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67)
문승협은 현관에 들어서면서 아버지신발이 보이지 않아 안도하였다. 엄마 이항리와 막내 문윤아는 TV 보느라 아랑곳없었으나, 둘째 문현아가 벌떡 일어났다.
“오빠, 학교담임선생님한테서 전화 왔었어.”
“우리 담임이?”
“무슨 일인지는 말 안 해줬고, 오빠 집에 없다니까, 알았다면서 그냥 끓더라.”
“무슨 일이지?”
“오빠랑 같은 반 김영후라는 친구한테서도 전화 왔고.”
“김영후가?”
“응, 그 오빠도 알았다면서 끓었어.”
“별일이네.”
문승협은 내일 등교해서 알아보기로 하고 넘어갔다. 당장 시급한 용돈문제를 해결하려 이항리 옆에 앉았다. 유일한 용돈창구가 엄마여서 어떻게 말을 꺼낼지 망설였다. 한참 눈치를 살피다 솔직하게 용돈 좀 달라했다. 돈에 집착이 강해 쉽게 줄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막상 야단만 들으니 우울하였다. 한 번도 용돈불평을 하지 않았는데 억울했다.
방에 들어가며 기분 나쁜 티를 내느라 문을 쾅 닫았다. 불손하다로 시작된 엄마욕설이 방문을 뚫고 들어왔다. 책상에 앉아 이마를 감싸 쥐었다. 예측과 전혀 다른 결과에 속상하였다. 이제껏 용돈 달라며 조르거나, 책을 사야 한다고 거짓말한 적도 없었다. 제 코가 석자라 방법을 찾으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다음날아침 등굣길에 학급비를 내야 한다고 했다. 책거리를 핑계로 댔으나 거짓은 아니었다. 금액을 부풀려서 타내려다 보니 말을 더듬었다. 태연한 척하면서도 들킬까 봐 이항리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였다.
“뭔 책거리야?”
“한 학년 마치는 이맘때쯤 매번 했잖아.”
“나는 너한테 그런 말 처음 들어본다.”
“전에는 엄마한테 말 안 하고 내 용돈으로 냈어.”
“그러면 이번에도 네 용돈으로 내라.”
“에이, 용돈이 부족하니까 달라는 거잖아요.”
“어디다 썼길래 그러냐?”
“내가 엄마한테 용돈 달라고 손 벌린 적 있어요?”
“어디다 썼냐고 했지, 누가 손 벌렸다고 했어?”
“아이참 진짜, 엄마, 엄마가 언제 나한테 용돈 준 적 있어요? 한 번도 없잖아.”
“뭔 소리야, 중학교 때부터 매달 줬잖아?”
“그게 무슨 용돈이야, 겨우 버스교통비였지.”
“그것이 용돈이지, 그거 말고 무슨 용돈이 필요해?”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학교생활하다 보면, 여기저기 많이 들어간단 말이에요.”
“그럼 그동안 쓴 돈은 어디서 났냐?”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친척어른들한테 받은 돈하고, 집에 온 손님들한테 인사했을 때 받은 돈이야. 그것도 엄마한테 뺏기고 남은 걸 모은 거야.”
“…….”
“작년 그룹사운드교습비를 엄마가 안 줬을 때도, 멤버친구가 빌려줬는데, 그 돈으로 나중에 갚은 거라고. 1학년 때부터 독서실비도 마찬가지고.”
“독서실비는 엄마가 줬잖아?”
“그건 지난번 딱 한 번 뿐이잖아, 지금까지 다 내가 모아놓은 돈으로 낸 거라고.”
“그러면, 그 모아논 돈을 다 쓴 거야?”
“예, 그래서 어제 용돈 좀 달라하고 한 건데, 알지도 못하면서 욕만 잔뜩 해놓고는.”
“그건 그렇고, 난 책거리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너 지금 거짓말 치는 거 아냐?”
“엄마, 우리 중학생들도 매년 연말에 책거리해.”
“맞아, 우리 국민학생들도 하는데. 엄마,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줘라, 오빠 학교가게.”
“얼만대?”
“오 오천 원.”
생각보다 큰 액수에 문윤아눈이 커졌다. 문현아가 팔을 당기며 모른척하라고 눈짓했다. 용돈에 대한 동병상련과 역지사지가 여동생들 협조를 이끌었다.
이항리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지갑을 찾았다. 마지못해 돈을 꺼내 주며 역정 냈다.
“너도 다 컸으니, 이제 네가 벌어서 써.”
“알았어요, 내가 아르바이트라도 할게.”
문승협이 돈을 받으면서 미세하게 떨었다. 난생처음 억지 부려 목적을 이뤘다. 그나마 아버지가 일찍 출근한 뒤라 가능하였다. 이항리가 신발을 신는 문승협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더 쏘아붙였다.
“엄마는 돈 없으니까, 앞으로 학비도 네가 벌어서 내. 고등학교까지 보내줬으면 됐잖아?”
“알았어요, 알았다고.”
문승협은 반발심에 버럭 하면서도 흠칫했다. 대부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성격이라, 학비까지 벌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자 덜컥 겁이 났다. 내심 엄마가 홧김에 내뱉은 발언이길 바랐다.
찬바람 날리며 뒤돌아보지 않고 대문을 나섰다. 그동안 재벌손자라며 부러운 듯 떠벌린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심히 언짢고 신경질이 났다. 재벌가와 거리가 먼 처지가 씁쓸하였다.
문승협이 재벌손자란 말에 과민한 이유가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태선화학 박동후회장손자로 알려졌으나, 자신의 현실과 남들이 생각한 재벌은 많이 달랐다. 문승협주변에서 재벌가는 부자란 뜻이었다. 돈이 많아 씀씀이가 크고 부족함이 없는. 그래서 뭔가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주류였다. 문승협의 실생활은 달랐다. 호화사치는 언감생심이고 근검절약 아껴 썼다. 궁핍까진 아닐지언정 생활에 쪼들린 적도 있었다. 한땐 대단한 양 바라보는 시선을 우쭐하며 즐기기도 했지만, 자기 집안을 재벌가라고 하는데 동의하기 어려웠다. 하도 궁금해서 사전적 의미까지 찾아봤었다.
재벌이란? 거대자본을 소유한 경영진이 혈연과 혼맥으로 맺어진 기업체. 부의 세습이 강력히 이뤄진 중세적 특징을 갖은 봉건국가 군주와 영주들을 연상케 하였다. 영어사전에도 대한민국에 한정해 ‘Chaebol’로 등재된 단어였다. 한발 더 나아가 사회적 사건으로 재벌개념을 톺아보니 꼴불견이었다. 돈으로 풍족한 교육의 기회와 혜택을 받고, 병역 등 힘든 일을 안 해도 되는 무리였다. 뭐든 최고최상을 선택하고, 더러운 돈의 권력을 이용해 돈이 만능이며, 돈이 곧 헌법이 되는 그들만을 위한 부자집단이었다. 본인역량이 아닌 아버지나 할아버지능력으로 태어나자마자 많은 걸 갖고 기득권과 특혜를 누리는 재벌2,3세들. 일반인들에게 부정적 인식과 부러움 섞인 별칭이 재벌가였다. 전혀 남을 생각지 않고 약자보호조차 외면하면서, 역지사지나 동정심도 없는 이기주의집단이란 비판이었다. 반민주적 발상으로 보통사람들과 구분하려는 다른 세계종족. 특별함이 없는데 특별히 선망한 일반인들 태도도 가관이었다.
태선화학 박동후회장의 재벌가는 전라도지역에서만큼은 모두 인정했으나, 아직 준재벌 수준이었다. 보유한 몇 개 기업에 친인척팔촌까지 근무하며 똘똘 뭉친 정도였다. 흔히 재벌 하면 떠올리는 만화나 영화드라마에서 연출된 거대재벌가문은 아니었다. 다만 회사에서 친인척 간 경쟁과 암투만큼은 재벌가 못지않고, 재산싸움도 치열하였다. 특히 문승협할아버지 문재환소유의 산성∙양밀∙백태 3개 광산이 박동후회장에게 넘어간 지 오래고, 안간힘을 쓰며 지켰던 도안광산과 순화광산마저 빼앗겼다. 최근엔 도안∙순화광산사장에서 순화광산소장으로 강등됐다. 담보로 잡혔던 전답까지 내줘서 남은 재산도 얼마 되지 않았다. 태선화학이사라는 허울뿐인 직함을 갖은 순화광산소장일 뿐이었다.
문승협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상황을 비춰볼 때 재벌가에 거부감이 들었다. 누군가 개나 소나 재벌이냐며 콧방귀 뀌고 웃을 것 같았다. 단지 할머니의 오빠 박동후회장이 진외가할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재벌손자란 말을 듣는 것이 불편했다.
집에서 일은 학교 앞 정류소에 하차하면서도 맴돌았다.
“승협아.”
“어, 영후야.”
“어제 어디 갔었냐, 느그 집에 전화했었는디.”
“동생한테 들었어, 무슨 일로?”
“우리 반 담탱이한테서 전화 왔길래. 학력고사성적이 어제 학교에 도착했다드라.”
“대입학력고사 점수표?”
“잉, 점수 나왔다믄서 알려준다고.”
“몇 점 이래?”
“292점이란디, 이따 점수표 받아봐야 정확히 알제.”
“체력장점수 빼고?”
“잉. 니는?”
“나는 담임이랑 통화 못했어.”
“아, 니한테 전화한 뒤에 나한테 했는갑다.”
어제 점심 무렵 대입학력고사점수표가 학교에 도착하였다. 각반담임선생들이 반아이들 몇몇에게만 전화를 돌려 미리 알려줬다. 오늘 배포되는 날이었다.
“점수표 받는다니까, 갑자기 떨린다야.”
“니도 잘 나왔겄제.”
“아냐, 너보다 한참 낮을 거야.”
“시끼, 엄살은. 참, 오늘 학급비 걷어야제?”
“응, 책거리회식비하고 담임선물 값 해서 천 원씩.”
“지금 주까?”
“교실 가서 주라.”
문승협은 엄마에게 4천 원을 부풀려 받아낸 5천 원이 생각났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떠들썩하던 3학년교실이 평상시와 다르게 조용했다. 다들 대입학력고사점수표가 교무실에 와있다는 소식을 듣고 초초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이윽고 담임선생이 종이 뭉텅이를 들고 교실에 들어섰다. 번호 순서대로 점수표를 나눠주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줄때와 달리 문승협순서에서 인상을 찌푸렸다. 지휘봉으로 머리를 한대 툭치며 건넸다. 점수표를 받아 든 아이들 반응이 갈렸다. 기뻐하면 예상보다 높은 점수, 얼굴을 찡그리거나 굳어지면 낮은 점수였다. 일부는 애써 감정을 숨겼다. 문승협은 가채점으로 예상한 터라 겸허히 받아들였다.
대입학력고사만점은 필기시험 320점에 체력장시험 20점을 더해 340점이었다. 문승협은 필기 265점에 체력장 18점으로 283점을 받았다. 최소 300점 이상을 기대한 학교와 담임선생이 크게 실망했다. 당사자 문승협은 오히려 무덤덤하였다.
오후부터 대입원서지원상담이 이뤄졌다. 담임선생호명에 따라 교무실로 하나 둘 불려 갔다. 문승협은 세 번째 순서였다. 담임선생과 마주 앉은 책상이 너저분했다. 각대학신입생모집요강과 학력고사점수별 지원가능대학정보들이 펼쳐져 있었다. 담임선생이 문승협을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끼었다.
“아야 승협아, 으짜다 점수가 이 모양이대?”
“그 정도면 잘한 거 아닌가요?”
“뭐야, 시방 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
“죄송합니다.”
“이 점수 갖고는 서울대는 물 건너가부렀어.”
“…….”
“으짤래?”
“잘 모르겠습니다.”
“니 이점수로 어디 갈라고 그냐?”
“그냥 점수에 맞춰 가야죠.”
“어휴, 내신도 막바지서 아깝게 2등급으로 떨어져 불고, 니 진짜 한심하다 한심해.”
“승협이 네 이놈, 학교에서 무자게 기대를 많이 했는디, 학력고사성적이 그게 뭐여?”
담임선생이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떨어진 내신등급을 한탄하던 차에, 지나가던 교장선생과 교감선생이 다가왔다. 교장선생이 문승협에게 꾸지람하며 꿀밤을 먹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혀를 끌끌 차며 다시 갈길 갔다. 담임선생은 모른척하면서 지원가능대학커트라인자료를 살펴보았다.
“그래도 잘하믄 연고대는 가겄다.”
“여그 하고 여그는 으짜냐?”
“불문과, 독문과요?”
“잉, 이번엔 하향해서 안전하게 지원해야 써.”
“…….”
“그라믄, 신방과랑 정외과 여그는?”
“…….”
“싫으믄 싫다 아니믄 아니다, 뭔 말을 해라.”
“경제학과나 경영학과는요?”
“거그는 너무 높아갖고 위험해, 커트라인에 걸려서 떨어질 가능성이 커 부러.”
“선생님, 좀 더 고민해 보면 안 될까요?”
“쯔, 그래라 그라믄, 니 맘도 맘이 아니겄제.”
“…….”
“여그 이 자료 보믄, 작년하고 재작년 커트라인에 20점을 더해서 봐야 한다잉.”
“왜요?”
“올해는 시험이 쪼까 쉬워 갖고, 이전보다 성적이 20점은 더 높아졌은께 그래.”
“네.”
“이 선상님도 맘이 짠한께 그란다, 안 그라믄 뭐 한디 니한테 성질 내겄냐?”
“네, 죄송합니다.”
“찬찬히 살펴봐, 궁금한 거는 바로 와서 물어보고.”
“네.”
“가서 김용남이한테 교무실로 오라고 해.”
“선생님, 이거 대학교안내책자 가져가서 봐도 돼요?”
“잉, 김영후랑 유호창한테도 보여줘라.”
문승협은 서울대학교학과들을 거론하지 않아 마음 상해도 점수가 그러니 별수 없었다. 교무실을 나오는데 선생들이 나누는 대화가 뒤통수를 때렸다.
“3반 문승협이는 서울대가요?”
“서울대는 아무나 간다요, 다 조져부렀소.”
“으째, 점수가 안 나왔소?”
“생각보다 30점, 아니 40점은 덜 나왔어라.”
“왐마, 저시끼 저거 시험공부막바지에 방황하드만, 인생까정 방황하게 생겼네.”
“시끼들이 아직 철부지라, 인생에서 일류와 이류가 얼매나 다른지 모른단께.”
문승협은 속이 뒤틀렸다. 그래도 대입학력고사를 치르기 전까진 서울대유망주였는데, 점수표가 배포되고 학교에 실망을 안긴 탕아취급이었다. 교실로 가면서 투덜거렸다. ‘그놈의 서울대 서울대. 담임은 그렇다 치고, 왜 담임도 아닌 지들이 내 성적 갖고 난리야’. 마음 한편에서 기대에 못 미친 죄송함도 꿈틀댔다.
김용남에게 담임호출을 알리고, 책상에 앉아 대학신입생모집안내책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울대학교책자를 펼치니 대학정체성을 담은 휘장이 나왔다. 깃털펜과 횃불이 교차한 월계관에 교문심벌과 펼쳐진 책을 배치한 짙은 파란색문장이었다. 월계관은 으뜸가는 학문적 영예의 전당을 의미하였다. 깃털펜과 횃불은 지식탐구를 통해 겨레의 길을 밝힌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펼쳐진 책에 ‘진리는 나의 빛’이란 뜻의 라틴어‘VERITAS LUX MEA’가 적혀있었다. 흔히들 ‘샤’라고 칭하는 서울대정문조형물은 ‘국립서울대학교’의 초성ㄱ∙ㅅ∙ㄷ에서 따왔다. 진리를 찾기 위한 열쇠라는 의미였다. 분명 촌스러운데 서울대학교라는 이름 때문인지 특별하고 멋있었다. 대학종합화계획에 따라 흩어져있는 단과대학들을 1975년부터 1980년까지 관악캠퍼스로 이전했다. 여의도절반크기 대학캠퍼스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다는 글이 눈에 띄었다.
연세대학교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위치하고, 개신교란 종교적 색채가 있었다. 동그란 휘장 안 방패에 ‘ㅇ’은 하늘, ‘ㅡ’은 땅, ‘ㅅ’은 사람으로, 연세대학교교육대본 천지인天∙地∙人삼재를 상징하였다. 아울러 ‘책’은 진리, ‘횃불’은 자유, ‘방패’는 실천의 두 이념을 수호함을 뜻했다. 백양로의 독수리상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교훈이 기억에 남았다.
고려대학교는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자리 잡은 사립종합대학이었다. 펼쳐진 세 개의 책모양에 자유∙정의∙진리가 쓰였고, 호랑이가 포효하는 방패문양휘장이었다. ‘민족고대’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다.
다른 대학교책자도 살펴봤다. 마찬가지로 각대학들의 학과정보와 학교교정 등이 나와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불교제단 동국대학교와 캠퍼스가 아름답다는 경희대학교∙건국대학교도 관심이 갔다.
공통점이라면 모든 대학이 하나같이 진리를 표방하였다. 진리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면서도, 대학캠퍼스를 미리 가보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다.
“뭘 그렇게 보냐?”
“아, 선생님이 이거 돌려보라더라, 너희들도 봐봐.”
“나는 폴쎄 봤어, 다 거그서 거그여.”
“맞어, 학교이름이 중하제, 명문대 아니믄 별거 없어.”
“요번시험이 쉽게 나왔다드만, 으째 우리 학교는 만점자가 한 명도 없으까잉?”
“우리 학교서는 이과에 임창열점수가 젤 잘 나왔단다야, 324점이라드라.”
“문과서는 여그 영후가 312점으로 젤 높고.”
“호창이 너는?”
“나는 포도시 300점 넘긴 301점이어.”
“강원종은?”
“원종이도 조졌단다, 298점인가 300점도 못 넘었대.”
김용남이 울그락불그락하며 교실로 들어왔다.
“꼰대가 뭐라디?”
“277점이 뭐냐믄서 쫑코만 이빠이 주드라, 재수라도 해야 할란가 까깝허다.”
“승협이 니는 몇 점이냐?”
“나? 나 나는 283점.”
“아야, 니도 죽쒀부렀다잉.”
“학력고사점수도 점수지만, 이번에는 내신등급이 당락에 영향을 준다던디?”
대학입학예비고사와 본고사가 폐지되고, 세 번째 치른 선시험∙후지원 대학입학학력고사였다. 입시생들이 대입학력고사와 고교내신점수로 정해진기간에 대학학과에 지원하고, 대학은 지원자 중 성적순 합격자를 선별했다. 대학에 따라 입시반영비율이 과목시험 50% 이상과 내신 30% 이상이었다. 학교교육강화목적이 친구 간 경쟁으로 몰아갔다. 암기과목위주로만 공부해도 명문대진학기적을 연출할 수 있었다. 3년 전 ‘7∙30 교육개혁’이 배경이었고, 초헌법기관‘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가 주도하였다.
쿠데타신군부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전국확대에 반대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하여 권력을 장악했다. 곧이어 전두환을 의장으로 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를 만들었다. 소위‘국보위’를 통해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시작된 국가권력찬탈을 마무리하려고 서둘렀다.
국보위의 공식설치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국내외정세에 대처하여 국가안보태세를 강화하고, 국내외경제난국타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합리적인 경제세칙을 뒷받침하며, 사회안정의 확보로 정치발전을 위한 내실을 다지는 한편, 부정부패부조리 및 각종 사회악의 일소로 국가기강을 확립한다’
정통성에 약점투성인 전두환이 막강한 국보위를 통해 무지막지하게 권력을 휘둘렀다. 고위직부정축재, 삼청교육대사회정화, 과외금지교육개혁, 언론정상화 등을 무기로 삼았다. 정치∙경제∙사회∙언론∙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종교∙교육∙농업계까지 총망라한 탄압과 통제가 당연시되는 폭거의 시대였다.
국보위는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세력과 정치인을 고위직 부정축재와 부조리로 몰았다. 대대적인 숙청과 동시에 공무원조직에 대한 숙정작업도 병행하였다. 박정희시대핵심인물 김종필, 이후락, 박종규 등 8명을 부정축재자로 지목했다. 공직자숙정계획에 따라 공무원∙국영기업체∙금융기관∙정부산하단체 등 각급기관 127개 소속임직원 8,600여 명을 강제 사퇴시켰다. 장관 1명∙차관 6명∙도지사 3명을 비롯한, 2급 이상 고급공무원 243명이 포함됐다. 서슬 퍼런 국보위권력 앞에 감히 토를 달 사람은 없었다. 사회악근절을 이유로 인권유린탄압기구‘삼청교육대’도 만들었다. 애초 계획한 불량배와 조직폭력배는 물론, 다수의 무고한 시민들을 강제로 끌고 가 가혹행위를 하고 죽이는 등 인권유린을 자행하였다. 또한 방송언론장악을 위해 방송국과 언론사를 통폐합하고 언론인을 대거 해직시켰다. 신군부집권 사전정지작업을 착착 진행한 뒤, 일명‘체육관선거’라는 대통령선거인단의 간선제투표로 전두환을 7년 단임 대통령에 뽑아 제5공화국을 열었다.
그러한 국보위가 1980년 7월 30일 전 국민이 놀랄 7∙30 교육개혁을 발표했다. 대학교본고사폐지∙대학입학정원확대∙대학교졸업정원제실시 등을 담았다. 가장핵심은 개인과외전면금지와 대학입학학력고사실시였다. 대입시스템자체를 흔드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상당수 국민들에게 긍정평가를 받았다.
당시 대학입학정원이 대학진학을 원하는 학생수에 크게 못 미쳤다. 대학입시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고, 입학과정도 쉽지 않았다. 수험생들은 대입예비고사를 통과하고 또 대학본고사를 치렀다. 대학들이 변별력을 높이려다 보니 본고사 수준이 매우 높았다. 정규교육과정을 뛰어넘는 고난도여서 별도의 공부와 과외가 필요하였다. 1970년대 한국은 고도성장기와 도시화를 거치며 국민소득이 많이 올랐다. 지속적 산아제한정책으로 자녀수가 줄면서 자녀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때마침 대학서열화도 진행됐다. 대학졸업유무에 임금격차가 큰 데다, 높은 서열의 대학이 더 좋은 직장을 보장했다. 직장에서도 출세를 결정하는 척도가 되어버린 학벌사회였다. 학벌이 학생의 인생성공을 좌우하는 세상이었다. 시대가 그러하니, 일반국민들은 자녀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모든 걸 공부에 걸었다. 늘어난 수요로 대학입시과외비가 치솟았다. 급기야 가계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켰다. 월급대비 과외비지출이 너무 커서, 부부싸움 90%가 과외 때문이랄 정도였다. 과외 관련비용이 교육부예산을 뛰어넘었다. 부모재력에 따른 교육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교육기회박탈이란 불평등구조를 만들었다. 곳곳에서 과외망국론을 제기하여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바로 이 시점에 신군부국보위가 대입본고사폐지와 과외금지정책을 내놓았다. 신군부정통성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환영할만하였다. 과외는 곧 불법이 되고, 정부기관들이 단속에 나섰다. 공무원과 공기업직원들은 적발되면 사표를 써야 했다. TV와 신문에 불법과외소식이 연일 보도됐다. 부자들이 밀집한 고급주택가에서 방문과외현장을 단속하는 실황, 승합차를 이용해 고속도로주행 중 과외를 하다 적발된 장면도 매스컴을 탔다. 강력한 단속은 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전두환이니까 가능한 일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과외근절책은 신선하였으나, 세부검토 없이 졸속으로 시행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눈에 보인 과외는 사라지게 했지만, 각종 편법이 난무하며 과외비를 더욱 끌어올렸다. 보다 나은 성적을 원하는 부모들 수요가 많아 없애는 건 무리였다. 힘 있고 재력 있는 이들만 음성적으로 과외를 하였다. 사회지도층에서 불법과외를 한다는 풍문이 여기저기 퍼졌다. 교육불평등을 해소한다는 과외금지정책이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대입학력고사제도도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학력고사성적으로 합격유무가 결정되는 현실에서 대학입시본질이 달라지지 않았다. 학력고사점수가 대학합격선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 대학서열화를 더욱 부채질했다.
대학입시경쟁과열을 완화시키려던 대학입학정원확대 역시 대학교육의 질을 떨어뜨렸다. 대학들이 늘어난 학생정원을 감당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였다.
대학의 면학분위기조성을 위한 대학졸업정원제도 각종 편법이 난무하면서 형평성문제를 불러왔다.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는 대학생들 통제수단으로 악용됐다. 대학졸업정원제를 폐지하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부족한 정통성을 세우려 무리하게 시행되다 보니, 전두환정권의 7∙30 교육개혁조치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교육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국민적 관심사인 대학입시제도변화에만 집중한 한계성이었다.
대입학력고사가 다양성을 더해 또 어떤 형태로 변화될지 모르나, 사회발전과 민주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중대 기로였다. 의식 있는 사회학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입시경쟁을 과열시키는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를 타파하라. 도대체 언제까지 선진국을 부러워하고만 있을 거냐, 높은 점수를 위한 지식전달과 시험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에서 탈피하라’. 백년지대계 교육마저 정치놀음에 이용되는 시국이라 쉽지 않겠으나, 더 좋은 대학을 가고 더 나은 직장직업을 갖기 위한 목적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교육정책수립 시 대학입시제도변화에만 주력하지 말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찾는 선진교육이 이뤄지길 소망하였다. 올바른 인성과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의 본질을 찾으라고 호소했다.
많은 공감대가 형성됐음에도 교육을 바꾸는 여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당장 대학입시라는 목표를 떨칠 수 없었다. 성적이 행복크기를 좌우한 지옥체험은 학생들 몫이었다. 좌절을 느낀 교육학자들도 나서 강력히 주장하였다. ‘즉시 미래를 내다본 교육정책을 만들어야 하며, 지속적 실행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만약 앞으로도 성적에 의존해 학생을 평가한다면, 사교육팽창으로 연결되어 사교육시장규모가 수십 조원에 이르고, 가구당 사교육비지출은 국가경제에까지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공교육붕괴, 학생인권, 교권추락 등의 문제들은 대한민국미래를 위한 큰 숙제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