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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Jun 25. 2019

절대로 철이 들지 않겠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첨단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방정맞은 미디어와 인터넷은 어제의 정보가 틀렸음을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번복하고 있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니, 무엇이 가짜이고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오직 자신의 사고능력을 키워야만 이 혼란의 시대, 정보의 홍수 시대 속에서 올바른 사상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도 헷갈리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가십거리에 목에 핏줄을 세운 채 성토를 한다. 우리들은 서로 싸우지 못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국의 현대인은 빠르게 치닫는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스마트 폰을 부여잡고 살며, 인터넷에 접속되지 않는 환경에서 불안을 느낀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지식을 찾기 위해 애써야 하고, 단체의 연대감에서 소외되지 않으려 새벽 4시가 넘도록 술을 마셔야 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우리는 소모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정신과 에너지가 소모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정신없는 세상이다. 미친 세상이다. 

어쩌면 정신 줄을 놓아야 살아가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영화처럼, 눈이 멀어버려야 정상이 되는 아이러니한 세상처럼 우리는 눈을 감고 마음을 다독여야 한다. 

때로는 이러한 생활에 염증을 느끼며 자아 존재의 독립성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거대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내가 주변인으로 전락해버린 것 같은 그 공허함.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고 그저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버려 안타깝게도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상태. 깨닫는 순간 손을 쓰기엔 늦어버린 고약한 타이밍. 엉켜버린 실타래 같기만 하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도대체 이 길은 어디에서 끝나는 걸까?’

마치 뭉크의 ‘절규’에서 나오는 그림 속 절망과 혼란에 빠진 인간이 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불안해진다. 하지만 친숙한 불안감이다. 늘 곁에 있어왔던 그 불안이다.

그러나 이런 회의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곧잘 나약한 인간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자고로 사회적 인간이란 이러한 현상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체질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한국사회에서 어른이 될 수 있다. 약육강식,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명언이지 않은가? 혹은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해야지 비난을 면할 수 있다. 


도대체 그 어른스러움의 정의는 뭘까?

우리가 별생각 없이 흔히 말해온 ‘어른스럽다’의 의미는 때로는 뭔가를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의 행위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말한다.

“이놈아!”

“네?”

“철 좀 들어라!”

늘 연배가 높으신 분들의 말씀이다. 가끔은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동생들도 거든다. 그럴 때면, 난 머리나 긁적거리며 말한다. 

“하하... 그러게요.” 

애써 웃어넘길 뿐이다. 

그렇다. 난 철이 안 든 남자다. 나이가 들면 으레 철도 자연스레 따라서 드는 줄 알았더니, 것도 아닌 모양이다. 사실 ‘철이 든다’라는 게 생각처럼 쉽게 들 거란 생각도 안 했지만,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냥 이렇게 사는 인생도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철이 안 든 내 모습일지 모르겠다.

나는 늘 주변 사람들이 예상하던 진로를 벗어나곤 했던 철없는 놈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철없이 해외봉사를 떠나겠다고 말하니, 친구 놈들 중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슈바이처, 그 머시기나 되는 줄 아냐?” 

순간 난 멍해졌다. 칭찬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비난을 받을지는 몰랐다. 그래도 봉사는 숭고한 정신(?)으로 가는 게 아닌가? 이렇게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 이렇게 심한 말을 뱉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 친구의 걱정 어린 충고가 이해는 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개인의 삶에 충실히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에게, 어쩌면 ‘타인을 돕는 행위’도 변명이 필요한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다. 나 혼자 밥벌이하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나 혼자 이 험한 세상에 생존하기도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그렇지 그 슈바이처, 그 뭐 사람은 숭고했던 사람이고, 난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니까...’

그 친구 얼굴에 대고, 대꾸하지 않았다. 생각이 틀리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그랬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이 녀석 말이 맞으면 어쩌지?’


나는 고귀한 봉사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봉사를 어렵고, 희생이 반드시 동반되는 고귀한 어떤 걸(?)로 여긴다. 그러나 난 여기서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눈물 나는 감동 이야기는 여기에는 없다. 나란 인간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 그런 사람들과는 질적으로 틀리다. 이 글은 그렇게 착하지도 대범하지도 않은, 철 안 든 남자의 봉사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2년간의 스리랑카 체류기일 뿐이다. 


난 단지 내가 도우려고 찾아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을 뿐이다.





알림:

본 글은 <꼬호머더, 스리랑카?: 2012>을 조금 수정해 다시 쓴 글입니다. 제 책을 읽고, 많은 분들이 스리랑카 해외봉사에 대한 희망을 엿보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의 책은 KOICA의 지원으로 나온 책이라, 비판적인 입장에서 제 봉사활동을 돌아보려고 한 부분이 미약하게 전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저도 성장했을 테니, 그 시간을 다시 돌이켜 조금 더 비판적인 입장에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저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우리가 가진 개도국 해외봉사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 부족한 책을 읽고 좋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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