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달려도 사람 만나기 힘든 곳
달려보자, 라는 말 뜻에는 '오늘 열심히 해보자'라는 뜻도 있고, 술을 죽도록 마셔서 끝장을 보자는 뜻으로 '우리 오늘 한번 달려볼까?'라고 말하기도 한다. 뭔가를 열심히 하자는 의미도, 뭔가를 열심히 먹고 마시자는 의미에도 우리는 달려보자는 말을 한다.
물론 한때 열심히 일에 달려보기도 했고,어떤 사람에게 버려지는 게 두려워 서럽게 그리고 모양새 없게 매달려 보기도 했다. 또한 어려서 내 주량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겉멋과 오기에 취해 동이 틀 때까지 술로 내달렸던 적도 있다. 그러나 요즘은 정말 일도 아니고 술 마시는 일도 아닌, 순수히 달리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달려보자는'라는 본래 의미에 맞는 행동을 말이다.
스웨덴의 룬드(Lund)라는 작은 도시에 살게 되었으니, 가끔 시간을 내어 이 작고 아름다운 동네를 달린다.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의 길바닥은 보통 비슷하게 사각형 돌을 깔아놓는다. 중세의 고풍스러움을 표현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싸하게 오래된 타운 같아 보이긴하다. 그러나 이게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기엔 그렇게 썩 좋은 환경을 제공하진 않는다.
여행을 가거나 모르는 동네를 느끼는 가장 적절한 방법 중 하나는, 걷거나 달리는 일이다. 지하철을 타면 도시의 땅 밑으로 이동을 하기 때문에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기엔 한계가 많다. 지하철보다는 버스가 좋은데, 모르는 나라에서 버스를 타기는 조금 어렵다. 그래서 나는 왠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닌다. 더운 나라를 여행할 때는 엄청난 습도와 더위에 기진맥진하고 말지만, 그래도 발다닥으로 더듬고 다니는 거리의 풍경은 지리를 익히고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은 골목길을 걷게 만드는 행운을 안겨다 준다.
조금 더 달려, 마을 외곽에 도착했다. 한적한 도로, 늘 자동차로 붐비던 한국의 도시와는 다르다. 저 텅빈 아스팔트 도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왜 한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까? 마치 외로운 도시의 공간에서 위로를 받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나저나 스웨덴의 사람들은 다들 뭘하느라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걸까?
여행을 갔을 때는 천천히 동네를 걸어보고, 만약 그 동네에 오래 머물 일이 생겼다면 주변 외곽까지 달려보기도 한다. 그럼 몰랐던 골목길에 들어서기도 하고, 관광객이 아닌 주민들이 주로 다니는 길과 알려지지 않은 곳을 발견하게 된다.
아름다운 숲과 공원이 많은 룬드에는, 이렇게 달리면 사람도 별로 없는 곳들이 어마무시하게 많다. 누군가의 그리움으로 가득한 공원같은 묘지는 생각보다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자세한 사연은 알 길이 없지만,누군가의 아름다운 아기를 묻은 것만 같은 묘지엔, 평소 애기가 놀던 모습을 형상해 놓은 조각상이 있었다. 그 조용한 공간을 사이로 높고 푸른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다운타운에 있는 교회를 지나서, 조금 더 달려가면 보드를 타는 공간도 있다. 주로 동네의 아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이곳에선 많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 미스테리다. 거리를 달릴 때마다 수많은 집들을 보는데, 이곳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달려서 좋은 건, 달리는 거리와 시간만큼 정직하게 뱃살을 잃어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마을의 구석구석 푸른 곳을 만나서 좋다. 조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어느새 어두어지고 있었다. 타운의 오래된 건물은 고풍스럽고, 사각돌로 포장한 골목길은 하루의 마지막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몰랐던, 익숙하지 않은 길을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