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잘생겨진 남자
지금은 양곤
미얀마 양곤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이곳은 뭐랄까 예전 내가 살던 스리랑카를 떠올리게 만드는 나라다. 덥고 습한 날씨, 치마 같은 천을 두른 옷을 입는 남자들(스리랑카는 사롱, 미얀마는 롱지라고 부른다.)부터, 영국 식민지의 영향으로 형성된 도시 시스템, 식민지 양식의 건물, 반쯤 무너져 내린 건물들, 불교국가, 비슷하게 보이는 문자, 사람들의 생김새까지... 모든 것이 스리랑카를 떠올리게 만든다.
여행으로 온 게 아니기에 아직 많은 것을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마치 기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빠른 속도로 내다보듯 바라보고 있기에 미얀마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저 내가 잠시 살고 있는 곳의 풍경을 사진기에 담을 뿐이다.
지금은 우기
요즘은 우기라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비가 온다. 비가 자주 오지만 아주 소량으로 부슬부슬 내리는 스웨덴과는 또 다르다. 스웨덴에서는 비 오는 날, 우산을 쓴 유럽인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들은 비 오는 날 우산을 쓰는 것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비가 오는데 굳이 우산을 쓰지 않고 젓은 바짓가랑이로 처량히 걷는 게 이상해 보인다. 그리고 비가 와도 조깅을 하러 다니는 사람도 대단하거나 유난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는 비가 오던 안 오던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게 낫다. 그것도 되도록이면 큰 우산으로 준비하면 좋다. 왜냐면, 비가 오면 엄청난 양으로 쏟아지기 때문이고, 또한 비가 오지 않더라도 우산은 더운 햇빛을 피하기에 가장 훌륭한 수단이다. 그래서 난, 여기 도착 2주 만에 현지 사람들처럼 맑은 날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우산을 쓰고 있다.
비가 오지 않는 날,
우산을 쓰게 된 이유는 이렇다
현지인들 틈에서 살다 보면, (이렇게 표현하는 게 싫지만) 그들의 피부색에 비해 내 피부색이 하얀 편이라 내가 이곳에 도착해서 얼마나 새까맣게 탔는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이곳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줄리와 같이 사진을 찍어보고 깨달았다.
'나... 엄청 새까맣게 탔구나...'
물론 우산을 앞으로 평생 쓰고 다닌다고 하여, 하이트닝 효과가 북유럽 덴마크에서 온 그녀를 이길 방도는 없지만, 그래도 문제를 악화시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난 땡볕에 우산을 쓰고 다니는 현지인들과 같은 생활의 지혜를 선보이고 있다.
친구는 말했다,
하얀 피부를 가지는 건 미얀마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어느 날 금융권에서 일하는 현지인 친구가 말했다. 미얀마에서 검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자리 구하는 건 물 건너 간 일이라고 말이다. 미얀마 일류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그 친구는 그래서인지 엄청나게 뽀얀 우윳빛 피부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엄청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피부가 하얗다는 건 부유한 집안 출신임을 뜻한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법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일단 피부가 하얀 사람은 밖에서 일하는 험한 일 대신 실내 에어컨이 빵빵한 오피스에서 일하는 화이트 칼라일 확률이 높다. 또한 버스 대신 자가용을 이용할 확률이 높다. 왜냐면 버스를 탄다는 것은 오랜 시간 밖에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태닝의 환경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다는 건, 그 사람의 재력을 어느 정도 가늠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게 북유럽은 또 다르다. 북유럽에서는 반대로 태닝한 피부가 재력이 있다는 걸 증명한다. 햇빛이 좋은 나라로 휴가를 떠날 만큼 재력과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걸 에둘러 설명하기 때문이다.
모두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선망하는 바람이 있다.
양곤은 아름다운 도시인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양곤의 다운타운 쪽이다. 지도를 보면 양곤의 남쪽 부근으로 주거용 주택이 다닥다닥 좁게 블록단위 안에 계획되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다운타운은 현지인보다는 외지인이, 일하는 외국인보다는 잠시 관광차 온 외국인이, 순수 버마족보다는 이민자(인도 혹은 중국계)들이 많이 몰려 산다. 현지인 친구 말에 의하면, 양곤의 다운타운은 '상류층이 별로 오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운타운이라고 그럴싸한 쇼핑몰도 없거니와, 복잡한 데다 위험한 동네라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인지는 모르겠지만 힙스터 레스토랑이나 술집들이 생겨나고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그 현지인 친구는 자기는 태어나서 딱 2번 타운에 올 정도로 과거에는 별 볼 일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양곤이 아름다운 도시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건 조금 더 살아보고 말하는 게 나을 거 같다. 그러나 사람 사는 냄새가 강하게 묻어나는 곳임은 틀림없다. 한국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어딜 가도 한국 음식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간단한 인사를 한국어로 건네는 경우도 많다. 한국인은 잘생기고 친절하고 깔끔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래서 현지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친절하고 깔끔하려고 노력하지만, 잘생김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기에 가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내심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늘 나에게 "잘 생겼어요."라고 말해준다. 글쎄, 스웨덴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칭찬이기에 이 나라에 정이 가기 시작한다.
해가 지면 어기적 어기적 나와 산책을 가는 곳에서 보이는 술레 파고다의 모습, 현재까지 일상에서 즐기고 있는 양곤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술레 파고다를 중심으로 밤이 늦도록 식사나 술, 연인과의 데이트를 즐기는 현지인들의 소소함을 볼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