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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무브

by 안종현

요즘 푹 빠져서 읽고 있는 책이 있다. 온 더 무브 (On the Move) 올리버 색스가 자신의 삶에 대해 쓴 책이다. 위인전이나 자서전을 읽어본 적이 십 대 이후로는 없는데, 이 의학계의 시인이 펼쳐 놓는 이야기는 나의 온 정신을 쏙 빼놓고 있다.

멋지게 늙은 한 노인이 들려주는 삶의 궤적은 아주 우아하고 지성적이다. 그의 이야기는 솔직하고 담백하고 때론 자신감이 넘친다. 지성적인 내용을 가독성 있게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똑똑한 사람이 지식을 늘어놓는 것은 쉽지만, 똑똑한 사람이 타인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낸다는 것은 다른 성질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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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이 전자책이 쏟아지고 브런치 같은 플랫폼에 글을 쓰는 일이 대세가 된 시점에서 우리는 수많은 글을 읽는다. 그럼에도 왠지 좋은 문학에 대한 갈증은 어느 때보다 더 심하게 느껴진다. 마치 더운 날 한바탕 축구를 하고 왔더니 캔 표면에 물방이 촉촉이 맺혀 흘러넘치는 차가운 콜라를 아무리 많이 마셔도 갈증을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별 영양가 없는 글을 마구 생산해 내는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말할 자격은 없다. 얼마 전 펼친 '핵을 들고 도망친 노인'은 몇 페이지를 읽고 덮어버렸다. '별 쓰레기 같은 소설이 베스트셀러라니...'라는 투덜거리림과 함께 말이다. 전작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재밌게 읽었다는 점을 비춰봤을 때, 나도 그렇게 문학적 수준이 높지는 않다.


좋은 책이다.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심장을 뜨겁게 만든다. 아직 전반부를 읽고 있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으니 마치 이런 생각이 든다.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은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 아주 자극적이거나 어떠한 영양가도 없는 패스트푸드 같은 책들이 대거 등장하고 사랑을 받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이제는 글 쓰는 플랫폼으로 작가들이 이동했다. 긴 호흡으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문학 생태계에서 우리는 어쩌면 진정한 문학을 상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시점을 넘으면 언젠가는 다시 진정한 글을 쓰는 작가를 더 찾게 되는 아이러니를 만나게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오랜만에 찾은 좋은 책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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