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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Mar 29. 2020

부끄러운 일

가끔 수업이 비는 시간에는 다른 반의 수업을 구경하러 간다. 나는 이곳에서 건축 제도반의 제도 실습을 맡아서 강의하고 있다. 그러나 담당과 상관없이 설비반을 비롯해 목공반, 용접반, 전기반 등을 찾아가 수업을 참관하곤 했었다.     

땡볕에서 불편해 보이는 사리(Saree, 스리랑카 여성 전통의상)를 입고 수업을 하는 히로시니는 야외수업이 많은 설비반의 담당교사로 벽돌 쌓기, 배관 설치, 화장실 공사와 같은 남자들도 어렵다는 일을 가르친다.

사실 히로시니는 내가 처음 여기 학교로 파견되어 왔을 때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어준 선생님이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는 기간 내내 날 보살펴 주며 스리랑카에 하루빨리 적응하길 도와준 은혜로운 친구다. 그녀는 때로는 나이 많은 누나 같고, 때로는 부담 없는 이모 같았다.      

스리랑카의 더운 날씨는 몸을 쉬이 지치게 만들지만, 그것보다 너무나 다른 사람의 성격, 논리와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학교의 일상들, 복잡하고 느린 행정 처리들은 나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 정도였다. 하는 일도 별로 없는데, 머리가 아프고 속 터져 죽는 일이 자주 발생하곤 했었다. 

지금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처음 반년 간은 이곳 스리랑카의 전반적인 시스템에 사사건건 시시비비를 가리려고만 들었다. 아마도 그때 만났던 사람들은 나를 호전적이고 화를 잘 내는 전형적인 한국인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집스러운 과거의 내 모습이다.

별 대수롭지도 않은 공문이 필요해 교장에게 부탁하면, 2주는 되어야 내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할 만큼 모든 일처리가 늦었다. 또 현지인과 약속하고 기다리면, 약속한 사람은 나타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전화를 걸면 아예 받지도 않는다. 겨우 연락이 닿아 화를 내면, 미친놈 취급을 받는 건 다름 아닌 나다.

처음에는 어리석게도 항상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하기만 했다. 

‘아, 우리나라는 안 그런데.’ 

‘아니, 왜 그래? 미친 거 아냐?’

‘왜 이따구야?’

이런 말들만 떠들어 댔다. 이랬던 나도 이제 ‘뭐, 항상 그런 식이지.’로 변했다. 물론 이게 좋은 변화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하는 못된 습관도 많이 줄였고, 다른 국가가 가진 고유의 상황과 시스템을 존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처음 학교에 와서 며칠이 지나고, 한국인의 급한 성격으로 교감을 몰아붙여서 사이가 어색해진 적이 있었다. 이런 나를 보고 히로시니는 교감을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우리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우려했다. 난 그녀의 말에 따라, 다시 교감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해본 결과, 정말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라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게 되었다. 히로시니는 언제나 중간에서 나의 행동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친구였다.     

히로시니의 수업에서 내가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난 그저 구경꾼으로 어슬렁거리기만 한다. 설비반은 주로 벽돌 쌓기, 미장, 위생시설 설치, 배관 설치와 같은 실습이 주를 이루기에, 실상 내가 도와줄 구석이 없었다. 그래도 히로시니와 학생들은 내가 수업에 참석하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수업의 진행은 산만하기만 하다. 거의 매일 지각해서 보는 날보다 안보는 날이 더 많은 학생, 조금만 땅을 파도 피곤해하는 만성피로의 청년, 입만 열었다 하면 허풍을 떠는 학생까지 히로시니는 6명 남짓한 학생을 상대하다 보면, 오후가 되기도 전에 녹초가 되어버린다. 

오늘은 ‘잉글리시 본드’ 방식으로 벽돌을 쌓는다. 지난 시간에 쌓은 벽돌을 죄다 다시 뒤집어엎고, 오늘은 새로운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에 열심히 하는 학생은 소수지만, 늦장 부리는 학생과 장난치기 바쁜 학생은 다수다. 이들 모두가 히로시니의 제자다. 그래도 이 나라 수업은 왠지 여유가 있어 보인다. 게으름과 여유의 차이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항상 난 이 애들이 졸업하면 뭘 할까 걱정이다.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던데. 설사 일을 구한다 해도 충분치 않은 월급으로 가정을 꾸려 나가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히로시니는 늘 내가 외국인이라서 어디서 바가지나 당하지 않았을까 걱정이다. 나는 이 더위에 밖에서 땀에 절면서 수업을 받는 아이들이 걱정이다. 그리고 히로시니는 내가 서 있는 것이 불편할까 봐 의자라도 가져다 앉혀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한다. 이렇게 한번 시작된 걱정은 끝이 없다.     

한낮에 잠시 앉아서 구경하다 일어서니 머리가 어지럽다. 열대의 뜨거운 태양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했다. 순간 또 부끄러워진다. 아무것도 하는 일없이 앉아서 구경만 하다가 일어나도 현기증이 나는 이 무더위 속에서 가르치는 선생과 배우는 학생들이 있는데, 약하기만 하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대수로울 것 없는 봉사활동으로 받는 생활비는 히로시니 월급의 2배 가까이나 된다. 그 사정을 히로시는 모른다. 미안해서 말을 못 했다. 스리랑카를 방문한 손님인 나를 위해 오늘도 히로시니는 홍차를 대접한다. 내가 돈을 내려고 주머니를 뒤적거리기라도 하면, 그러지 말라며 정색하는 히로시니가 말한다.

“아이고. 귀한 손님이 돈 쓰면 안 되죠. 우리 정부가 월급도 안 주는데.”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돈도 없이 봉사하는 보살핌이 필요한 학교의 손님이라는 사실을 연신 강조한다. 그리고선 내가 돈을 쓰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당부를 한다.                   

차를 마시고 있는 동안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수업시간을 금방이라도 엉망으로 만들 줄 아는 재주를 가진 삼인방의 짓이 분명하다. 평소 소심하던 애를 결국 울리고 말았다. 덩치는 산만한 아이가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는데도, 연신 달려와서 또 장난을 친다. 선생이 등만 돌리면 금방 일이 벌어지고 만다. 넘쳐나는 장난기를 주체할 수 없는 나이다.

차를 마시고 뒤늦게 나타난 나와 히로시니는 짧은 막대기를 들고 이들 세 명을 쫒느라 야단이다. 이날은 그 착한 선생도 약간은 화가 나셨나 보다. 때 아닌 추격전이 학교 내에서 벌여졌다. 선생은 사리가 걸리적거리자 치맛자락까지 말아 올리고 쫒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쫓기면서도 변명하길 잊지 않는다. 그렇게 선생한테 쫓기면서도 내 앞에 와서 환한 표정으로 사진이나 같이 한 장 찍자고 말한다. 그리고 얼른 포즈를 취하고는 또 도망을 간다.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는 날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여유로운가? 게으른 것인가? 이대로 살아도 된다는 안일함이 그들을 가난한 게 만든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여유는 사치인가? 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는 곳인가? 아님 나만 머리 싸매고 스트레스 왕창 받는 못난 인물인가?

봉사,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우리가 오만해 그들을 제멋대로 판단할 때 특히 더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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