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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Jan 18. 2020

해외봉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등교하는 학생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

호마가마의 기능대학 아침 8시, 나를 비롯한 선생님과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된다. 우리나라처럼 등교시간에 쫓겨 달리는 모습을 여기서는 보기 어렵다. 그만큼의 여유인지 배짱인지 모를 무언인가를 그들은 가지고 있다. 나는평생을 시간에 쫒기며 살아온 나에게 이런 시간 관념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때론 마찰이 벌어지곤 했었다.

그렇게 정확하지 않은 시간으로 8시 10분이 되면 스리랑카의 국가가 방송된다. 국가는 따블라(스리랑카 전통악기) 소리로 시작되는데, 그 5분 남짓한 시간에는 모든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국가에 대한 예를 표한다. 내가 어릴 적,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무렵만 해도 이랬던 기억이 난다. 공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던 중에도, 엄마의 심부름으로 동네 구멍가게를 향하던 길에도, 국가가 나오면 그 자리에 선 채로 국가에 대한 경의를 표하곤 했다. 저녁마다 울리는 애국가 방송 시간에 조금이라도 몸을 꿈틀대면, 애국심 높은 동네 어르신들이 험악한 눈초리를 감수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나라에서 개인에게 애국을 강조하던 시절로, 지금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습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결국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리고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나라에선 이러한 행위가 자취를 감췄다. 

이 국가 방송시간은 학생들이 등교시간이 늦었는지 안 늦었는지를 알려주는 기준이 된다. 즉, 방송 후에 등교한 학생들은 지각을 한 셈이다. 우리나라처럼 교장이 출입문을 지키고 있다가, 방송이 끝나자 마자 지각한 학생들을 잡아 들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벌을 주는 방식이 조금은 특이하다. 벌을 주는 방법에도 불교국가다운 모습이 담겨 있다. 교장 선생님이 지각을 한 학생들을 데리고 간 곳은 학교 출입구에 모셔진 불상 앞 공터였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무릎을 꿇고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인구의 약 70%가 불교도인 불교국가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국가가 끝나고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서둘러서 아침밥을 챙겨 먹는다. 그리고 여유 있게 차도 한 잔도 챙겨 마신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8시 40분 정도 되어야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간다. 중간에 늦게 교실로 들어오는 학생들과 수업 준비, 출석체크로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9시가 훌쩍 넘어버린다. 학교의 시작은 항상 이렇게 늦다.

컴퓨터가 상용화된 시대에 아직도 스리랑카엔 타자기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무엇이 필요한가?

내가 파견된 호마가마 기능대학(Homagama Technical College)은 학생 수가 약 500명으로 주변 마을 중에서는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대학이었다. 전공과목의 이수기간은 과목에 따라 달랐지만 짧은 건 6개월이었고, 긴 건 2년까지 있었다. 알루미늄 섀시를 가공하는 과정이 가장 짧아 6개월이고, 대다수의 과정이 1년이다. 전기와 회계학과와 같이 조금 배울 것이 복잡한 과정은 2년이다. 선생님은 25명, 행정과 관리직원이 25명 정도였다. 대학이라고 부르곤 있지만, 사실상 정규 대학은 아니고, 직업기능학교에 가깝다. 먹고살 기술을 배우고자 온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학생이 취업에 필요한 기초적 지식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이 기능대학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4년제 대학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또한 육성하고자 하는 인재의 방향도 많이 다르다.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는 고급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고급기술을 가르칠 이유가 있지만, 스리랑카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스리랑카와 같이 산업이 고도로 발전하지 않은 국가는 고급기술이 당장 필요하지 않다. 산업 자체가 작고 초기단계에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인재가 필요하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기능대학은 기초기술을 배워 기초산업에 쓰일 인재를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벽돌 쌓는 법을 배우고 있는 학생
컴퓨터가 아닌 종이에 도면을 그리는 법을 배우는 학생들


해외봉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마디로 한국 봉사단원이 배운 지식과 기술은 어쩌면 여기선 시대적으로 너무 앞서 있거나, 쓸데없이 형이상학적인 게 많다. 이런 이유로 많은 한국인 봉사자들을 당황한다. 그리고 처음의 당황은 방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사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 프로그램의 고질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다. 즉, 수요(스리랑카에서 필요한 지식)과 공급(한국 봉사자의 지식)이 매칭이 안된다. 이런 환경에서 해외봉사를 국가의 세금으로 보낸다는 건, 당연히 혈세의 낭비다.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코이카 대부분의 해외봉사가 우리나라의 입장도 그렇고, 수혜국의 입장에서도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 차라리 봉사단원의 수를 현저히 줄이더라도, 효율성을 높이고 그 효과를 높이는 것이 더 낫다. 

우리나라의 현 해외봉사는 그저 양만 엄청나게 주는 싸구려 맛없는 음식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봉사단원의 수는 엄청나게 많은데, 각 개인이 집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금액도 크지 않다. 그렇기에 한 개인의 우수한 봉사단원이 어떤 프로젝트를 하려고 해도 제한이 너무 크다. 즉, 현재의 한국국제협력단의 해외봉사활동 프로그램은 우리 보기 좋으라고 하는 봉사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우리 봉사단원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있으나마나 한 존재다. 우리의 쓰임이 생각만큼 그들에게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해외봉사 프로그램이 단순히 한국의 실업률을 낮추는 용도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 봉사단원들은 그래서 방황한다. 그들은 지식을 전파한다는 그럴듯한 ‘대학강사’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방황한다. 다행히 자신의 방향을 수정해 적응해 나가면, 봉사활동에 무리 없이 성공적인 활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2년 내내 무얼 할지 고민만 하다가 귀국하는 단원들이 많은 것도 안타까운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두고, 코이카는 대충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고 만다.

“그건 봉사단원 하기 나름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무책임한 말이기도 하다.

현재 코이카가 주관하는 해외봉사단 프로그램의 문제점은 ‘정확한 수요’를 조사하지 않아 발생한다.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파악조차 못하고, 봉사단원의 파견 인원수를 올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제개발을 말할 때,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있다.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과거 ‘이 나라는 미래가 없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가난했었다. 그 나라는 세계 각국의 공적자금을 전달받았다. 그랬던 나라가 이제는 반대로 공적자금을 제공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점은 분명히 자랑스럽다. 그러나 언제까지 ‘준다’는 것에만 만족할 것인가? 이제는 ‘어떻게 잘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생각할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고민을 과연 하고는 있는 것일까? 과연 코이카는 정치, 인종, 종교가 없는 순수한 인도적 지원활동에만 집중하고 있을까? 그렇게 믿는다면 속은 편할지 모르지만, 그 홍보에 감춰진 진실에 눈을 감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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