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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Aug 11. 2019

인간은 생존의 동물

인도양 촌구석 정착기

발코니가 딸린 방이 2개. 큰방은 공부방으로 쓰고, 펼친 모기장보다 약간 큰 방은 침실이 되었다. 대충 얹은 지붕은 신기할 만큼 비가 새지 않고, 창문에는 틈새가 많아 모기가 자주 들락거린다. 가끔은 작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시끄러운 새도 찾아오고, 멋진 꼬리를 가진 원숭이도 어슬렁거리는 이곳, 호마가마(Homagama)가 2년 동안 생활하게 될 나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인도 밑의 작은 섬나라, 인도양의 눈물로 알려진 사연 많은 역사를 가진 나라, 그 속에서도 외진 작은 타운이다.

호마가마 타운, 콜롬보 외곽의 작은 마을

내가 살았던 동네는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Colombo)에서 약 23km 떨어진 호마가마는 전형적인 베드타운(Bed Town)이다.  언뜻 보면 구색을 갖춘 동네처럼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뭐하나 그럴듯한 게 없는 동네다. 2009년 말에 끝난 내전의 영향으로 지금이야 개발이 슬금슬금 시작되고는 있지만, 내전이 한창일 때는 건물을 짓거나 상권의 확대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내전 막바지에 발생한 반군들의 무분별한 폭탄테러는 부동산 시장의 투자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활발한 상업 활동도 어렵게 만들었다.

내가 살았던 호마가마도 마찬가지였다. 이 동네도 내전이 끝나고 나서야 개발을 위한 자본이 조금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변변한 건물 하나 찾아보기 힘든 촌구석이었다. 그러나 개발에 대한 숨통이 풀리자, 나름 하루가 다른 변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개발의 물결에도 이 동네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레스토랑, 중고 전자제품 상점, 식료품 가게, 조그마한 옷가게와 잡화점이 전부다. 벽돌로 대충 쌓은 집은 공간만 구분할 뿐 그 이상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 저렇게 집을 짓는다면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장사를 하기 위해 가게를 꾸민다는 행위는 여기선 사치일 뿐이다. 

호마가마 타운

당연하게도, 인간은 생존의 동물이다

작고 외진 동네라 세를 놓는 집이 별로 없어, 살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코이카는 봉사단원을 뽑아 놓고 말 그대로 오지에다 방생을 해버리기 때문에 집을 구하는 일은 온전히 봉사자가 할 일이었다. 

2주일을 넘게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결과, 빈집은 단 세 곳이 전부였다. 그중 한 곳은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턱없이 높은 가격을 불렀고, 다른 한 집은 빛 한줄기가 들어오지도 않는 집이었다. 그런 집에서 잠시라도 살다 간 우울증에 걸려 천장에 목을 매고 말 것만 같았다. 열대 날씨의 국가에서 빛 한 줄기 안 들어오는 집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마지막 한 집은 좋지는 않았지만, 다른 두 집과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이 집은 2년 동안 나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준 운이 좋았던 곳이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

약간은 수다스럽지만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와 엄마를 닮아 참견하기 좋아하는 백수 막내아들, 졸린 눈을 가진 아버지까지 세 식구가 이 집에서 산다. 큰 아들은 잠시 영국으로 일하러 갔다고 했다. 돈 벌어 아들이 돌아오면, 얼른 장가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아주머니는 늘 말하곤 했다. (그녀의 바람대로 큰 아들은 내가 스리랑카를 떠나자 돌아왔고, 돈을 벌어 왔으며 결혼을 했다.) 그렇게 큰 아들이 떠나 비어진 1층 방을 작은 아들에게 주고, 2층을 비워 나에게 세를 내놓은 것이다.

내가 거주할 2층은 조그마한 방 두 개와 식탁을 겨우 놓을 공간만 있는 부엌과 물이 새는 변기가 있는 화장실이 전부다. 천장에는 팬도 없고, 냉장고는 바랄 바도 없었고, 세탁기나 가구도 없었다. 그야말로 정말 빈집이었다. 이 집에서 과연 살 수 있을지 잠시 고민을 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고로움이 필요한 집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수고야 하면 되는 것이었기에 집 계약을 하게 되었다. 계약이라고 해봐야 정식 계약서를 작성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이것저것 계약서의 문구가 들어간 자필로 쓴 종이 한 장이 다였다. 각자가 사인을 하고, 악수를 나누며, 미소를 교환함으로써 계약이 성사되었다. 


수고야 하면 될 일

동네에 하나뿐인 철물점에서 페인트를 사다 칠을 새로 하고, 오래된 테이블과 중고 냉장고를 구해 들였다, 동네장사를 하는 주인집 아저씨가 동원한 동네 인맥의 네트워크는 잘 작동하고 있었다. 이 작은 동네에서 집에서 필요한 것들이 속속 도착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동네 한쪽에 자리한 허름한 목공소를 찾아가 직접 손으로 대충 그린 도면대로 책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서 들여놓고, 전기 배선도 손을 봐 어두운 곳에 전등도 설치했다. 

그렇게 빈집은 나의 취향에 맞게 조금씩 변해갔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이 나라에서, 또한 이렇게 아무것도 없었던 허름한 집에서 살아나갈 일이 막막했지만, 어느새 이 집은 나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집은 나에게 스리랑카의 소박한 삶을 선사했다. 그건 가진 게 많지 않아도 풍족할 수 있다는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아침마다 베란다에 놓아둔 내 밥상 위에서 잠을 자다,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깨는 못생긴 고양이도 덩달아 이곳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흰색 타일이 깔리고, 삼면이 뚫린 베란다는 빨래도 널고, 비 오면 비 내리는 풍경도 바라보며,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차도 마시는 공간이 되었다. 그곳은 동네의 평범한 풍경이지만 나에겐 마치 열대우림 같았던 스리랑카의 자연을 조망하기에 적합한 공간이었다. 나머지 방과 부엌은 간단하게 목적에 맞는 공간이 되었다. 그런대로 사람이 살만 한 집으로 만드는 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우습게 지나갔다. 

내가 살던 집에는 세탁기가 없었다. 더운 날씨를 고려하면 하루에도 몇 벌의 세탁물이 쌓인다. 2년 내내 손빨래로 버텨냈지만, 고생하러 여기 온 걸 감안하더라도 가끔은 이게 손세탁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스리랑카의 날씨가 습해 빨래가 빨리 건조되지 않으면 냄새가 나기 일쑤였다.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월세를 더 낼 용의가 있으니 세탁기를 들여 달라고 부탁을 해보았지만, 주인집 아주머니는 세탁기가 왜 필요하냐며 빨래는 손으로 해야 건강에도 좋고 부지런해지는 게 아니냐며 나에게 핀잔만 주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내가 준 월세를 모아 나중에 새 세탁기를 구입하시고 잘 쓰고 계신다. 희한한 아줌마가 아닐 수 없다. 그 손빨래 덕분에 정말 내가 건강을 유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2년 동안 별다른 병치레 한번 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소박한 동네, 소박한 이웃

소박한 집들이 모여 있는 이 조용한 동네에는 순박한 이웃들이 산다. 이곳은 나에게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단순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몸으로 움직이는 법과 동네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품에 안아주는 법도 가르치고, 길을 걷다가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고 잠시 가벼운 대화도 나누는 습관도 만들어 주었다. 길가다 동네 주민의 집 둘레에 설치된 허술한 울타리에 이름 모를 꽃이 피어 있으면, 걷던 길을 멈추고 향기도 없는 꽃에 코를 킁킁거리며 말한다. 

‘아, 향기가 없구나!’

바보처럼 구시렁거리다, 다시 제 갈 길을 가는 여유도 생겼다. 

이런 여유, 도시라는 곳에서 결코 부려보지 못했던 시간적 그리고 마음적 여유였다. 이건 장소의 문제였을까? 마음의 문제였을까?

살면서 찾아가 안부도 묻고, 서로의 집안 행사가 있으면 찾아가 지내는 정말 이웃 같은 이웃을 처음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나에게 따뜻했고 친절했다. 또한 해가 지면, 밖으로 나와 하늘이 붉게 물들다가 점점 어둠에 휩싸이는 과정도 조바심 내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는 여유도 생겼다. 그렇게 난 그들의 삶에 조용히 젖어들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런 이웃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


스리랑카는 나의 관심을 주러 간 곳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난 그들의 관심 속에 살았다. 그리고 나의 도움을 그들에게 주러 간 곳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내가 더 많은 도움을 그들에게 받았다.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갔던 나라로 기억되는 곳, 이곳은 스리랑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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