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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Sep 06. 2018

가볍고 가벼운 그 가치관의 차이

“근데 이건 뭐야?”

친구는 조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뭐긴 뭐야. 대마초지.”

‘세상에, 그러니까 이게 말로만 듣던 대마초라는 거구나. 그렇다면 지금 난 대마초 파티에 와 있는 거구나. 이런... 젠장!’ 

곰곰이 생각해본 순간, 난 잘못하면 완전 골로 가는 상황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화들짝 놀란 내가 말했다.

“난 담배도 안 필뿐더라 대마는 더더욱 안 피는데.”

네덜란드 정원사는 대마초를 호기롭게 피우며 말한다.

“우리나라는 대마초도 합법이고, 매춘도 합법이지. 그리고 동성결혼도 합법이지.”

그리고 나는 그런 네덜란드 친구를 바라보며 말한다.

“우리나라는 대마초도 불법이고, 매춘도 불법이지. 그리고 동성결혼도 불법이지.”

곰곰이 생각하니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 그것도 극단적으로 다를까?’

“그런데 웃기지 않아?”

“뭐가?”

“어느 나라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일들이, 갑자기 다른 나라로 가면 문제가 된다는 거 말야. 당장 한국과 네덜란드를 비교해봐. 왜 한국에선 안 되는 일이 네덜란드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이곳에서는 옳은 일인데, 저곳으로 가면 틀리냐 말이지. 같은 문제와 같은 현상일 뿐인데. 물론 살아온 삶의 방식이 틀리고 문화가 틀리니까, 그리고 생각의 방식이 다르니까, 그건 어쩌면 당연한 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상하지 않아?”

대마에 기분이 좋아진 네덜란드 정원사가 말한다.

“간편하게 문화의 차이고 삶을 사는 방식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근데 생각해봐. 그건 가치관의 가벼움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해.”

“가벼운 가치관?”

“어느 나라에서는 확고한 가치관이 다른 나라에선 전혀 다르게 통용되지. 이 얼마나 가볍디가벼운 가치관이니?” 

네덜란드 정원사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원을 돌면서 점점 줄어든 대마초를 조심스레 빨아들이고는 다시 말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언제든지 쉽게 변할 수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 그저 자신과 다르면 싫어하고 배척하지. 오늘의 진리가 내일의 진리로 이어질 거란 믿음은 정말 멍청한 아집에 불과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믿음은 정말 가벼워. 그리고 국가와 종교가 제시하는 가치관은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지. 누구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른다고. 그건 아무도 몰라.”

친구는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야. 너는 이렇게 앉아서 대마초를 피우는 우리를 너의 기준과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있겠지. 아마 약쟁이에 미친 서양 놈들이라고 판단할지도 몰라. 물론 내가 여기서 너를 비판하려는 의도는 없어. 그저 궁금해서 그러는 거야.”

나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물론 열심히 일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삶이 중요하지. 근면하고 정직하게 자기에게 맡겨진 업무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한국인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한국은 가난하던 시절을 보내고 도시를 건설하는데 성공했어. 그건 정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엄청난 일이야. 그런 근면한 민족성을 가진 나라를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어.”

“어떤 생각?”

네덜란드 정원사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아주 천천히 말했다.

“과연 그렇게 사는 인생은 재미가 있을까?”

사람들은 술에 취해서, 여행의 순간에 취해서, 마약에 취해서 흥에 겨워 보였다. 그 옆에서 네덜란드 친구가 조용히 물었다.

“너에게 진짜 묻고 싶어서 그래. 넌 그런 삶이 재미있니?”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랬다. 나는 네덜란드 정원사가 말한 가벼운 가치관조차도 가지지 못했다. 나만의 아집으로 가득 찬 가치관조차도 말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사회의 규칙, 그리고 다수가 말하는 가치관을 따르며 살았을 뿐이다. 

‘나도 그렇게 사는 삶이 참 재미없었어.’

나는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기적인 가치관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난 어디로 갈지를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 가볍고도 가벼운 가치관에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 이 글은 책 <위로의 길을 따라 걸을 것>에서 더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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