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모습, 스토너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영문으로 구해서 다시 읽었다. 처음엔 한글 번역본으로 읽어서, 원작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좋은 글을 읽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요즘 스웨덴어를 배우기 위해 스웨덴어로 된 책을 읽고 있는데, 내 형편없는 스웨덴어 실력으론 아무래도 깊이가 있는 책을 읽기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 좋은 책을 읽고 싶다!'라고 느끼는 건, 감동 없는 음식을 먹으면서, '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라고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간단히 요지부터 말하자만, 이 책은 정말 다시 읽어도 좋았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이 들 책이 분명하다. 처음에 읽었을 때, 주인공 스토너의 삶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으니 되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감정은 마음 깊은 곳에서 치밀러 올라오는 '화'였고, 스토너를 향한 연민의 '슬픔'이었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어느 대학에서 선진 농업기술을 가르친다."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선 아들이 대학을 가길 권유한다. 아버진 그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자식이 자신보다는 나은 농부가 되길 바랐다. 그렇게 농업을 배우러 들어간 대학에서 스토너는 문학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렇게 석사, 박사를 마치고 같은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책에는 대단히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있지는 않다. 평범한 사람으로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을 겪을만한 일들이 조용히 스토너의 일생을 통해 전개될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화가 났고, 좌절했고, 짜증이 났고, 안타까웠으며, 이해할 수가 없었고, 슬펐다. 보통의 삶을 사는 인간의 이야기를 작가는 너무나 디테일하게 잘 풀어놓았다. 별 이야깃거리가 없을 법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감정을 이렇게 쉽게 빼앗기긴 어려운 일이다. 그게 다 작가의 능력일 테다.
아주 자극적인 사건들이 벌어지는 이야기도 아닌 책에 이렇게 쉽게 감정이 이입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스토너의 인생이 우리의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스토너는 바로 '나'였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동안 스토너에 나를 투영하길 반복했다.
책은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산 것과 같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마음이 닿았던 여러 부분이 있었지만, 한 가지를 뽑자면 이렇다. 스토너의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스토너가 택한 수단이다. 무관심으로 감정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관심의 다른 말로는 열정의 사라짐, 외면, 거리 두기, 객관화와 같은 방법으로 동일시된다. 사랑하던 아내와의 결혼이 실패한 것을 알고는 스토너는 아내에 대해 무관심해진다. 끊임없이 상처를 주는 아내에게서 '화'로 응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정이 넘치던 영문학 교수는 학교 내 서열 싸움에서 희생양이 된다. 그렇게 스토너는 교수로서 수업에 무관심해진다. 열정이라는 뜨거운 감정이 무관심으로 바뀌는 과정이 이 책에선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그렇게 한 인간, 스토너의 삶이 끝으로 다가간다.
스토너가 책의 말미에 이런 말을 한다.
"무엇을 기대했는가?"
"무엇을 기대했는가?"
"무엇을 기대했는가?"
이렇게 3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인생이 끝나는 순간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했을까?
그 문장을 읽으면서 심한 떨림을 느꼈다. 인생의 허무함,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인생의 순간들이 겹치고 겹쳐 끝을 향하고 있을 순간. 긴 여행을 걸어는 가고 있지만 제대로 향하고 있는지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한다. 돌아보면 조금 더 잘할 수도 있었을 것도 같았는데 이젠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 버렸다.
그 순간에 던지는 질문, '무엇을 기대했는가?'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했을까? 나는 이 사랑에서 무엇을 기대했을까? 나는 내가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던 딸에게서 무엇을 기대했을까? 나에게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무엇을 기대했냐고 물어보는 이유는, 그 모든 것에서 자신이 원하던 행복의 결론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질문이 주는 인생의 허무함이 너무 긴 여운으로 남는다.
글을 쓰는 작가라면, 교과서로 삼아도 될 정도로 모든 면에서 훌륭하다. 이야기의 흐름도 좋았지만 군더더기 없이 잘 다듬어진 문장을 읽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늦은 밤 책의 내용에 빠져 잠이 들 생각조차 없어지게 만든다. 너무 늦은 시간 이제 잠에 들어야지 하고 책을 덮었다. 그러나 책 속의 감정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침대 옆 램프를 끄고 눈을 감은채 한참을 멍하게 보낼 정도로 책과 감정이 연결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나는 '이 책이 왜 그렇게 좋았는가?'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딱 집어서 설명하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