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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Nov 20. 2018

사소한 사기와 지독한 설사는
인도 여행의 정석이지

누군가 나에게 두 번째 고향이 있냐고 묻는다면,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인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인도는 나를 두 번째로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곳이다. 그곳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건 아니었지만, 내가 알던 세상을 흔들어 일깨워준 곳이 바로 인도였다. 

나에게 선택이라는 권리를 준 적이 없었던 첫 번째 고향과 달리, 두 번째 고향은 내 발로 걸어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나저러나 난데없이 이상한 세상으로 떨어졌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지만 말이다.



왜 하필 인도야?

어느 날이었다.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는 말을 전해들은 한 친구가 말했다. 

“이런, 왜 하필 인도야?”

모든 인생사를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친구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어느 날 배낭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나라가 인도 밖에 없었어. 딱히 다른 나라가 생각나질 않아.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이 사라지고 인도만 남아버린 것만 같아. 그래서 인도 말고는 갈 곳이 없는 거지.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야.”

친구는 몹시도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인도가 흥미로운 나라긴 하지. 그런데 조금 무섭지 않니?”

“뭐가 무서워?”

친구는 평소 이상한 소릴 잘한다. 물론 창의적인 아이라서 남들이 모르는 이상한 정보에도 밝은 편이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괴짜라고 부른다.

“인도에 관한 괴소문 말야.” 

“또 무슨 소리하려고...”

친구가 말을 꺼낸다.

“인도 여행하다 장기적출을 당하거나, 살인을 당하거나, 납치며 강간이며 성추행이며... 휴, 인도는 도대체 이런 일들이 셀 수도 없이 일어나는 거 같아. 그러니까 이런 얘기 전혀 안 들어본 건 아니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범죄가 일어나는 곳, 그곳이 바로 네가 가려는 인도야!”

이 친구의 재 뿌리는 이야기가 다소 못마땅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그럴까?’라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말았다. 

여기서 멈출 친구가 아니다. 친구는 아예 자리까지 편하게 잡고 진지하게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사소한 사기와 지독한 설사는 인도여행의 정식 코스인 셈이지.

“그러니까 잘 들어 보라고, 인도로 떠나기 전에 말야.”

“이게 네가 앞으로 겪게 될 일이라고 예상하면 돼. 네가 인도로 가잖아, 그치?” 

“어, 그래.”

“넌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사소한 사기를 당하기 시작할거야. 넌 좀 어벙한 구석이 있으니까 인도사람들도 한눈에 이놈이 사기쳐먹기 쉬운 놈이란 걸 알아볼 거라고. 너도 알잖아? 사기도 쳐보면 어떤 놈이 쉽게 넘어오는지. 뭐 그런 셈이지. 게다가 인도 놈들이 좀 똑똑하잖아. 그치?”

난 대답하지 않는다. 

“물론 넌 건축을 공부하니까, 타지마할이나 인도의 웅장한 건축물에 반해 그깟 사소한 사기쯤이야 별게 아닌 일로 치부해 버리고 말겠지. 순백의 타지마할과 같은 기념비적 건물을 보는 일로 모든 걸 보상받았다고 생각할거야. 그렇게 인도의 색다른 건축물을 둘러보며 만족해하는 순간, 인도 길거리 식당에서 먹은 음식 때문에 지독한 설사에 걸리고 말거야. 그러니까 그건, 네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설사야. 어떻게 먹은 것보다 더 많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설사란 말이지. 너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휴지도 없이 일을 치러야할지도 몰라.” 

다른 건 몰라도 화장실에서 휴지 없이 일을 보는 건 조금 걱정이 된다.

“사소한 사기와 지독한 설사는 인도여행의 정식 코스인 셈이지.”

담담하게 말하는 친구에게 내가 항의한다.

“그게 무슨 정식 코스야? 그런 게 어디 있어?”

소심해진 내가 따져 묻지만, 친구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정말 서막에 불과해. 아주 사소한 문제란 말야. 여기서 끝나면 그래도 인도여행은 별 무리 없이 마친 축에 속하니까...”

‘저 자식은 또 무슨 말을 더 하려고 저럴까?’ 



인도 여행은 친구의 말처럼 위험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아주 다르지도 않았다.

친구는 내 감정 따위는 고려치 않고 자신이 할 말을 한다.

“그러니까, 너는 결국 밤새 계속되는 설사에 기운도 다 빠져버리고 여행할 의욕도 조금 사그라져버리겠지. 그 때가 본격적으로 사건이 시작되는 거야. 네가 육체적으로 힘들어 정신이 없을 때 말이지. 몸이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멀쩡한 사고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아무리 냉철하기로 소문난 너도 어느 정도 주변에 대한 경계가 허술해질 수밖에 없어. 바로 그때, 넌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하는 거야. 그리고 그들은 마취도 없이 네 배를 쩍하고 갈라선 장기를 빼내고 이불이나 꿰맬 때 쓰는 나일론 실로 벌어진 배를 대충 꿰매놓겠지. 어설프게 치료된 상처는 곪아 터지고 고름은 흐를 테고. 넌 고통도 고통이지만, 쇼크에 빠져 어떠한 고통도 감각도 잃은 지 오래일거야. 아마 너는 혼미한 정신으로 누군가 네 뱃속을 손을 넣어 장기를 빼내는 걸 보았을 테니까 말이야. 그리곤 혼절하고 말겠지.”

내 표정은 조금 심각해졌다. 이 친구가 나를 겁주는 게 이 대화의 목적이라면, 빌어먹을 그놈은 성공했다. 친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근데 널 납치한 그 사람들은 널 그냥 보내주진 않을 거야. 너를 가지고 어떻게든 돈을 최대한 뽑아야 한다고 작정을 한 사람들이니까. 뭐 그런 놈들에게 자비나 인간애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하는 건 아니겠지? 너는 겁에 질려 이상한 소리만 나오는데도 쉬지 않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겠지. 그런 너를 보면서, 너를 납치한 인도인은 하늘을 향해 손을 치켜들면서 이 모두가 신의 뜻이라고 절망에 빠진 너를 보며 슬쩍 웃으며 말하겠지. 그러니 너무 화를 내거나 절망하지 말라고 위로하면서 말이야. 다음 생에 행운을 걸어보라고 말하겠지. 그 놈은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결국은 너를 서커스단에 팔아넘길 계획까지 미치게 되지.”

“야, 이놈아. 무슨 서커스까지 등장시키고 그러냐? 그건 좀 오버지 않니?”

그러나 친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문제는 네가 서커스에 그대로 가면 상품가치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그들은 너의 눈알 하나를 뽑아버리고, 다리 하나도 잘라버리는 거야.”

“이러다 고어 영화 찍겠네...”

친구는 개의치 않는다.

“타지마할이나 보려했던 불쌍하고 순진했던 건축학도는 결국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인도 각지를 떠돌며 외발이에 외눈박이가 되어서 바람을 넣은 커다란 공 위에서 균형을 잡느라 애쓰고 있을게 분명해. 그리고 인도 사람들은 너를 보며 배꼽 잡고 웃느라 정신이 없겠지. 어디서 저런 멍청한 외국인을 구해왔냐고 물으면서 말이야.”

끝내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자식은 친구가 인도로 처음 배낭여행을 떠난다는데, 고작 한다는 말이 이딴 괴소문만 늘어놓질 않나. 이 자식, 이거 설마 내가 그렇게 당하길 바라는 거야 뭐야?’

별다른 말없이 인상만 구기고 있던 나에게 친구가 말한다.

“어때? 꽤나 일리 있는 이야기 아냐?”

친구는 웃으면서 내 어깨를 한번 툭 치고는 여자 친구와 데이트 시간이 늦었다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허름한 학교 매점에 놓인 싸구려 인조가죽 소파에 홀로 남겨진 나는 친구가 떠난 자리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소파에는 담배로 구멍이 뚫리고, 군데군데 사연을 알길 없는 얼룩들이 남겨져 있었다. 





이 글은 <위로의 글을 따라 걸을 것>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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