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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댁 Mar 24. 2019

임신 우울증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아오는 불청객

랑은 아니지만 나는 요즘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아침에 푹 자고 일어나서 기분 좋았다가, 갑자기 뱃속의 천사가 태동을 심하게 하면서 허리와 복부 통증을 동반하면 또 금방 컨디션이 저하가 되어 침대와 소파에 눕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금방 또 우울해진다. 한참을 그러다가 이러면 안 되지, 내가 원래 얼마나 긍정적인 사람인데! 멘탈이 이렇게 약해질 순 없어! 하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개운하게 땀으로 젖은 몸을 샤워라도 하려고 하면 거울로 전신을 비춰보며 걷잡을 수 없이 부푼 가슴과 배 그리고 엉덩이 허벅지에 절망스러움이 먼저 든다. 그래도 아가를 위해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모든 산모가 다들 이렇게 임신했고 나 역시 우리 엄마에게서 이런 과정을 통해 태어난 것이니 긍정적으로 축복이라고 생각하자 하며 샤워를 하고 난 내 몸에 살이 트지 않도록 튼살 크림을 발라주며 내 몸은 아름다운 몸이다, 모든 엄마들은 대단하다 고로 나도 대단한 사람이다 라고 세뇌를 시키며 나 자신을 달래 본다.


손에 쥔 튼살 크림을 잠시 바라본다. 언젠가 나의 새 언니가 임신을 했다고 하니 임신 초기부터 튼살 크림을 잘 발라줘야 몸에 살이 트지 않고 잘 유지가 된다고 해서 추천해 준 브랜드의 튼살 크림을 인터넷으로 덜컥 주문해서 받은 것이었다. 용량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꽤 오래 쓰고 있는 걸 보니 내가 너무 야박한 양을 몸에 발라주고 있나 싶어 사소한 걱정이 마음에 스멀스멀 피어난다. 걱정, 그래 이게 문제다. 나는 원래 겁이 많은 성격이다 보니 항상 온갖 잡 걱정을 머릿속에 달고 살아왔다. 그래도 결혼 전에는 걱정을 하더라도 자고 일어나면 되도록 잊어버려지고 기분 좋은 생각들로만 머릿속을 채우는 초 긍정 주의자였는데, 임신을 하고 나니 그것마저도 마인드 컨트롤이 쉽지 않다. 이쯤 되면 임신이 내게는 아주 훌륭한 핑계라고 생각이 든다. 예전에도 분명히 이 정도의 걱정들은 충분히 하고 살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이렇게 하루에도 기분이 수십 번은 천국이었다가 지옥이었다가를 반복하는지.


얼마 전에 신랑이 자주 가던 빵집에 나를 데리고 가 내가 좋아하는 빵을 사주었다. 임신 전의 나라면 그렇게 생각해주는 그가 너무 고맙고 섬세하게 느껴져서 입술에 뽀뽀를 하고, 팔짱을 끼고 '역시 자상한 우리 여보가 최고야!' 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얼마 전에 다녀온 산부인과에서 체중이 많이 늘었으니 조절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그리고 내가 원래 좋아하던 단것들을 그대로 섭취하면 아가의 머리가 커져서 나올 때 힘이 드니 무조건 수술해야만 할 수도 있다고 말을 듣고 온 터였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먹방 비제이들이 먹음직스러운 큰 빵들을 뜯어 입 속에 와구와구 넣던 장면들과 '먹으면 안 돼, 조절해야 해!' 하는 나의 마음이 동시에 머릿속에서 충돌해버리고야 말았다. 결국 그렇게 좋아하던 빵들을 눈 앞에 두고 나는 손에 집었던 빵을 내려놓고 신랑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 뭘 사야 할지 잘 모르겠어, 그냥 다음에 다시 오자"

"왜? 너 밤 들어간 거 좋아하잖아. 밤 식빵도 하나 사고, 여기 옥수수빵도 유명하니까 그거 사"


결국 우유부단한 나는 신랑이 추천해 준 먹음직스럽게 크고 달달한 향을 내는 두 개의 빵을 한 아름 품에 안고 계산대 앞에 섰다. 계산대의 여자 사장님께서 내 배를 보곤 밝게 웃어주시며 서비스로 찹쌀 설탕 팥빵을 하나 더 봉지에 넣어주셨다. '아기 엄마가 참 예쁘네요, 아가도 참 예쁘겠다'라는 칭찬과 함께. 그런 말씀까지 듣고 나니 단순한 나는 또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많이 파세요" 웃으며 빵집을 나와서 신랑의 차로 걸음을 옮겼다. 그 이후로도 신랑은 나를 꾸준히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나 맛집을 데리고 다니면서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보고 그에 합당한 맛있는 음식들을 꾸준히 내 앞에 시켜주었다. 이렇게 자상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나에게 잘해주는 신랑인데도 불구하고 점점 배가 불러 올 수록 내 아가 집은 위를 짓눌렀고, 길을 걸어 다닐 때나 가만히 앉아있을 때 그리고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소화가 안 돼서 속이 더부룩했다. 소화가 안 되는 나날이 이어지고 점점 몸이 무기력하게 늘어지는 것 같아 집 앞에 신랑과 등록한 피트니스를 가서 소화가 될 때까지 러닝머신을 걸었다. 한 15분쯤 걸었을까? 늘어져 있던 위가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이거였어. 내 기분을 자꾸만 행복감에서 우울증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건 무기력증이고, 그 무기력증은 소화가 안 돼서 위가 잘 안 움직이니까 나타나는 증상이었던 거야!라는 나름의 셀프 진단을 마친 뒤 5분을 더 걸었다. 그러자 하체에서 찝찝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결국 축축해진 몸으로 나는 처음 목표였던 25분을 미처 채우지 못 한채 러닝머신을 급히 내려와야 했다.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배를 만져보니 아랫배가 돌덩이같이 딱딱하고 차가워져 있었다. 원래 손 발이 찬 편이었는데 아가가 생기고 난 후 좋은 점은 손 발을 포함해 몸이 전체적으로 따뜻해진 것이었다. 나의 따뜻해진 손으로 아랫배를 가만히 둥글게 둥글게 만져본다. 한참을 눈을 감고 그렇게 배를 달래듯이 따뜻해지라고 만져주니 응급 대처한 것처럼 아랫배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잠시 가라앉는다. 항상 멍든 느낌이었던 명치끝에서부터 깊은숨이 단번에 흘러나온다. 나는 당장 탈의실로 돌아가 운동화를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샤워도 피트니스가 아니라 집에 가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무조건 안정이 필요해.


피트니스가 아파트 단지 내에 있어서 집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걸어서 한 3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게 집까지 걸어가는 3분이 멀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부유방이 있는 겨드랑이에선 땀이 폭발을 했고, 등에선 땀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배는 계속해서 차갑고 딱딱해졌다. 예전에도 이런 느낌을 느끼다가 결국 더 걷지 못하고 집 근처에 주저앉아 신랑에게 전화로 SOS를 친 적이 있었다. 오늘은 좀만 더 걸어보자, 괜찮아 괜찮아 아가 내가 지켜줄게. 하며 아랫배를 살살 끌어안고 열심히 걸었다. 단지 내의 계단을 몇 층 올라가고 나니 집이 있는 층수에 다다랐다.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불을 켜고 무겁게 느껴지는 겉옷을 벗은 뒤 새 속옷과 잠옷을 꺼내 들고 욕실로 달리듯 들어갔다. 따뜻한 물을 틀어 손 발부터 씻고 나니 괜스레 안심되는 마음이 머릿속을 잠식한다. '됐어, 이제 안심해도 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옷을 전부 탈의 한 뒤 샤워기를 들고 따뜻한 물로 온 몸을 적신다. 그리고 손으로 발효된 빵처럼 둥글고 귀엽게 부풀을 아랫배를 살살 어루만져주며 낮은 목소리로 아가를 달래듯이 되뇌었다.


"오늘 엄마가 너무 무리해서 운동했지? 미안해, 내 생각만 해서"


얘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힘들어도 그저 내 배를 빵 빵차고 말 한마디 못 하는 작은 생명체가.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주책이다, 하루에도 이렇게 감정이 수십 번씩 날아올랐다가 곤두박질쳤다가 조울증 있는 사람처럼 난리굿을 벌이는 것이. 서둘러서 몸을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부드럽게 닦아낸 다음 튼살 크림을 곳곳에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발라준다. 원래 자주 덜렁덜렁거리고 꼼꼼하지 않은 나인데 아가가 생기고 나서는 왠지 시댁과 친정 그리고 신랑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서 그런지 이런 사소한 습관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버렸다.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한기가 느껴질까 봐 잠옷을 서둘러서 챙겨 입고 바로 침실로 들어가 향초를 켠 다음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는 아직도 차갑게 딱딱해져 있는 아랫배를 끌어안고 핸드폰을 열어 신랑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 많이 늦나요?' 신랑의 손이 크고 따뜻해서인지 아가가 매번 이렇게 뭉쳤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내 배를 둥글게 둥글게 쓰다듬어주면 금세 통증이 가라앉으면서 기분 좋게 아가가 꿀렁거리다가 고요하게 잠들어주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제 들어가는데 왜?' 그 메시지에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번진다. '내가 오늘 무리해서 운동해서 그런지 아가가 또 차가워졌어, 와서 배 좀 만져줘요'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그의 답을 읽어 볼 틈도 없이 눈이 스르륵 감겨버렸다. 나의 의지와는 1%도 상관도 없이.


낮에도 밤에도 수십 번씩 오류 난 컴퓨터처럼 강제 종료되어버리는 나 자신이 너무도 싫어지는 요즘. 이럴 거면 차라리 내 뱃속에서 빨리 나와버리면 좋겠어! 이 말에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한 거다! 나오면 다시 집어넣고 싶어 질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돌이켜 외쳐주고 싶다.


나는 그냥 지금이 제일 괴로워서 벗어나고 싶은걸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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