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현 Jun 13. 2019

도대체 해외봉사를 2년이나 왜 간 거야?

해외봉사를 생각하는 분들에게

왜 2년의 해외봉사였는가?

저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해외봉사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스리랑카의 한 작은 직업훈련대학에서 2년간 건축을 가르치는 봉사단원이었습니다. 그때가 2010년부터 2012년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왜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봉사를 훌쩍 떠날 생각을 한 거야?”

솔직히 무슨 위대한 목표나 사명의식을 가지고 떠난 봉사활동은 아니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막연했던 기대가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만나 일어난 일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2년간의 경험은 소중했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해외봉사를 막연히 동경하고 있다면, 이 글을 한번 곱씹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고 이 말을 꼭 해드리고 싶군요.

“무엇을 하든, 잃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봉사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로망 같은 것은 가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동양인 주제에 서양인처럼 오리엔탈리즘에 빠졌습니다

우리들에게 알려진 소위 가난하다는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이상하게도 그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의 삶과 너무도 달랐고, 그럼에도 순수한 현지인들에게 어쩌면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이웃이라는 옛날의 정겨움을 잃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저개발 지역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구체적으로 개발도상국에서 무슨 일을 하자는 구체적인 계획 같은 것들은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저 개인이 꿈꾸는 환상 같은 것이었고, 동양인 주제에 서양인처럼 오리엔탈리즘에 빠졌던 것도 같습니다. 즉, 현실과 전혀 다른 환상에 빠져 있었던 셈이죠.

그리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과 도시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저개발 지역의 건축과 도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개발의 경험이 분명히 저개발 지역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개도국의 롤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죠. 물론 저는 단순하게도 저개발국가들 역시 한국형 개발경험을 배우길 원하는 줄 알았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잘 살게 해 준다는데, 혹은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라고 아주 당연하게 결론지어버리고 말았죠.

저는 생각했습니다.

‘기다려라. 내가 곧 한국의 우수한 건축과 도시의 비법을 전수하러 가리라.’ 

그렇습니다. 아주 부끄럽지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난 오만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스리랑카로 갔습니다. 사실 저에겐 어디로 가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저개발 지역을 개발하고픈 마음이 앞서 있었을 뿐이죠. 그렇게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다는 것, 혹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일이니까요. 아마 그렇게 저의 쓸모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정답이 있는 국제개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리랑카로 날아 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저는 저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정답이 있는 개발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게 우리나라에서 성공했던 개발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개발은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었고,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의 조건이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단순히 우리의 지식을 전파한다? 그건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었죠. 왜 우리는 그렇게 타인의 지식을 무시하는 걸까요? 

그리고 지역마다 다르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다름을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하길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우리의 기준과 가치로 그들을 판단하려고만 들었죠.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2년간 애쓰고 나서야, 스리랑카 현지인들의 다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개발국의 방법이 아무리 엉망진창이고 엉터리일지라도, 누군가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일방적으로 간섭하는 건 어쩌면 또 하나의 폭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그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또 다른 대안으로 받아들일 여유가 생겨났기 때문이죠. 그 오만했던 친구가, 너그러운 친구로 돌아온 것이죠. 그게 2년간의 제 경험입니다. 


저의 봉사활동 경험을 아주 간단히 요약해 드리죠

‘저의 2년간의 해외봉사활동의 경험은 제가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걸 깨닫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제 봉사활동이 어떠했냐고요? 물론 단기적으로 누군가를 돕기는 했겠죠. 그러나 저의 개인적 노력은 아주 당연하게도 스리랑카를 빈곤에서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저개발 지역은 이미 선진국들의 눈먼 투자를 위한 각축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곳에는 더 이상 우리가 원하는 타인을 돕는 고귀한 행위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믿는다면 그건 순진한 것일 테고 때론 오히려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봉사활동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타인을 도움 행위를 조금 더 내정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은 정말 엉망진창입니다

개도국의 그들이 엉망진창이라는 게 아니라, 도움을 주러 온다는 선진국의 사람들이 엉망진창이라는 말이죠. 원조를 하기 위한 맹목적인 원조도 눈에 보입니다. 가끔은 이게 과연 저개발국을 위한 것인지, 선진국을 위한 것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뭘까요? 진정한 평화를 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들의 경제를 선점하기 위함일까요? 국가가 주는 원조금 혹은 기업이 전달해주는 기부금을 그냥 좋게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뒤에는 많은 목적들이 숨어 있으니까요. 어느 한날은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가 어쩌면 식민지 정책의 변형일 수도 있겠다는 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그렇게 틀린 예감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과거 유럽이 식민지 정부를 운영했던 방식과는 다르죠. 그러나 저개발 지역을 개발하려고 선진국이 투자에 앞장서고, 후에 경제를 선점하는 방식은 비슷합니다. 그 방법이 조금 세련되었다는 것만 빼면 말이죠. 저는 분명히 생각합니다. 공적개발원조도 역사의 뒤안길에서 지금과는 다른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생각은 우리가 저개발국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일방적으로 흐르는 원조는 도움이 아니라, 어쩌면 폭력과도 같은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원조에 앞서, 너와 나에 대한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년의 세월을 보내고 깨달았습니다

봉사란 남을 일방적으로 돕는 일이 아닙니다. 봉사란 어쩌면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요?

눈을 뜨세요.
그리고 좋은 일에 더 냉정해지세요.
무엇이 사실인지 무엇이 뒤에 숨어 있는지를
현명하게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해외봉사를 생각하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따뜻한 행동과 현명한 머리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