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건축여행기#8
자연이 되고 싶었던 호텔,
1991-94, Dambula
어둡고 좁은 통로를 향해 호텔 내부로 들어갔다. 흡사 어두운 중력의 힘에 이끌리듯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자 이제부터 저 밖의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서 이곳으로 들어오게나."라고 바와가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좁고 어두운 길, 그 길을 걸었다. 마치 주술이 내 몸을 휘감은 것처럼 내 몸은 약간 긴장했고, 어떤 새로운 세상이 내 앞에 펼쳐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안으로 들어가서 본 호텔 내부의 모습이 그렇게 훌륭하지 않았다. 약간은 실망스럽기까지한 평범한 실내 디자인은 호텔로써의 정체성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호텔이라면, 그러니까 나름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호텔이라면 이렇게 수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러나 그 짧았던 실망도 잠시였다. 잠시 생각을 고쳐 먹는다. 그래, 바와가 원했던 건 호텔 내부의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건, 호텔 건물이 아니었다.
한 낮의 실내는 깊고 어두웠다. 외부에서 진입해 갑자기 어두워진 실내 때문에 동공이 확대되길 기다렸다. 실내에 적응된 내 눈은 다시 밖의 밝은 풍경에 때문에 눈부시다. 명암 차이는 극적이고, 나의 동공은 적응하느라 바쁘다.
간결하게 정리된 실내보다는 창을 통해 열어놓은 밖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바와가 디자인한 부드러운 곡선이 인상적인 검정색 철재의자에 앉아 밖을 보고 있으면 실내에 있으면서도 외부의 시선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자연을 향해 열어 놓은 공간들이 점차 내부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정글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적당히 어두운 실내에 비해 한낮의 빛을 다 쏟아내고 있는 외부는 극단적으로 밝다. 오후 2시를 넘긴 낮의 태양은 무대 조명이 된다. 호수와 열대의 나무가 질서 없이 엉켜있는 자연은 그대로 아름다운 무대가 된다.
깊고 어두운 관람석에 앉은 나는 그저 자연이 만들어 내는 훌륭한 무대나 조망하라는 바와의 의도를 따른다. 나는 말이 없이 시선을 밖에 둔 채 한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밖에서 시간이나 재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트리윌 운전기사 아저씨의 존재를 망각한채 말이다.
바와가 이 호텔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건, 인간이 만들어낸 화려한 건축기술이 아니었다. 호텔만 두고 평가를 한다면 상당히 실망스러울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실망하기 전에 이 건물이 자연을 어떤 식으로 감싸고 있는지를, 혹은 자연이 이 건물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아차린다면, 이 말이 절로 나오고 만다.
"바와... 당신은 천재였군요!"
시선이 머무는 어디에도 나무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구불구불하게 철을 휘어 만든 의자는 소재의 속성을 속이고 꼭 편안할 것만 같다. 그러나 이네 그 의자가 불편함을 알고는 잠시 투덜거린다. 엉덩이를 차갑게 만드는 의자에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딱딱한 철재 의자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졌다. 마치 의자 하나를 가져와 시야가 확 트인 야외 공간에 앉아서 나른한 오후를,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오후를 보내고 있는 것만 같다. 누구도 나를 성가시게 구는 그런 이가 한사람도 없는 곳에서 말이다.
건물의 벽은 굳이 외부로부터 막으려 들지 않는다. 사실 이곳에서 어디가 밖이고 어디가 안인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마치 거다한 베란다가 겹겹이 쌓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글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이 호텔 내부로 끊임없이 들어왔다. 이곳에선 굳이 에어컨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곳, 정글 속에 파고든 칸달라마 호텔. 바와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인간이 멋진 건축물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게 어찌 아름다운 자연을 압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난 이 웅장한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거대한 베란다 같은 건물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칸달라마의 호텔은 우리가 알던 그런 호텔이 아니다. 호텔은 말하고 있다.
"호텔은 보잘 것이 없어요. 그러나 호텔에서 바라보는 밖의 모습은 정말 일품입니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