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건축여행기 #6
시나몬 언덕(Cinnamon Hill) 위에 오르면 저 멀리 산 중턱에 위치한 절의 다고바(불교 사원의 탑)가 보인다. 푸룬 숲속에 깊숙히 묻혀 있는 흰색 다고바를 눈이 그렇게 좋지 않는 내가 찾기는 쉽지 않았다. 현지인이 손가가락으로 연신 다고바를 가르키지만, 미간을 찌푸려보아도 쉽사리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아주 작은, 그러니까 그곳에 흰색 둥근 탑의 다고바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곳에 다고바가 보였다. 다고바는 시선을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울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시나몬 언덕에 있는 한 건물의 화장실에는 바와가 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에도 이 다고바를 조망할 수 있도록 조그마한 창까지 만들어 놓았을 정도로, 바와는 이 다고바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다고바가 잘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아주 작게 보일 뿐인데도 말이다. 화장실에 앉아 일을 보는 그 순간, 작은 창을 통해 바라보는 그 다고바는 어떤 느낌일까? 갑자기 그 화장실을 찾아 앉아 보고픈 강한 열망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루누강가를 안내하는 남자에게 용기를 내어 물었다.
"저기... 그 바와가 다고바를 보면서 큰 일을 봤다는 그 화장실, 저도 한번 사용해 볼 수 있을까요?"
언제 다시 이곳을 올지 기약할 수 없는 나에겐 부끄러움보다는 궁금함을 충족시키는 일이 더 급했다.
그러나 그는 딱 잘라 안 된다고 거절했다.
'별... 화장실 한번 쓰자는 거 가지고, 유난이네.'
그리고 딱히 무엇 때문에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는지에 대한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그냥 나를 앞서서 다른 장소에 서둘러 가더니, 내가 따라오지 않자 멀리서 잎사귀나 뜯으며 내가 오기를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와는 정기적으로 사원에 후원금을 보내 다고바가 흰색으로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도색비용을 지원했다. 다만, 그가 바라보는 다고바의 부분, 즉 절반의 비용만을 후원했다고 하니, 그를 논리적인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야박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참, 독특한 사람이야.’
아마 바와에겐 자신의 정원 밖 멀리 있는 다고바도, 정원 옆을 따라 흐르는 강도, 저 멀리 강 건너 열대우림도, 불어오는 바람까지 모두가 자신의 건축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임이 분명했다.
정원을 따라 거니는 일은 상당히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제각각인 지층을 연결하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정원을 걷다보면 시선에 따라 만들어지는 다른 분위기가 즐겁다.
이곳의 기후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한다. 도대체 그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가 없다. 스리랑카에 살면서 그 누구도 뉴스에서 일기예보를 보는 사람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스리랑카의 기상을 예측하는 기술이 그렇게 발달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스리랑카에서 날씨를 예측한다는 것은 정말 쓸잘데기 없는 일에 불가하기 떄문이지 않을까?
정말 이곳은 시시각각으로 날씨가 변하고 시도때도 없이 비가 온다. 그나마 현지인이 멀쩡한 하늘을 바라보며, '곧 비가 올거야. 그러니 얼른 집에 돌아가라구...'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고, 그럴땐 어김없이 20분 내로 비가 왔다. 그렇게 동물적인 감각으로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굳이 오늘의 비 올 확율은 60%인지 혹은 67%인지 알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열대우림의 후덥지근한 날이 계속되는가 싶다가도, 금방 어두워지고 비구름이 몰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비가 있는 힘을 다해 한껏 쏟아지기 시작했다. 난감해진 나는 근처에 있는 아무 건물 밑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그 건물은 처마가 깊은 지붕을 가진 집이었다.
비오는 날의 홍차를 좋아한다. 한국에선 홍차를 마시는 습관이 없었지만, 이곳에 와서는 커피대신 홍차를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의 홍차 한잔은 정말 궁합이 잘 맞는다. 그날도 나는 홍차를 한잔 시켰다.
처마 밑에 앉아 비가 내리는 밖의 풍경에 바라보았다. 내가 앉은 자리에선 북쪽 테라스와 설치된 조각상이 보였다.
그곳엔 나말고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오늘 난 이곳을 찾은 유일한 방문객인것 같았다. 이곳을 독차지하고 앉아 자연이 주는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었다. 홍차를 날라다 주는 직원의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비 내리는 밖의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본다. 빗물이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그대로 실내의 공간으로 울린다. 웨이터가 들고 온 차는 인상이 쓰일 정도로 형편이 없다. 그러나 짜증도 잠시. 고요한 적막을 빗소리로 채우는 공간에서 혼자 남겨져 있다. 머리가 멍해지고 생각하기를 멈춘다. 그저 깊은 처마 밑으로 보이는 강과 나무의 단조로운 풍경에 빠져든다. 완벽한 외로움은 완벽한 고요함으로 다가온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을 보는 것만 같은 편안함과 한적한 외로움을 동시에 느낀다. 아무도 이해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내 고독을 이 세상 누군가도 느끼고 있다는 점에 안도감을 안겨주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갑자기 떠오른다.
'루누강가의 자연이 지금 나를 압도하고 있다.'
비는 한참을 내릴 기세로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새 해가 비치기 시작헀다. 내 기억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날씨는 금세 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씩 젖었던 땅이 천천히 말라가고 있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는 두터워져 마치 아주 섬세하게 얇은 막을 여러 겹 공기 중에 걸쳐 놓은 듯 지나갈 때마다 습기가 느껴졌다.
이곳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다. 정원에는 여러 가지 설치물들이 즐비하다. 정원 곳곳에는 16개의 종이 있는데, 넓은 정원에서 바와가 직원을 부를 때 사용했던 종들이다. 울리는 위치를 구분하기 위해 종은 각기 다른 소리를 가지고 있다. 맑고 오래가는 소리가 있는 반면, 짧고 된소리로 듣기 거북한 소리까지 다양하다. 각기 다른 소리를 가진 종을 듣고 직원은 바와가 어디쯤 있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정원이 워낙 넓으니 전화를 걸어 설명하기도 힘들 게 분명하다. 차라리 이렇게 각 장소마다 다른 음색을 가진 종소리를 듣고 찾아가는 편이 더 편리할 것이다.
엄청나게 큰 정원을 거닐다 곳곳에 숨겨둔 소리가 다른 종소리를 들은 직원이 바와가 있는 장소로 천천히 걸어왔을 것이다. "Sir, 뭘 원하세요?" 라고 말이다.
또한 그의 많은 동료들이 만들어 설치한 예술작품이 곳곳에 비치되어 오브제를 이루고 있다. 얼굴형상을 한 화분, 고대 중국의 큰 항아리, 해시계, 조각상, 통로의 벽화 등이 산책하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당대 스리랑카에서 활동했던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이곳에 집결되어 있다. 현지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호주와 인도의 예술가를 비롯해 해외 예술가와 협업한 작품도 있다.
이 넓은 정원에서 바와는 하루 세끼의 식사를 다른 장소에서 즐겼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던 괴팍한 노인의 여유가 느껴진다. 독특한 시스템의 이 집과 정원은 철저히 바와의 취향을 따르고 있으며, 남다른 그의 생활패턴을 보여주는 곳으로 건축양식부터 작은 소품, 정원배치와 나무까지 그가 한 평생 추구했던 미적가치와 철학이 집약된 곳이다.
1992년 바와는 시나몬 언덕의 가장자리에 또 다른 방문객용 집을 짓는 것을 끝으로 이 정원 프로젝트는 마무리되었다. 2개의 방을 가진 작은 규모의 집이었다.
바와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시신은 평소 그가 사랑하던 다고바가 내려다보이는 곳인 시나몬 언덕위에서 화장되었다. 스리랑카의 건축계는 큰 스승을 잃었고, 그가 남긴 바와만의 고유한 스타일은 이제는 현대의 스리랑카 건축의 새로운 건축가들에게 재해석되고 있다.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바다 건너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그들은 이곳에 머물며 밤에 야생동물이 내는 소리에 겁에 질리고, 지루한 삶의 생활을 버티다보면 어느새 찾아오는 고요한 삶에 흠뻑 빠져들고 만다. 방문객들이 남겨놓은 오래되고 묵직한 방문록에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과 그림들로 빼곡하다.
그의 사후, 이 루누강가는 여러 명이 지분을 나눈 호텔로 운영되고 있다. 공용건물을 비롯한 정원의 곳곳이 투어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객실로 사용되는 건물은 불행히도 접근이 불가하다. 물론 비싼 숙박비를 지불한다면 말이 틀려지겠지만.
한 개인의 전설이 된 소금의 강, 루누강가는 내 인생 최고의 걸작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