, 임산부 안 같아~라고 해주는 말들이 왜 그렇게 와 닿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나날이 작아지는 것만 같은 자신감의 크기. 그나마 모델 활동을 했던 과거가 있어 나의 자신감과는 별개로 카메라 앞에서는 활짝 웃고 밝은 모습들을 남겼지만, 사실 아직도 볼록 나온 내 배가 찍힌 모습을 보는 게 많이 낯설다.


처음에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사진을 촬영해주는 포토그래퍼분이 배를 드러내는 옷을 입고 만삭 사진을 찍자고 했을 때, 손사래를 치며 “저는 배는 안 드러내고 싶어요! 차라리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배를 드러낼래요”했지만 나 같은 마른 산모에게만 추천하는 컨셉이라며 강하게 요구하는 포토그래퍼분의 말과 신랑도 이때 아니면 언제 찍어, 그냥 찍어하는 뉘앙스의 표현을 해서 애써 괜찮은 듯 찍어 남겼지만 사진이 아무리 예쁘게 나왔어도 영 어색하기만 하고 낯설었다. 전공도 연기 전공에 모델로 활동했던 내가 왜 이렇게 갑자기 쫄보같이 작은 심장을 가지게 되어버렸을까, 아직도 여전히 카메라 앞은 너무나도 행복하기만 한데 말이다. 습관이 되어버린 촬영을 할 때 외에 엄마로서의 나는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소심한 여자인가 보다.


아직 첫째 아기이고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어서 겁나는 거겠지? 내 마음인데도 아침의 내 마음과 저녁의 내 마음이 하늘과 땅 차이같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그러길 바라본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산모들이 다 그렇지 않은데 나만 이렇게 소심 해지는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많은 산모들이 처음 아가를 가졌을 땐 모두 나 같은 작아진 자신감으로 낯설게 세상을 대하게 되지 않았을까? 여자로서의 삶은 어느 정도 익숙하겠지만, 엄마로서의 삶은 꼭 다시 태어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처럼 낯설고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나 자다가 커진 아가 집으로 인해 방광이 자극되어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날 때, 예전 같았으면 복근의 힘으로 벌떡 몸을 일으켜 자연스럽게 상체를 세웠을 텐데 지금은 옆으로 구르다시피 비스듬히 일어나서 몸을 세워야만한다. 한껏 부푼 아랫배가 유연하게 상체를 일으키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익숙했던 일상을 낯설게 느껴지도록 하는 에피소드는 잠에서 깨어나 일어났을 때뿐만은 아니다. 애기를 갖기 전에는 하루 종일 깨어 활기차게 움직여도 집에 가서 잠들 때 잠이 안 와서 억지로 잠들어야 할 만큼 체력이 좋았는데, 요즘은 하루에도 네다섯 번씩 컴퓨터가 강제 종료되는 것처럼 시동을 멈춰놓은 차 안에서나, 티브이를 보던 소파에서나, 커피를 마시던 카페에서나, 라디오를 듣던 식탁 앞에서도 시시때때로 잠이 쏟아져버린다. 산부인과에 가서 물어보니 이런 수면 욕 또한 입덧의 하나라고 했다.


다행히 나에겐 지독하리만치 입맛이 없어서 수액을 맞아야만 버틸 수 있는 그런 괴로운 입덧은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아가 집이 위를 누르는지 하루 종일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하고 매실차를 따뜻한 물에 연하게 타 마셔도 전혀 나아지질 않는 소화 불량의 입덧이 찾아왔다. 임산부라서 쉽게 약을 먹을 수도 없으니 소화가 잘 안 돼서 찾아오는 두통에도 두통약을 먹을 수가 없다. 어느 날은 갑자기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일상에 제어가 생기는 이런 삶에 욱 해서 미혼 때부터 곧장 즐겨먹었던 생연어회를 한 가득 올린 사케동을 시켜 천방지축 아가씨처럼 와구와구 섭취한 적이 있었다. 결국 그날 저녁엔 배가 차가워져서 바로 묽은 큰일을 보고야 말았다. 그 다음날 나는 아가의 상태가 걱정이 되어 병원을 찾았고, 다행히 탈수 증상은 없으나 설사를 계속하게 되면 병원을 수시로 찾아야 한단 말을 듣고 왔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 하나 얻은 상식은, 연어에는 철분과 엽산이 풍부해서 임산부와 태아에게 아주 좋다는 말이었다. 다만 익히지 않은 생선에 좋지 않은 성분이 있을 수 있으니 익혀서 먹으라는 말씀과 함께 집으로 안심하며 귀가를 했다.


그리고 개인적인 바람이긴 하지만, 정말 정말 딱 500미리 맥주 한잔이 너무 마시고 싶다! 술을 만취가 되도록 마시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 딱 한잔만, 500리가 안 된다면 350이라도... 소화가 하도 안 돼서 그런지 개운하고 시원하게 맥주 한잔이 달달하게 꿀꺽꿀꺽 식도를 적시도록 마셔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뱃속에 태아가 있을 때 탄산을 자주 마시게 되면 아가에게 아토피가 생길 확률이 70% 이상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무알콜 맥주를 권하는 이들에게 그런 무알콜 맥주를 마시느니 차라리 안 마시겠다 결심하고 굳게 참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아가를 위해서 참고 넘길 수 있는 시기도 평생에 딱 이 시기뿐이라는 책임감을 가지다 보니 쉽게 마시기가 어려워지는 마음도 한몫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참 구구절절하게도 느껴지는 아가로 인해 바뀐 내 삶, 축복이라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엄마로서의 삶은 처음이라 겁도 많이 나고 두려워지는 낯섦의 소심함. 지킬 앤 하이드도 아니고 내 안에 낮과 밤 같은 커다란 이 온도차를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


그래도 아가, 너무 서운해하지 말어. 아직 초보 딱지 붙인 어설픈 엄마라도, 여기저기 좌충우돌 부딪혀가며 상처 받고 울적해하는 소심한 나라도 이거 하나만은 확실해.


나는 너의 엄마가 되어서 행복하고
널 많이 사랑해
부디 네가 오늘도 내 뱃속에서
튼튼하고 건강하길 기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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