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의 홍차 역사는 흥미롭다
스리랑카의 홍차산업을 조그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아도 스리랑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스리랑카의 예전 국명은 실론(Ceylon)이었다. 그 당시 영국 식민지 정부는 홍차산업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실론에서 온 차라는 이름으로 ‘실론티’라는 대명사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 실론이라는 명칭은 1505년 포르투갈이 스리랑카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붙인 예전 국명이다. 이후 네덜란드, 영국 식민지 시대까지 사용되다가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지금의 국명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홍차를 수출할 때는 실론에서 생산된 홍차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슬럼
이 홍차는 스리랑카 사람들의 가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마시는 차 한 잔에는 스리랑카의 홍차산업에 종사하는 소수민족의 불합리한 사회적 억압이 담긴 결과물이기도 하다.
스리랑카에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타운, 누워러엘리야(Nuwara Eliya)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는 과히 세계의 모든 인구가 마시고도 남을 홍차가 재배된다. 영국 식민지 정부는 누워러엘리야와 그 주변을 홍차 산업의 거점으로 삼았다. 해발 약 2,000미터의 고산지대는 차나무를 재배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끝없이 펼쳐진 홍차 농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과연 저게 어떻게 인간의 손으로, 그것도 식민지 시대 이렇다 할 기계도 없었을 때 만들어졌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곳에는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슬럼이 존재한다.
이쯤 하면 영국은 글로벌 트러블 메이커?!
그 당시 영국 식민지 정부는 다루기 까다로웠던 현지인을 대신해 차밭에서 일할 노동자를 인도 남부 지방의 타밀나두에서 집단 이주시켰다. 이렇게 이주한 타밀인은 현재 스리랑카 전체 인구의 약 5%에 해당한다. 이후 스리랑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이 소수 타밀 민족은 아직도 이곳에 남아 홍차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차밭 근처에는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슬럼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버려진 판자를 조각조각 이어 붙인 몽타주 같은 벽은 집의 외벽이 된다. 좁은 길을 따라 그런 집들이 산 중턱까지 이어진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행복한가?
그러나 참 이상한 일이다. 이 슬럼에 사는 사람들은 의외로 행복하다. 물론 그들이 행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우리는 단순한 착각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당연히 불행할 것이라는 착각을 말이다. 삶이 너무나도 고달픈 나머지 늘 우울한 표정으로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금방 그들이 얼마나 유쾌하고 행복한 사람들인지 알 수 있다.
가난의 공간에는 당연하게도 가난한 이들만 모여서 산다. 그렇기에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알지를 못한다. 비교를 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고립된 상황에 비교 우위도 존재할리 없다. 그들에게 ‘당신은 부당하게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라고 진실을 말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고 불행한 게 나은 것인지,
진실을 보지 못하더라도 행복한 것이 나은 건지 우리는 모른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가난한 차밭의 노동자들
이들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적은 돈을 받으며 일하고, 가장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산다. 한국 돈으로 하루에 약 4,300원을 번다. 나쁜 날씨에 일할 수 없는 날과 쉬는 날들을 제하면 십만 원이 약간 넘는 돈을 한 달에 버는 셈이다. 아무리 물가가 저렴한 스리랑카라지만 이 돈으로 한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돈을 벌기 위해 아이들도 학교보다는 차 밭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던 일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또한 그들의 자녀가 다시 일을 물려받을 것이다. 그렇게 1823년 처음으로 집단 이주가 시작된 이래, 20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가난은 대물림되고 이다.
이제 이 땅을 지배하던 영국인들은 떠나고 없다. 그렇지만 타밀 노동자들을 고향으로 보내줄 사람은 없다. 한번 바뀐 현상은 일상이 되었고 삶이 되었다.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남겨진 사람의 차별 또한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는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싼 값에 홍차를 마실 수 있다고 말이다.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가?
우리가 저렴하게 그리고 별다른 생각 없이 소비하는 국제기업의 물품에는 개발도상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나마,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서구문화권은 기업이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다양한 제도적 장치(Social Compliance)를 마련하고 있다. 이런 안전판이 생겨난 이유는 최종 소비자들이 최소한의 도덕적 행위를 기업에 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선택에서 제외되지 않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소비자의 변화된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의 기업들은 대체로 품질만 따진다. 즉,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자의 인권, 최저임금 문제, 안전문제, 아동노동 착취에 대한 문제는 따지지 않는다.
가난한 자의 노동이 착취되어 만들어진 제품이 세계적으로 팔리고 있지만 우리는 누구를 비난해야 할지를 잘 모른다. 즉, 비난할 대상을 찾아내기가 힘들다. 누가 원인을 제공했을까? 영국 식민지 정부일까? 그건 과거의 일이니, 이제는 스리랑카 정부의 잘못이 된 걸까? 홍차 잎을 사들여 지역 제조공장에 판매하는 중간 상인일까? 제조공장의 제품을 수입해 세계적으로 유통시키는 국제기업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값싼 제품만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잘못일까?
세계는 끝없이 연결되어 우리가 마시는 차 한 잔에도 다양한 국제 기업들이 관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복잡한 생산체계와 수많은 이해 관계자들 사이에서 노동자의 인권문제는 쉽사리 그 어두운 진실의 자취를 감추고 만다. 마치 잘 포장된 삼겹살을 사면서, 내가 직접 도살한 것이 아니기에 돼지들에게 덜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심리현상과도 같다. 그렇게 우리는 암묵적으로 청부살인을 하고 있다.
먼 나라의 노동착취? 우리도 관여하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는 당연히 국제기업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쉽게 책임전가를 한다. 그러나 국제기업은 계약을 맺은 현지 제조기업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스리랑카 정부는 과거 영국 정부가 싼 똥을 왜 우리가 치워야 하냐고 불만을 토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임을 전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우리가 이 차밭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해 값싼 홍차를 즐기는 데 있어 공범이라는 사실이다.
나라고 아주 도덕적인 인간은 아니다. 나도 같은 부류의 사람일 뿐이다. 내 앞에 놓인 이 홍차 한 잔은 차밭 노동자들이 평생 동안 소비를 시도하지 못할 만큼 비싼 값일 테다. 나는 그런 홍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나도 국제적 기업이 탄생시킨 복잡한 소비의 연결고리의 한 부분일 뿐이다. 나도 그러한 비도덕적 소비의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기여하고 있는 한 무력하고 게으른 소비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