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인 조단 피터슨(Jordan B. Peterson)의 "12가지 인생의 법칙:혼돈의 해독제(12 Rules For Life)"이다.
카오스 같은 당신의 삶에 12가지 해독제(방향)를 제시한다. 뭔가 거창하지 않은가?
조던 피터슨(Jordan B. Peterson, 1962-)은 토론토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모습과 뛰어난 언변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의 한 사이트에서 시작되었다.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는 외국의 한 사이트(Quora)에서 젊은이들 인생 상담을 해주면서 인기를 쌓아갔다. 그때만 해도 그가 현재의 유명 인사가 될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가 책과 강연을 통해 말해 온 것이 있다.
철이 들어라. 책임감을 지고 삶의 의미를 찾아라.
그의 책에는 우리가 이미 아는 지식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흥미로운 점은 기존의 지식을 아주 논리 정연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책에는 역사, 신화, 문화, 동물의 세계, 종교, 전설, 심리 등이 등장한다. 온갖 증거를 들이밀며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다.
질서는 남성성이고 혼돈은 여성성이다 (Order is masculine. Chaos is feminine). 그러니 남성성을 되찾아라!
이 말을 들으면, '어라... 이거 꽤나 도발적인 발언인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모던한 시대, 즉 여성의 파워가 하늘에 찌르는 시대에 이런 암흑시대로 돌아가자(?)는 발언을 그것도 지식인 남성이 한다는 것은... 뭔가 모르게 위험해 보이지 않은가?
물론 그가 말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은 우리가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소 다르다. 그래서 그의 설명을 자세히 듣지 않고 인터넷 상에서 설전이 벌어지는 내용만 보면, 그를 오해할 요지가 상당히 크다. 즉, 남성성은 굳이 성별에 의해 구분되어서 가질 성질은 아닌 것으로 그는 표현하고 있다.
그의 이런 주장은 당연하게도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도 페미니스트의 끈질긴 공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반대로 남성들의 열렬한 지지로 이어지게 된다.
사실 그의 책이나 강연도 분명 흥미롭지만, 그를 둘러싼 현상이 더 흥미롭다. 전 세계 페미니스트들의 공격과 젊은 남성의 열렬한 지지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에게 늘 따라다니는 질문이 있다.
왜 하필 젊은 남성이 조던 피터슨에게 열광할까?
흥미롭지 않은가? 여자도 아니고, 나이 많은 사람도 아닌, 젊은 남성이 특별히 조던 피터슨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인구가 있는데, 다 제쳐두고 왜 하필 젊은 남성일까?
이 질문에 조던 피터슨은 '유튜브가 대부분 젊은 남성이 사용하는 곳'이라는 조금 엉뚱한 혹은 어설픈 대답을 내놓았다. 이건 심리학자가 자신의 현상을 진단하는 것치고는 조금 옹색하다. 내가 보기엔 이런 현상은 조금 분명해 보인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질서(Order)에서 카오스(Chaos)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라는 소설책이 우리나라에서 큰 성공을 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현상이었다. 물론 TV광고에서 잠깐 보이는 것이 계기가 되어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이 책이 열풍을 끈 것은 책의 제목과 연관성이 깊다.
상실의 시대, 그 시절 우리 젊은이들은 뭔가를 상실했다는 공허함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을 상실했는지를 짚어내는 것은 쉬지 않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베이비 부머의 세대와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경제와 사회는 계속 발전해 왔지만, 젊은 세대는 그 발전을 이끌지도 수혜를 직접적으로 받지도 않았다. 물가는 올랐고 좋은 직업을 갖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 되었다.
예를 들어, 내 삼촌은 대학교 3학년 때 벌써 취직을 해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1년은 학교에서 알아서 졸업할 성적을 처리해 주었다. 지금보다 못 살았지만 경제는 성장하고 있었고, 열심히 한다면 합당한 보상이 당연히 약속되던 그런 사회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많은 스펙을 쌓고도 열심히 노력하고도 그에 따르는 보상을 장담할 수 없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조던 피터슨은 말한다. "질서(order)란 예상하거나, 기대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 그리고 "카오스(Chaos)란 기대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를 말한다. 그의 정의를 빌리면, 우리는 '카오스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혼돈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처방을 내린 책이다.
남성성(Masculinity) 상실의 시대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남성성을 뽐내면 주변 여성들로부터 시대착오적인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기 일쑤다. 근육이나 잘생긴 외모와 같은 남성성은 오케이지만, 정신적으로 '나는 마초 같은 남자야'라고 말한다면 여성의 인권이고 나발이고, 남녀의 평등은 무시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가 있다. 이처럼 우리 남성들은 이제 남성성도 제대로 과시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둘씩, 저마다 "나는 사실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울며 겨자 먹기로 선언하는 남성들을 보며, 저들은 정말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서 저러는 걸까? 아니면 여성의 눈치가 보여서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후자가 더 많지 않을까?
솔직히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페미니즘'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지만, 대다수가 <남성을 배척해야 할 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의 사회가 남성 중심으로 굳건히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가격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은 어느정도 인정한다. 그런 점에서 페미니스트 운동은 어쩌면 여성들의 처절한 전투일 수도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젠더 평등은 아주 찬성한다. 즉,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고 성평등을 이뤄가길 바란다. (물론 페미니스트드들은 이런 나를 두고 나이브하다고 할 것이다.)
남성의 경우를 보자. 젊은 남성은 아버지와는 다른 시대에 산다. 아버지는 1인 월급으로 충분히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고, 지금보다 훨씬 많은 파워를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런 가부장적 아버지(사회적 그룹 중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우두머리, 혹은 가부장제의 중심인물)를 보며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남성성이 상실된 시대>에 산다. 즉, 상대적으로 남성의 파워가 줄어든 시대에 살게 된 셈이다. 물론 이게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현상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여성들은 자신의 어머니와는 달리 사회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진일보한 현재를 산다. 그렇다고 지금의 성평등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는 말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점은 백번 동의하고도 남는다. 그저 현상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이처럼 젊은 남성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변화기에 젊은 남성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감정이 쌓여 왔던 것은 아닐까?
즉, 한 번도 소유하지 못했던 남성성을 제거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아닐까?
남성성(Masculinity)은 질서(Order)다
그런데, 남성성을 가지는 것이 책임감 있는 어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고, 우리에게 철이 들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면 어떤가? 남성성은 카오스(혼돈)와 달리 질서의 기초라고 말한다면 어떤가? 더 이상 남성이 남성성을 드러내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 어떤가?
특히 그의 화려한 언변을 보라.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리저리 잘 빠져나가는 훌륭한 언변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의 방대한 지식과 말발로 아주 논리 정연하게 맞받아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조던 피터슨을 보면서, 젊은 남성은 그동안 쌓여왔던 울분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가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해, 늘 보고 자랐던 아버지 세대의 남성성을 되찾고 싶은 것은 아니까? 그리고 그처럼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마치 유시민이 물 흐르듯 논리를 전개하는 말발을 보면서 우리가 그를 그렇게 부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 나도 저렇게 말 잘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특히 마음속 꽁꽁 숨겨둔 응어리에 대한 반격을 아주 근사하게 하고 싶지 않을까?
조던 피터슨의 풀이 죽은 젊은 남성의 심리를 대변한다. 아버지의 강력한 가부장제의 파워는 사라졌다. 한 번도 가지지 못한 남성성의 상실. 그를 되찾고자 하는 남자들의 심리를 대변한다. 다만, 그러나 과거의 남성성과는 달리, 사회에 기여하고, 책임감을 갖고,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가자는 의미의 남성성이지 남녀 평등을 무시하는 주장과는 상당히 결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