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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Oct 06. 2024

영화 '졸업' (1967)

그 시절 우리는 졸업을 했을까?

영화 졸업을 이제야 보게 되었다. 그동안 왜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봤다. 결혼식에서 신부를 뺏어서 도망가는 장면은 너무 유명하다. 이 영화가 그 씬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그 후 많은 영화나 한국 드라마에서 차용하지 않았나 싶다. 진짜 사랑하는 여인과 도망치는 로맨틱한 장면의 아이콘이다. 이외에도 너무 많이 회자된 영화라 마치 내가 이 영화를 봤다고 착각해 온 듯하다. 혹은 그렇게 많이 까발려진 작품을 굳이 봐야 할까?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대중적으로 너무 유명한 영화는 왜인지 꺼려지는 이상한 반항심도 있었다.


우선 더스틴 호프만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 어린 나이에도 벌써 연기를 잘했을까? 재능이 있는 사람을 보는 건 즐겁지만 한편으론 재능이 별로 없는 나를 돌아보게끔 하기에 약간 서글퍼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번에 본 영화는 4K 화질로 복원된 영화였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네마토그래피도 좋았다. 그 시절 어설프게 손으로 돌려서 줌을 당기는 듯한 연출은 의도였는지 기술상의 한계였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피사체에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이 긴장감을 올리는 데는 좋았다. 


영화의 내용은 워낙 잘 알려져 있다. 젊은 남성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이 자신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한가득일 때 다가온 중년 여성 미쎄스 로빈손과 불륜에 빠지며 방황하는 이야기다. 그러다 자신의 불륜 상대의 딸과 진정한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법이 좋았고 긴장감이 느껴져 몰입도도 좋았던 그런 영화였다. 물론 영화에서 사용된 음악이야 말해 입만 아플 정도로 너무 훌륭했다.


오래된 영화고,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라서 포스터의 종류가 다양한 것 같다. 영화의 포스터는 미쎄스 로빈손이 벤자민을 유혹하는 장면의 씬으로 만들어졌다. 매끈한 다리를 드러내며 유혹하는 그 장면을 말이다.  

  

또 다른 영화 포스터를 보면, 미쎄스 로빈손이 큐거(푸마)로 묘사되어 있다. 바에 앉아서 젊은 남성을 쳐다보는 장면은 영화에서 벤자민을 처음으로 유혹하는 장면이다. 큐거는 영미권에서 젊은 남성을 유혹하는 중년 여성을 뜻하는 은어다. 정확히 말해서 포스터에 등장한 동물은 큐거는 아니고 표범이다. 미쎄스 로빈손이 표범 무늬 코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새로운 포스터가 꽤나 마음에 든다.  



영화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가득한 우리들의 젊은 시절을 회상케 한다. 그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불안이었다. 벤자민이 지금 겪고 있는 이 불안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들어가기 직전, 가족과 부모님의 지인들에게 축하를 받는 작은 파티가 개최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벤자민은 그런 축하 파티에 관심이 없다. 풀리지 않는 고민으로 가득하고 미래에 대해 알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는 떨고 있다. 눈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눈물이 맺혀 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벤자민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벤자민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살아보지도 않았고, 경험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게 당연한 나이다. 그렇지만 그 시절 우리는 답도 나오지 않는 문제를 끌어만 안고 있지 않았는가? 답이 없다는 것을 모른 채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인생에 답은 없다고 믿는다. 그건 젊어서도 늙어서도 그렇고 죽음을 다한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답이 없다고 답을 찾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인생의 답을 각자 찾으면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불운의 미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아들 벤자민을 소개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와 수심에 빠진 그를 데리고 아래로 내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계단 벽에 걸린 못생긴 그림이 있다. 바로 '광대'다. 무언가가 무척이나 못마땅한 표정의 광대가 뒷배경에 걸려 있다. 광대는 바로 벤자민을 보여주고 있다. 그럴 기분이 없는데도 부모님의 광대가 되어야 되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에는 이렇게 이해하기 쉬운 상징들이 나와서 좋았다. 괜히 내가 그 상징을 찾아낸 듯한 기분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십분 이해가 가고도 남을 일이다. 



자식은 부모님의 트로피와 같다. 남들에게 보여주고픈 금색으로 뻔쩍이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 부모님의 입장에선 그럴 만도 하다. 열심히 일했고 뼈 빠지게 양육해서 20년 넘게 길러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똥도 오줌도 못 가리던 그런 놈이었는데 이제 그럴듯하게 다 컸다. 그런 자식 놈이 보여주고픈 자랑스러운 결과물이길 바라는 건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이 자식에겐 그다지 유쾌하진 않다. 벤자민은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우리의 전형이다. 인생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절,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온 우리의 얼굴이지 않은가?


영화에서 '관계'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바로 '대화'다. 벤자민이 불륜에 빠진 상대는 벤자민과 대화를 성가시게 여긴다. 미쎄스 로빈손은 대화 없이 그저 관계만 갖길 바란다. 벤자민은 부모와도 진솔한 대화를 이어가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엘라인의 등장은 새롭다. 영화는 벤자민과 엘라인의 베드씬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끊임없이 대화하는 장면으로 구성해 놓았다. 그처럼 관계에서 대화가 가지는 의미가 크다. 대화를 하지 않는 상대와 진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엘라인이 벤자민이 아닌 다른 남성과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장소가 바로 동물원이다. 왜 동물원을 데이트하는 씬의 공간으로 정했을까? 그건 바로, 엘라인이 지금 데이트하는 남성은 '보여주기 좋은' 인물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사랑하진 않지만 안정적이고 좋은 직업이 예상되는 남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남편감이 될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치 보여주는 가짜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 갇힌 동물과 다르지 않은 삶을 선택하려는 엘라인의 감정선을 보여주기 위해 동물원을 택했을 것이다.   


영화는 경계에 대해서 말하고도 있다. 선을 넘지 말아야 할 도덕의 경계, 어른이 되어야 할 시점의 경계,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야 할 경계 등등.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 진짜로 사랑하게 된 여자 엘라인의 결혼식이 열리는 교회의 장면은 참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유리벽에 가로막힌 벤자민은 다급하다. 이제 신부 엘라인이 새신랑에게 키스를 나누는 순간이었다. 놓치면 안 될 순간이었다. 벤자민은 과연 보이지 않는 유리벽의 경계를 넘어설 있을까? 모든 사람이 축하하는 예배당의 모습을 보라. 그리고 혼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벤자민을 보라. 그런 그가 처음으로 사랑한 존재를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자신의 방황으로 안타깝게 놓쳐버린 여인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이렇게 장면에서 공간은 철저하게 유리벽으로 경계를 나누고 있다. 

벤자민은 유리벽을 손으로 두드린다.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 장면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예수의 등장으로 비치게끔 연출되어 있다. 손을 들고 저 상공에 떠 있는 모습은 처절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구할 예수의 등장이지도 않을까?



그리고 가로막힌 유리벽을 통해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 저 표정은 정말 잊지 못할 명장면이었다. 



벤자민은 그 벽을 넘어 모두가 반대하는 길을 택한다. 그곳은 어른들의 공간이다. 이제까지 한 번도 반항을 한 적이 없었던 그들의 세계로 침범해 황금빛 십자가를 들어 그들을 공격한다. 결혼식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미쎄스 로빈손, 그러나 딸 엘라인은 '나에겐 아냐!'라고 말하며 벤자민의 손을 잡고 도망에 나선다. 



저 십자가에 가로막혀 교회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은 통쾌하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성스러움의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 



영화 졸업은 한 젊은이의 방황과 사랑을 그린 명작이다. 졸업은 단순히 학교를 졸업하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졸업은 벤자민의 삶에서 한 시점을 끊고 새로운 시점으로 나아가는 순간을 뜻한다. 즉,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만 의미 없이 살아온 시절을 졸업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어른의 말대로 살아온 인생은 평온했고 칭찬으로 가득했지만, 자신의 길을 택한 순간 모든 어른들의 불만과 증오로 가득한 순간이 시작된다. 영화는 그런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방황을 졸업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새롭게 나아가는 순간을 그린 영화였다.


그 시절 우리는 졸업을 했을까? 아니면, 졸업하지 못한 채로의 삶을 살고 있을까?


아직 보지 않았다면, 강력 추천하고픈 영화다. 연기도 연출도 이야기 구성도 음악도 모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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