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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되고 싶었던 호텔(1)

스리랑카 건축여행기 #7

by 안종현

칸달라마 호텔(Kandalama Hotel)

1991-94, Dambula


칸달라마 호텔은 제프리 바와가 남긴 가장 창의적이면서도 자연에 대한 그의 실험정신이 잘 표현된 작품으로 유명하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바와의 최고의 작품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건축물을 바와의 최고 걸작으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처럼 이 호텔이 그렇게까지 유명해진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뭐랄까... 이 호텔은 제프리 바와의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곳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가 '나는 건축을 이렇게 짓는 게 가장 좋아.'라고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곳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호텔을 보고 있으면 꼭 자연이 되고 싶었던 하나의 건물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거대한 정글 숲 속에서 자연이 되고자 했던 호텔을 말이다. 틀림없이 자연이 될 수 없는 인공의 건축물을 가지고 바와는 또 장난을 쳤을 것이 분명하다. 그 영악한 영감은 또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


kandalama-hotel-02.jpg 칸탈라마 호텔



이딴 곳에 호텔이라니...


이 호텔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 중의 하나인 시기리아(Sigiria)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건물이다. 시기리아는 바위 위에 지어진 바위 성으로 마치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를 떠올리게 한다.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관광지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바위성 하나 때문에 스리랑카를 찾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기리아와 칸달라카 호텔은 그렇게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호텔에서는 호수를 건너 저 멀리 조그마한 시기리아 바위가 보일뿐이다. 차로 이동하면 약 40분이나 걸리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시기리아를 찾는 많은 여행객들이 이 호텔에서 숙박을 해결한다. 먼 거리의 불편함을 감내해서라도 이 호텔에 묵을 이유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Sigiriya5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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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rial-View-of-Sigiriya-Rock-Fortress (1).jpg 시기리아(Sigiria) 바위성


콜롬보에서 칸달라마 호텔이 있는 담불라(Dambula)까지 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일본에서 지어준 거대한 좌불상이 미소를 머금은 채 높은 곳에서 타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리랑카는 흰색을 숭배해 다고바를 비롯해 부처의 상에도 흰색으로 칠을 하는데, 유독 일본인들이 지어 기부한 불상만 황금빛을 띠고 있다. 한 낮의 강렬한 햇빛이 황금 부처의 어깨와 무릎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그러나 난 이 불상을 보고자 온 것이 아니기에 가볍게 이 유명한 관광지를 지나쳤다.


dambulla.jpg 담불라 석굴


삼거리에는 손님을 기다리다 지쳐 잠든 트리윌(뚝뚝, 인도/태국 등에서 사용되는 오토바이 같은 세발 달린 운송수단) 기사 아저씨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찌나 깊은 잠에 빠졌는지 다가가도 일어날 낌새가 없어 보였다. 잠시 망설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같이 다들 낮잠 삼매경이다. 어쩔 수 없이 처음 다가간 트리윌 아저씨를 흔들어 깨워 별 의미 없는 가격을 흥정하고 칸달라마 호텔로 향했다.

자연환경을 잘 살린 칸달라마 호텔은 자연에는 친화적일지 모르지만,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이곳은 너무 외딴 곳에 지어져서 자동차가 아니면 접근하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바와는 어쩌자고 이렇게 깊고 깊은 곳에 호텔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처음 호텔을 찾아가는 멀고 먼 길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외딴 곳에 호텔이라니. 장사가 되겠어?’


그러나 내가 굳이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이, 장사는 꾸준히 잘되고 있는 것 같았다. 워낙 입소문이 자자한데다, 돈 많은 유럽 관광객들은 굳이 불편한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지 않고 자가용을 빌려 이동하기 때문에 그들에겐 딱히 불편함은 없어 보였다.

누가 그랬던가? 가난은 불편한 뭐시기라고? 그래서 난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당연히 폴폴 날리는 먼지를 마시며 칸달라마 호텔로 향했다.


그나저나 이 기사 아저씨는 일을 엄청하고 싶었던 게 분명했다. 그는 정말 신나서 전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마도 오후가 다 되도록 아무 손님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오랜만에 얻은 돈벌이일 것이다.




바와는 자신의 건축물로 향하는 곳마저도 디자인을 했다


트리윌은 한 참을 달려, 이제는 담불라 타운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도로는 포장도로에서 비포장으로 바뀌어 굴러가는 바퀴가 먼지를 풀풀 만들어낸다. 바와는 자연에 최소한의 부담을 주기 위해 이렇게 호텔로 진입하는 도로마저도 포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길이 생길 자리에 있었던 나무는 죄다 파서 조심스럽게 다른 곳으로 옮겨 심었다. 칸달라마 호텔로 가는 길이 조금은 귀찮고 먼지가 날리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원래의 건축주 의도대로라면 이 호텔은 시기리아에 지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바와는 시기리아에서 11km나 떨어진 외딴 숲 속에 호텔을 짓자고 건축주를 설득했다.

그렇게 된 사연은 이렇다. 바와가 호텔 설계를 의뢰 받아 대지를 살펴보러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문득 헬리콥터 안에서 내려다본 호수와 어우러진 숲의 모습에 바와의 눈에 들어왔다. 순간 바와는 이 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건 시기리아 근처에 호텔을 짓는 당초의 계획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그는 건축주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시기리아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역사적 유적지를 보호하는 한편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잘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건축가가 자본가의 생각을 이렇게까지 바꿀 수 있었다는데 조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한국이라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일이다. 특히 이로인해 거대한 자금이 필요한 일이라면 더욱 그러지 않을까. 물론 바와 같은 영향력이 큰 건축가의 제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건축가의 제안 하나로 접근이 상당히 불편한 숲 속에 호텔이 생겨났고, 돈 없이 여행하는 중이라 나는 그 불편함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먼지가 날리는 길을 약 9km나 달리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구석진 곳에 호텔이라니?’

매끄럽지 못한 흙길이 계속되고, 양 옆으로는 빽빽하게 들어 찬 열대의 나무들이 반복해서 지나간다. 지루하고 지루한 풍경을 계속해서 지나가면, 과연 어떤 건축물이 짠~!하고 등장할지 정말이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고생을 하고 가는 길인데, 별로이기만 해봐라, 아주..' 이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런 곳에 호텔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 도대체 어떤 호텔이 있는 거야?’



오랜 지루한 길을 지나서야 칸달라마 호수가 바라보이는 호텔 언덕길에 도착한다



인내심이 약간 바닥을 드러내고 이런 의심 같은 생각이 본격적으로 들 때, 바로 그때 말이다 트리윌은 지루하고 궁금함을 걷어내고 칸달라마 호수가 바라보이는 언덕 앞에 도착하게 된다. 지나쳐왔던 지저분한 도로는 사리지고, 탁 트인 칸달라마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의심으로 가득 찼던 나무 숲길을 통과하고 얻은 시야의 해방감으로 극적인 공간의 변화를 맛보게 된다.

이렇게 제프리 바와는 호텔까지 오는 길 동안 사람들이 느끼게 될 생각마저 디자인했다.

‘이 영감, 참 영악한 사람이구나!’



DSC_0201.jpg 칸달라마 호텔입구를 오르는 언덕길


바와의 건축물에서 물은 자주 애용되는 소재다. 스리랑카 건축과 도시에서도 물은 역사적으로 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식수문제와 농업용수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물은 열대의 더운 공기를 식히고 저녁이 되면 낮 동안의 열기를 씻기 위한 좋은 공용 욕탕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큰 인공호수를 끼고 발달한 고대도시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쾌적한 이유는 바로 물이 주는 효과 덕이 컸다.


오르막길의 끝에 있는 거대한 캐노피가 산 속에 몸을 감춘 호텔 몸의 일부임을 암시해준다. 아주 잘 빠진 캐노피는 섹시하기까지 하다. 수평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지붕을 네 개의 기둥이 지탱하고 있다. 작은 사이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붕의 압도적인 스케일 때문에 기둥이 늘씬해 보인다. 입구의 안쪽은 갈수록 좁아져 어둠에 휩싸여 있다. 시각적 중력에 못 이겨 빨려 들어가듯 좁은 동굴 같은 통로를 지나면서 다시 한 번 바와의 의도대로 궁금증이 촉발되고 있다.

'이런 앙큼한 고양이 같은 설계자 같으니라고.'


DSC_0148.jpg
DSC_0150.jpg 칸달라마 호텔의 캐노피, 출입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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