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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을 품은 별 Oct 23. 2024

단테의 별 – 2권 1부 1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1)

전두환대통령이 신년사에서 ‘1981년은 제5공화국의 해’라고 강조하였다.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변함없이 무소불위권력을 휘두를 것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변경된 ‘안기부’라는 약칭 앞에 죄 없는 국민들마저 벌벌 떨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외면했다. 반면 드라마‘전우’에서 김소위역할을 한 탤런트 라시찬사망은 많은 사람들에게 애도와 관심을 받았다. 민주정의당창당대회에서 총재 겸 제12대 대통령후보로 전두환대통령을 추대하여 민주시민사회가 들끓었다.

로널드레이건이 제40대 미국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란테헤란미대사관에 억류된 미국인 55명이 444일 만에 고국으로 돌아갔다.


문승협은 문일고등학교에 추첨배정받았다. 새롭게 등장한 청화고등학교와 함께 3대 명문고등학교였다. 추첨배정방식이어도 사립명문고에 진학했다는 이유로 선생들과 어른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다. 사실상 고교평준화로 명문이라는 의미가 퇴색되었으나, 학교전통을 무시 못하는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일류고등학교와 삼류고등학교로 분류하는 위화감은 여전했다.

못난이5형제는 아쉽게도 각기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졌다. 문승협이 같은 문일고로 진학한 덕일중학교친구를 찾았지만 알 수 없었다.  분명 누군가 있을 텐데도 혼자만 따로 떨어진 듯 불안하였다. 생소한 고등학교생활이 두려웠다. 문일고에 다니는 친한 선배 남강과 박현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문승협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키가 부쩍 커 170cm이 넘었다. 중단한 운동을 다시 하려고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유도장에서 같은 고등학교로 배정받은 김부일을 만나 친해졌다.

김부일은 문승협과 키는 비슷해도 유도검은띠에 다부진 체구였다. 도내주산대회에서 금상을 탄 적이 있었고, 안경 쓸 때는 부드러운 인상이나 벗으면 날카로웠다.

“부일아, 넌 왜 유도를 배운 거야?”

“동네가 후져갖고, 양아치시끼들이 허벌라다.”

“양아치?”

“잉, 그 시끼들이 형이랑 누나랑 나까지 하도 괴롭혀갖고, 울아부지가 운동을 시켰어. 니는?”

“난 그냥 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딱히 이유가 없네, 이유 하나 만들까?”

“이유는 없는 것이 좋은 거여, 있으믄 피곤하다잉.”

“하하, 그럼 유도 배워서 동네시끼들 다 해치웠어?”

“잉, 유도 일 년 배운께 할만하드라. 처음 3개월 배워갖고 덤볐다가 뒤지게 얻어터지고, 일 년 정도 배운 뒤에 다시 붙었는디, 그때는 막상막하였제. 그라고 나서, 두어 번 더 붙은께 찌그러지드라고. 인자는 즈그들이 알아서 피해 다녀, 가끔은 친한 척도 하고. 아조 비겁한 놈들이어, 혼자 안된께 나중에는 쪽수로 덤비드란께.”

“유도를 몇 년 배운 거야?”

“인자 5년 됐다. 원래 유도특기생으로 광주체고에 갈라했는디, 허리를 다쳐부러서 포기했어.”

“대회도 나갔겠네?”

“그람. 내가 이래 봬도 홍인중 유도부주장이었어야.”

“와, 진짜?”

“내가 뭐 한디 너한테 거짓갈하겄냐.”

“아니, 못 믿는 게 아니라 대단하다고.”

“그냥 운동할 때 열심히 했을 뿐이어.”

“혹시, 김철종 알아? 국민학교 때 친군데, 운동을 엄청 싫어했거든.”

“허허, 그 까불이 알제.”

“홍인중 다니믄서 빨간 띠 땄다고 자랑하더라.”

“학교에 유도부가 있어서, 아예 유도수업이 따로 있고, 전교생이 다 유도복을 갖고 댕겨. 조깨만 열심히 하믄, 졸업할 때 빨간띠는 따, 못하믄 파란띠고.”

“박현선배는 검은띠라던데?”

“잉, 그 선배는 엄청 열심히 했고, 따로 유도도장도 다녔어. 근디 니가 우째 아냐?”

“아, 국민학교선배인데, 조금 알아.”

“그라고 본께, 니 이름 어서 들어본 거 같은디. 니 덕일고 성들하고 싸운 적 있제?”

“하하, 싸운 게 아니고 그냥 방어한 거야.”

“음마, 니 쌈 잘한다고 소문났었잖애?”

“아냐, 뭔 소리야, 난 싸움의 싸자도 모른다야.”

“그때 박현선배가 선도부장이라, 유도장에서 선도부들하고 한 야그를 내가 분명 들었는디?”

“하하, 그럴 리가. 야, 저기 덩치 큰사람 알아?”

문승협이 중2 때 덕일고3학년과 사건을 얼렁뚱땅 얼버무렸다. 마침 도장에서 몇 번 본 거구가 들어왔고, 화제를 돌리려 무심결에 물었다. 공교롭게 김부일과 아는 사이였다.

“어이, 일로 와보쑈, 내가 소개해줄 사람이 있소.”

“언제 왔냐, 누군디?”

“승협아 인사해, 유도무제한급 전남대표여. 광주체고생이고, 국가대표 유망주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음마 덩치 보고 쫄았냐? 동갑인께 말 놓고 친구 해.”

“정말? 이 덩치보고 말 놓기가 쉽지 않다야. 나 난 문승협이야, 반갑다.”

“허허, 이정국이여. 부일이랑 친하냐?”

“정국아, 니랑 나멩키로 친하다. 친하게 지내라잉.”

김부일과 이정국이 교대로 문승협에게 유도를 가르쳤다. 문승협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정신없이 메치기를 당하였다. 뻘뻘 흐르는 땀을 씻고 도장 옆 짜장면 집으로 갔다.

“오늘 나 가르치느라 고생했으니까, 내가 살게.”

“어허, 사부인 내가 사야제, 제자가 건방지그만.”

“시끄러, 내가 내께. 내 짜장면 값 낼라믄, 느그들 집에 못 갈 수도 있다잉.”

“배고프다, 일단 시키자. 아자씨, 여그 짜장면 곱빼기 셋에 군만두 둘이요.”

문승협이 반도 못 먹을 때, 이정국은 두 번째 짜장면곱빼기를 비웠다. 문승협의 짜장면그릇바닥이 드러날 즈음, 이정국이 네 번째 짜장면곱빼기를 먹어 치웠다. 김부일이 짜장면곱빼기값으로 여섯 그릇에 1,800원을 냈다. 군만두는 중국집아저씨 서비스였다.

“더 먹을 수 있는디, 혼자 먹기 그래서 그만 먹으께.”

“와 대단하다, 너 키 하고 몸무게가 어떻게 돼?”

“시방은 185에 110키론디, 10키로 더 불려서 120키로까지 찔라고.”

“내가 네 옆에 서면, 거목나무에 매미 같겠다.”

“허허, 그라믄 앞으로 나를 거목으로 불러, 나는 니를 매미라고 부를란께.”

“하하, 알았어.”

이정국은 큰 덩치와 다르게 순둥순둥 한 아기 같았다. 문승협과 금세 친해졌다. 광주체고기숙사에 들어갈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문승협에게 유도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대법원이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 12명에 대해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 등 원심을 확정하였다. 정부는 전두환대통령지시에 따라 김대중을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했다. 비상계엄실시 465일 만에 ‘계엄포고 13호 전면해제’를 공고하였다. 프로권투선수 김철호가 베네수엘라 라파엘오로노를 9회 KO로 꺾고 WBC슈퍼플라이급챔피언에 올랐다. 레이건대통령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전두환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철수 백지화 등 14개 항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문승협은 못난이형제들과 이별하는 눈물겨운 중학교졸업식을 치렀다. 서수연선생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에 마음 저렸다. 양명기선생과 고순영선생에게 서수연선생소식을 접하면 꼭 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1학년 때 담임이자 보이스카우트대장 민영보선생이 고등학교에 가서도 보이스카우트를 해서 또 만나자고 했다. 합창단으로 친하게 지냈던 양자경음악선생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며 눈물을 머금고 포옹해 주었다. 3학년담임 전수찬미술선생이 직접그린 그림을 졸업축하선물로 주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교복에 밀가루를 뒤집어쓴 많은 학생들이 시내를 오갔다. 그들이 졸업생이라는 걸 누가 봐도 단박에 알았다. 중화요리식당과 경양식당은 졸업축하만찬을 즐기려는 가족동반손님으로 만원이었다.

문승협은 졸업식 이후 유도도장만 열심히 다녔다. 김부일과 문일고에 들러 등록금을 내고 고등학교교과서를 받은 설렘으로 집에 왔다. 지난주 KBS1에서 첫 방송을 한 ‘가요톱 10’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문경준이 들어와 가족모두 깜짝 놀랐다.

“온다는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에요?”

“기쁜 소식 슬픈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알려줄까?”

“기쁜 소식이요.”

“다음 주부터 본사로 출근하라네.”

“그러면, 이제 여기 목포집서 출퇴근하는 거예요?”

“응, 그렇게 됐네.”

“진짜? 우리 이제 아빠랑 같이 사는 거야?”

“응, 윤아랑 아빠랑 다 같이 사는 거야.”

“아빠, 그럼 슬픈 소식은 뭐예요?”

“이제부터 현아가 아빠잔소리 듣는 거.”

“난 아빠랑 살면 잔소리 들어도 괜찮아요.”

“허허, 그래?”

문승협은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늘 소망하던 아버지와 함께하는 삶이 마침내 현실이 되어 엄청 기쁜 일임에도 뜻밖의 감정에 당황하였다. 어찌 보면 유년기시절에 아버지와 산 날이 많지 않아서 친밀감보다는 어색함이 당연했다. 육체적 성숙과 정신적 이데아를 찾는 청소년기 문승협에게 편치 않는 초초함 또한 신이 인간에게 강요한 섭리였다.

“얼마 전 설명절 때도 별말 없었잖아요?”

“허허, 그렇게 됐어.”

문경준이 태선화학본사 원료개발계장으로 발령받았다. 문경준이 외삼촌 박동후에게 부탁하여 이뤄졌다. 박동후는 나름대로 계획이 있어 선심 쓰는 척 들어줬다.


태선화학회장 박동후는 매제 문재환이 경영하는 광산 중에서 가장 알짜배기인 산성광산을 시작으로 양밀광산과 백태광산을 손에 넣었다. 이제 도안광산을 노리는 상황이었다.

문재환은 돈을 빌려달라는 동생들과 아들 문경준의 사업자금 등 갖가지 명목으로 수년 전부터 광산과 태선화학주식지분을 담보로 수 차례 돈을 빌렸다. 그때마다 박동후가 나서서 돈을 융통해 줬다. 편하게 갖다 쓰라는 자금지원은 말이 지원이지 반드시 조건이 붙었다.

박동후는 문재환에게 언제든 빌린 돈을 가져오면 회사주식지분이든 담보든 다 돌려줄 거라고 약속하였다. 다만 금액이 커지면 나중에 상환할 때 부담될 거라며, 실제가치의 반값 정도만 쳐주는 대신 이자를 받지 않았다.

이는 문재환소유광산의 경영실적과 자금흐름, 앞으로 있을 태선화학주식상장을 고려한 박동후의 치밀한 계산이었다. 하지만 문재환은 배려해 준 것으로만 생각하여 늘 큰처남 박동후를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했다.

2차 석유파동으로 계속되는 경제불황마저도 박동후편이었다. 거의 모든 산업분야노조들이 임금인상 및 퇴직금제, 노동 3권 보장, 근로복지시설개선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상여금 연 400% 인상 등 11개 항에 합의한 사북탄광사건여파로 광산노조지부장들이 동자부로 몰려가 임금인상을 요구하였다. 물가상승과 임금인상에 노사분규 등으로 모두에게 물심양면 힘겨운 시간이 이어졌다.

문재환이 경영하는 광산도 마찬가지였다. 경제불황과 급격한 임금인상에 부딪혀 자금흐름에 동맥경화증이 걸렸다. 어려워진 문재환은 박동후에게 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광산인부들이 태업과 파업을 반복하는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문재환의 심복이던 도안광산소장 곽복규가 배신해 광산인부들을 선동하거나 조종하였다. 계열광산과도 동맹을 맺어 주도했다. 그 배후에 있는 박동후와 결탁이 결정적이었다.

박동후는 담보로 잡은 광산지분이 60%에 육박하자, 갑자기 돌변해 경영부실을 문제 삼아 경영권을 요구하였다. 광산경영에 힘겨웠던 문재환은 어쩔 도리 없이 광산을 하나 둘 넘겨줘야 했다. 박동후는 30%도 안 되는 자금으로 세 개 광산을 가져갔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도안광산을 인수하려 획책하였다.

박동후가 곽복규를 조종하여 도안광산을 손에 넣으려면, 도안광산에서 근무하는 문경준이 걸림돌이었다. 때마침 문경준 스스로 본사근무를 희망하는 청탁을 해오자 흔쾌히 들어준 것이었다.

문재환은 세 개 광산을 넘길 때 남은 지분을 매각하는 조건으로 넘겼으나, 일방적인 재무실사로 한 푼 건지지 못했다. 보유한 태선화학주식지분도 3년 전 주식상장 즈음에 박동후에게 거의 다 넘어갔다. 대주주로 명의만 있을 뿐 실질소유주식은 얼마 되지 않았다. 문재환의 사업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는 시대적 불운과 박동후의 계략이 숨어있었다.

내막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박동후가 매제를 도와주는 좋은 처남으로 인덕 있는 어른이었다. 표면상 문재환이 도안광산과 순화광산을 경영하는 상황이었고, 박동후가 매입했던 땅 일부를 문재환에게 돌려주며 보상하는 태도를 취한 데다, 태선화학이사를 유지해 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매제사업을 빼앗았다는 의혹이 뚜렷이 남아있었다. 도안광산과 순화광산뿐 아니라 태선화학이사도 언제 뺏길지 모를 일이었다.

문재환이 뒤늦게 일련과정을 간파하였으나 이미 손쓸 겨를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작년에 아내 박옥춘을 순화광산으로 데려간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문재환의 친인척들은 박동후를 삶의 은인으로 숭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재환의 아들딸들이 물심양면으로 외삼촌 박동후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극성스러운 박옥춘의 친정자부심도 단단히 한몫하였다.


선관위가 선출한 대통령선거인단 5,278명 투표로 전두환이 다시 대통령에 선출됐다. 제12대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입법회의에서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법안’을 의결했다. 전두환대통령 연임과 동시에 제5공화국이 출범하였다. 법무부가 10.16 부마민주항쟁, 5.18 광주민중항쟁, 민청학련사건, 10.26 사건관련자 등 재소자 5,221명을 사면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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