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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댁 Mar 29. 2019

왜 이렇게 의기소침해질까?

임신은 축복이라면서?


 나이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도 내 주위엔 결혼 전인 미혼의 여자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녀들과의 소통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해 주는 SNS에 종종 나의 소식을 올리곤 하는데, 그러다 보면 그녀들은 내게 미혼 때처럼 종종 만나서 수다도 떨고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한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왠지 그 전처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되고 이스트를 넣어 부푼 빵 반죽처럼 도톰해진 아랫배를 끌어안고 그녀들과의 자리를 함께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지곤 한다. 왜 그런 걸까? 그녀들이 나에게 뭐라고 질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임신은 모두가 축복이라고 하는데. 왜 유난히 나는 이렇게 울적하고 의기소침해지는 걸까?


물론 나 같지 않은 산모도 있을 것이다. 워낙 친화력이 좋아서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모르던 사람들과도 금세 몇 년을 알았던 사람처럼 융화되기 쉬운 반죽 좋은 나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순식간에 이런 소극적인 성격으로 변해버렸을까?


가슴 아래부터 아랫배를 가로지르는 옅은 붉은색의 임신선이 부푼 배를 가로질러 났을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더 이상 재킷이나 카디건으로도 배를 가릴 수 없어진 순간부터였을까? 내겐 너무 소중한 친구들이고 인연들이라서 결혼해서 변했다며 점점 멀어져 가기는 싫은데 말이지. 그러고 보니 내겐 이미 그런 친구가 있었다, 결혼하고 출산을 먼저 겪으면서 점점 나를 밀어내고 멀어지게 만들었던 한 친구. 가장 친하고 소중하다 생각해서 절대로 잃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결혼을 하면서부터 이사를 가며 집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아가를 갖고 병원에 찾아갔을 때에도 내게 그다지 밝은 표정을 짓지 않던 그 친구. 아직도 그때 그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넌 생기발랄한 꽃이고, 난 이제 끝났어”


그때는 그 친구의 그런 울적한 말들이 과언이라 생각했지, 그저 농담으로만 받아들인 내가 지금에서야 돌이 켜봤을 때 그 친구는 심각한 산전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것 같다. 밝고 생기 있던 친구의 얼굴은 나날이 푸석해져 갔으며 붉었던 입술은 하얘지고, 까맸던 머리칼엔 새치가 하얗게 물들여져 있었다. 몸보신을 시켜주고 싶다며 억지로 끌고 갔던 닭 한 마리 집에서 함께 닭을 뜯으며 의기소침해 보이는 친구의 얼굴을 어떻게든 이전처럼 밝게 돌려보며 시답잖은 농담들을 건네보며 애썼던 나의 지난날도 기억이 났다. 어쩌면 지금 내가 느끼는 나도 제어할 수 없는 이런 무력감과 무기력증을 그녀는 나보다도 훨씬 더 빨리 이르게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어리고 철이 없어서, 내가 그렇게 애쓰고 노력했는데도 그녀가 그저 내가 귀찮아져서 나를 밀어내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그녀의 상황에 비슷해져 보니 조금은 알겠다. 그리고 그때의 그녀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런 생각조차 교만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살아가면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100퍼센트 뼛속까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저 이렇게라도 늦게나마 그녀의 심정이 이랬을 거라고 생각해보는 거다.


다른 친구들은 이전보다 더 멋진 옷을 입고 더 업그레이드된 화장을 하고 산뜻해진 봄에 어울리는 싱그러운 색의 머리를 하고 사랑스럽고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만나러 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불룩해진 배로 인해 사이즈 맞는 옷을 찾아 챙겨 입고 나가야만 하는 그런 신세겠지?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밝은 옷을 입고 나가면 되는데, 그러면 되는 건데 아직도 나는 밝은 니트를 입고 나가면 내 배를 뚫어져라 걸으며 바라보는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낯설고 위축이 된다.


왜? 임신은 축복이라면서?

그러게 말이야,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지! 어떤 날은 샤워하고 나와서 뿌예진 거울을 손 날로 쓱 닦아내면 드러나는 나의 부푼 아랫배를 다정하게 만지며 행복할 때도 있어. 나에겐 임신이 우울한 감정만을 가져다주는 그런 부정적인 수단만은 아니다. 신랑의 손 아래에서 뱃속의 아가가 힘차게 태동을 하면 예쁘게 반달로 접히는 신랑의 사랑스러운 눈웃음, 그 눈 웃음을 볼 때면 임신을 한 게 너무 행복하고 기뻐서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존의 나와 완벽하게 분리될 수가 없나 보다. 그래도 나와 비슷한 시기를 걷고 있는 언니, 동생, 친구 혹은 누군가가 있다면 이 한 마디쯤은 진심을 담아서 전해주고 싶어.


여전히 당신은 아름다운 여자니까,
자신감 잃지 말고
항상 그 자리에서 밝게 빛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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