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ove and

<포르투갈 황제> 소설 번역을 마치고

by 안종현

음으로 번역한 스웨덴 소설, <포르투갈 황제>가 발간되었다.

정확히 언제 제안서를 돌리기 시작했는지, 지난 이메일 목록을 열어보았더니 8월 27일이었다. 2개월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책이 나온 셈이다.


포르투갈-황제_입체-표지-1080.jpg <포르투갈 황제, 셀마 라겔뢰프>


번역이야 제안서를 돌리기 전부터 완성되어 있었다. (사실 글에 완성이라고 하는 게 있을 수가 없다. 보고 또다시 보아도 다듬어야 할 단어나 문장이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냥 글을 잡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다 큰 아이를 독립시키듯 떠나보내야 할 순간이 온다.)


출간 전 글을 다듬는 시간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

토가 나올 정도로 반복의 연속이다. 같은 내용을 집중해서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풀린다. 그럼 다시 고개를 흔들고, 눈의 초점을 다시 맞추려고 한다. 혹은 잠시 산책이라도 다녀와야 한다. 그런 시간의 반복이다.

지겹고 지루한 시간이다. 신경은 작은 디테일에 곤두서 있기 때문에,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적인 성격이 된다. 늘 만사 평온한 나도, 글을 다듬는 순간만큼은 세상 어느 천재 예술가 못지않게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간을 즐기고 애정하는 변태 같은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내가 책에 쏟는 가장 압축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대한 농도 짙은 애정을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출간 전에 글을 다듬는 시간은 싫기도 하지만, 반대로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잘 쓰인 글은 없다.

물론 타고난 글천재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천재가 있다고 믿고 싶진 않다. 그렇다면 내가 너무 초라해지지 않는가?) 대부분의 문장이 좋은 문장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는, 다듬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수정되어 고쳐지고, 옮겨지거나 삭제되어야 한다. 여러 번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보고, 편안하게 읽히는 문장이 될 때까지 만져야 한다. 수식어는 빼는 게 맛을 더하는지 너무 화려한 문장으로 쓸데없는 표현인지도 두루 살핀다. 어색한 부분은 없는가?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이 문장에 더 나은 단어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사전을 뒤져야 한다. 또 표현이 너무 유치하진 않은지? 쓸데없이 어렵게 쓰인 문장이 아닌지? 너무 지적 허영으로 가득한 표현인지?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은 없는지? 정치(PC)적으로 옮은 표현인지? 현 시대상에서 누군가를 증오하는 듯한 표현은 없는지? 등등을 고려하며 글을 고쳐나간다.

이처럼, 다 완성된 듯한 글도 살펴보면, 고칠 게 너무 많다.


떠나보낼 타이밍? 혹은 용기? 포기?

같은 내용을 수도 없이 읽다 보면, 이젠 감각이 무디어져서 이게 좋은 표현인지 아닌지, 더는 가늠이 어려운 지경에 도달한다. 그때가 되었다면, 이젠 어쩔 수가 없다. 내 손에서 놓아줄 타이밍이다.


인터넷 플랫폼의 글들이 왜 책에 쓰인 글과 다른가?

그건, 그만큼 글을 시간 들여 다듬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 글들은 화면에 보인 글을 한 번쯤 쓰윽 읽고 발행 버튼을 누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직도 종이책 읽기를 선호하는 게 아닐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도 인터넷에 저품질 글을 생산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포르투갈 황제>

포르투갈-황제_배너만들기-광고용.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