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68)
방과 후, 문승협은 친구들을 만나려 버스를 탔다. 무작정 시내당구장을 찾아갔다.
“영기야, 담이야, 너희들 여기 있었구나.”
“어서 오시게.”
“둘 다 표정이 밝아 보인다?”
“니멩키로 인상 쓸 일이 뭐 있겄냐?”
“오늘 점수표 안 받았어?”
“어허 이 사람아, 뿌린 씨앗만큼 수확되는 것이어, 결과에 너무 욕심내믄 못써.”
“뭐야, 삶을 달관한 사람 같다?”
“세상사가 그런거여, 이미 점수는 나와부렀는디, 겸허히 받아들여야제 으짜겄냐.”
“잘 나왔어?”
“니보다는 잘 나와야 한디, 고것이 쪼까 걱정이다야.”
“몇 점인데?”
“내 존심을 뭉개서라도 꼭 알아야 쓰겄냐?”
“그렇게까진 알고 싶지 않아, 말하기 싫음 안 해도 돼.”
“염병, 그란께 갑자기 말하고 싶네.”
“나는 246점.”
“영기는?”
“225점, 내 인생이 어찌 흘러갈란가 깝깝시럽다.”
“우리 독서실동지는 몇 점 나왔으까?”
“너희보다는 조금 더 나왔어, 그냥 그 정도로만 알자.”
“으째, 구체적으로 말하믄 입에 곰팡이 피냐?”
“네 자존심은 어떡하고, 꼭 알아야겠어?”
“아야, 너무 오래 뜸 들이믄 밥 탄다잉.”
“나 나는 283점.”
“연설하네, 니는 그 점수를 받고도, 시방 우리 앞에서 고따구로 인상 쓰냐?”
“에효, 신이 그랬어, 인생은 애시당초 불공평하다고.”
“그란께 말이다, 공부 안된다고 맨날 죽겄다는 놈은 저러고, 우리는 뭣이여.”
“저 시끼 원래 공부는 쪼까 했은께, 그런갑다 해불자.”
“쯔, 그래야제 별수 있냐, 친구인생이나 축복해 주자.”
“암은, 우리가 그렇게 속 좁은 놈들은 아닌께.”
“김영후는 몇 점 나왔대?”
“312점.”
“아하, 그래서 니가 그 점수받고도 인상 쓰그만?”
“하기사, 니 공부실력이 김영후랑 비까비까 했은께.”
“너희도 속상할 텐데, 학력고사점수이야긴 그만하자.”
“정난희랑 헤어졌다믄서 울고불고 그렇게 방황하드만, 그래도 기본은 한다잉?”
“긍께, 머리 아파서 공부 안된다고 지랄염병 떨드만.”
“야, 말이 좀 심하다?”
“시끄러, 심한 것으로 치믄 니가 여그서 대빵이어, 인자 쓸데없이 궁시렁대지 마.”
“영기야, 당구 그만 치자, 집에나 가야겄다.”
다들 기대이하성적에 기분이 꿀꿀했다. 대학원서 쓰는 마지막날 천영기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문승협은 부모에게 학력고사성적과 대학지원을 어떻게 말할지 고민됐다. 대문을 열며 집안분위기를 살피는 행동은 오랜 습관이었다. 쿵쾅대던 심장이 현관에 아버지신발이 보이지 않자 금세 평온을 찾았다.
“다녀왔습니다.”
“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이렇게 일찍 들러오다니.”
“누구 왔냐?”
“응, 오빠가 왔어요.”
“현아는?”
“언니는 오려면 아직 멀었어,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밥은 먹었냐?”
“아니, 지금 부엌에서 엄마가 준비 중이야.”
문윤아가 소 닭 보듯 하면서도 꼬박꼬박 대꾸해 줬다. 문승협은 방으로 가 책상 앞에 앉았다. 대학지원자료를 주섬주섬 꺼내 점수별 대학커트라인을 펼쳤다. 거실에서 퇴근하여 들어온 아버지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불안한 마음이 일렁였다. 얼른 거실로 나갔지만 늘 그랬듯 조마조마하였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일찍 왔네?”
“네.”
“어이, 뭐 한가, 얼른 저녁주소.”
“예, 다 차렸어요.”
이항리가 밥상을 내왔다. 문경준이 숟가락을 들자, 다들 따라서 수저를 집었다. 세 사람은 식사에 열중했으나, 문승협은 밥을 먹으며 문경준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목이 메어 물과 컵을 가져왔다. 밥그릇이 비워질 즈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아빠, 저 학력고사성적표 받았어요.”
“잘 나왔냐?”
“생각보단 아니에요.”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하지.”
“죄송합니다.”
“…….”
“대학원서를 써야 하는데요.”
“네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
문경준은 다 듣지도 않고 잘라버렸다. 물을 따라 마시고 바삐 집을 나섰다. 문승협은 대문소리를 기다렸다가, 이항리에게 아빠 어디 가는지 물었다. 친구 만나러 간다는 대답에 서글펐다. 아들 대학진학문제보다 친구가 먼저라니, 무정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무서워해서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자신이 미웠다.
“엄마, 나 어떻게 해?”
“뭘?”
“대학 말이야, 가지 말까?”
“너 알아서 해라.”
“엄마도 아빠처럼 그런 거야? 내 학력고사점수도, 나 대학 가는 것도 관심 없어? ”
“…….”
“그럴 거면 그동안 왜 그랬어, 나한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부담 주며 난리 쳤잖아?”
“학생이 당연히 공부해야 하니까 한 말이지.”
“단지 학생이란 이유 때문이었다고?”
“응, 다른 무슨 이유가 필요하대?”
“와, 진짜 어이없다.”
“시끄러, 얼른 밥이나 먹어.”
“엄마, 대학에 가서 접수하려면, 대입원서비랑 서울 갈 차비도 필요하단 말이야.”
“아까 아빠한테 이야기하지 그랬냐?”
“그러려고 했는데, 말도 꺼내기 전에 나가버리시잖아.”
“나는 몰라, 네가 아빠한테 직접 달라고 해.”
“엄마, 이게 핑퐁 하듯 서로 떠넘길 일이야?”
“왜 나한테 그냐, 나는 돈도 없어.”
“돈이야기만 나오면 발뺌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
“아빠가 아까 말했잖아,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하라고?”
문승협은 말문이 막혀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방으로 갔다. 부모무관심에 불쑥 반항심이 일었다. 분노가 치밀어 책상 위 자료들을 손으로 쓸어버렸다. 어느 대학 무슨 과보다 대학을 갈지 말지가 먼저였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이부자리에 누웠다. 서러움이 복받쳐 뜨거운 눈물이 양쪽 관자놀이를 타고 주르륵 흘렀다. 옆으로 돌아누워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날부터 대입원서를 쓰려는 3학년들이 교무실을 들락날락하였다. 문승협은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려고 예상커트라인자료를 보았다. 모두 점수로 서열화돼 있었다. 커트라인 어디엔가 서있을 자신이 상상되자 씁쓸했다. 입시생들은 커트라인통계를 무시할 수 없었다. 자료를 만든 입시컨설팅업체를 신뢰하진 않았지만, 정보가 빈약한 현실에서 필요불가결이었다.
문승협은 마감날에서야 연세대학교로 정하였다. 연세대독수리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독수리처럼 높이 멀리 날아가고 싶었다. 태평하고 단순무식한 억지였다. 학교와 담임선생이 하향안전지원하라며 극구 반대했었다. 합격가능커트라인이 문승협점수보다 높았다. 1지망 경제학과 295점, 2지망 경영학과 290점, 3지망 통계학과 285점. 커트라인기준이 내신 1등급인데 반해, 문승협은 2등급이었으니 당연지사였다.
전·후기일정에 각 한 군데만 지원할 수 있었다. 서울거점상위권대학교와 지방국립대학교는 전기전형이고, 300점 이상이면 최상위대학교합격 수준이었다. 전문대학은 후기대학교선발 이후 모집하였다.
대입학력고사를 첫 도입한 1981년엔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340점 만점에 300점 이상 고득점자들이 유독 많았다. 서로 겁나서 서울대법대지원을 피하는 바람에 학과미달사태가 벌어졌다. 200점 이하 학생 5명이 이른바 배짱지원으로 서울대법대에 합격하였다. 다른 학과에서도 상당수 나타났다. 가히 대입원서영역시초라 할만했다. 결국 다음 해 서울대입시요강에 조항이 추가됐다. ‘본교 수학이 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경우 합격을 취소할 수 있다’.
문승협주변에선 유호창만 점수를 낮춰 고려대학교정치외교학과를 택하였다. 대부분 예상커트라인에 맞춰 원서를 썼다. 문승협은 막무가내지원과 다를 바 없었다. 불안 속에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결정하고 나니 조금 홀가분했다. 학교를 파하자마자 천영기집으로 갔다.
“영기 너는 어디 쓸 거야?”
“캠퍼스가 겁나게 아름답다는 건대.”
“담이 너는?”
“나는 전대 서반어학과.”
“서반어학과가 뭐 대?”
“아, 스페인어여 스페인어.”
“니는 서울 언제 갈래, 내일 나랑 밤기차 타까?”
“그래, 그러자.”
“그라믄 담이 니도 원서 잘 넣고 와, 이 성들은 내일 저녁에 서울 갔다 올란께.”
“잉, 나도 내일 김일광이랑 김일성하고 광주에 가기로 했어. 다녀와서 보자”
천영기도 건국대경영학과에 배짱지원하였다. 이담은 어림잡아 전남대서반어학과를 골랐다. 문승협과 친구들은 학력고사점수에 맞춰야 해서 서글펐다. 꿈과 이상을 좇겠다며 호사 부린 몇몇 친구들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대부분 대학학과선택에 자유롭지 못했다.
천영기와 문승협은 다음날저녁 서울행 기차를 탔다.
“영기야, 만약에 말이야, 이번에 안 되면 어떡하지?”
“아직 원서도 안 냈그만, 부정 타게 그런 말을 해쌌냐?”
“왠지 떨어질까 봐 겁난다.”
“연설하네, 그러다 말이 씨가 된다잉.”
“너는 생각 안 해봤어?”
“쓰잘데기없는 짓거리를 뭐 한디 하냐?”
“그래도,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만약을 대비해 무슨 대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내새끼가 배짱이 있어야제. 으째, 불안하냐?”
“응, 아무래도 내 점수보다 커트라인이 다 높으니까.”
“실은 나도 무데뽀지원인께 걱정되긴 해.”
“우리도 그렇고, 친구들 모두 합격해야 할 텐데.”
“떨어지믄 떨어지는 거제 뭐, 어떻게든 되겄제.
“그래,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
“그라고, 떨어지믄 별수 있냐, 그냥 재수해야제.”
“죄수?”
“죄수가 아니고 재수여.”
“하하, 알아, 아는데 꼭 죄수처럼 들린다야.”
“하기사, 재수하는 거 자체가 죄수제.”
“평일인데도 기차에 사람들이 많네.”
“아야 승협아, 서울역에 내리믄 소매치기가 무자게 많은께 돈간수 잘해라잉.”
천영기도 문승협처럼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낙관적인 성격이라 표정에 드러나지 않았다. 문승협은 돈간수 잘하란 말에 어제 엄마와 실랑이한 일이 떠올랐다.
당장 대학응시원서를 접수하러 서울에 가야 하는데,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원서비와 서울에 다녀올 여비 등으로 8만 원정도 필요하였다. 대입원서접수와 면접까지 대략 일주일간 서울에 머물 비용이었다. 이 눈치 저 눈치보다 어렵사리 꺼냈지만 일언지하 거절당했다. 옥신각신 끝에 3만 원을 받았다. 모아둔 용돈과 돼지저금통을 탈탈터니 3만 원 가까이 됐다. 짠하게 지켜보던 여동생 문현아가 선뜻 만원을 보태줬다. 돈이야기만 꺼내면 돌변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터무니없이 적은 3만 원만 준 것도 모자라, 작은집에서 다니라고 조건을 붙였다. 쓸데없이 친구들과 어울리지 마라면서, 서울작은엄마에게 전화해 놓겠다고 하여 짜증 났었다.
문승협은 뒷주머니에 지갑이 잘 있는지 만져봤다. 7만 원가량 되는 빠듯한 경비를 행여 잃어버릴까 신경 쓰였다. 최근 대학결정문제로 정신적 압박에 많이 지쳤다. 대입원서를 접수하러 가는 길이라 몹시 긴장됐다. 고3이면 누구나 치르는 대학입시라 할지라도, 자라온 인생에서 처음 맞이한 가장 큰 변곡점이었다. 피로가 몰려와 스르륵 잠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술렁이는 승객들소리에 눈을 떴다. 대전역에서 20분간 정차한다는 안내방송이 반복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손으로 성애 낀 차창을 닦고 밖을 보았다. 기차가 서서히 대전역에 들어섰다.
천영기가 대전역가락국수를 꼭 먹어줘야 한다며 문승협팔을 끌고 내렸다. 사람들이 포장마차 같은 가판대 주변으로 순식간에 몰렸다. 여기저기서 주문하는 소리가 빗발쳤다. 가락국수를 파는 아저씨손놀림이 바빠졌다. 그릇째 토렴 하여 손님들에게 건넸다. 기차도착시간에 따라 음식을 준비해 뒀기에, 짧은 시간에도 많은 손님을 맞을 수 있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초록색 플라스틱용기를 들고 먹었다. 좌석은커녕 식탁도 없어 불편해 보였다. 문승협과 천영기도 차례를 기다려 가락국수그릇을 받았다. 우동보다 가는 면발 위에 쑥갓, 송송 썬 파와 유부, 튀김가루가 적당량 얹혀 있었다. 옆사람처럼 양념장을 넣고 고춧가루를 뿌렸다. 비좁은 틈에 서서 먹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샛노란 단무지가 반찬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가락국수를 다 먹어갈 즈음 탄성소리가 들렸다. ‘허~시원하다’. 문승협도 국물을 마셨다. 쌀쌀한 새벽공기에도 온기가 온몸에 퍼졌다. 어른들이 왜 시원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대전역이 가락국수성지가 된 데는 까닭이 있었다. 호남선분기구조와 증기기관차시대의 기술적 한계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호남지역곡물수탈을 쉽게 하려고, 경부선부산역에서 대전방향으로 분기하도록 호남선을 부설하였다. 서울과 호남을 오가려면 반드시 대전역에 들어가 기관차방향을 반대로 바꿔야 했다. 증기기관차는 150km 정도 달리면 화차교체가 불가피하였다. 경부선열차도 대전역에서 정차했다. 대규모정비기지를 갖춘 경부선대형기차역으로 발전한 이유였다. 대전역에 도착할 때는 몇 분간 정차한다며 꼭 방송을 해줬다. 작업시간이 오래 걸린 만큼 가락국수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정차시간 동안 승객들의 여정중간 간식장소로 각광받았다. 열차식당칸이나 홍익매점에서 도시락을 판매하였으나, 비싸고 간식으론 부담스러웠다. 여러모로 가락국수가 제격이었다.
정비를 마친 기차가 기적을 울렸다. 증기를 내뿜으며 곧 출발을 알렸다. 가락국수를 먹다 열차를 놓치는 일이 허다했기에, 역무원이 플랫폼을 돌아다니며 승차를 재촉하였다. 뒤늦은 사람들이 허둥지둥 마시다시피 하거나, 남긴 가락국수를 아쉬워하며 기차에 올랐다.
“으째, 먹을 만 하디?”
“응, 맛있게 먹었다. 옛날에도 대전역에서 국수를 먹었는데, 그땐 그냥 그랬거든.”
“언제야? ”
“어렸을 적인 데, 비몽사몽 간에 기차가 떠날까 불안해서 맛있단 기억은 없었어.”
“근디 가락국수값이 200원이믄, 비싼 거 아니여?”
“짜장면 한 그릇이 500원인데?”
“우리 다니든 독서실 옆 포장마차국수는 50원이잖애.”
“거긴 돈 없는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했으니까 그렇지, 아주머니인심도 좋았고.”
“하기사, 거그는 잔치국수였은께.”
“맞아, 여기는 우동 같은 면이었어.”
“포장마차서 미정이랑 먹은 묵은 김치가 일품인디.”
“참, 백미정은 원서 어떻게 했어?”
“전남대산업디자인. 한현진이는 전남대미대고.”
“아, 그래서 담이가 전남대서반어학과에 지원했구나?”
“잉, 유은정이는 즈그 아부지가 전남대경제학과에 넣으라고 콕 찍었다드라.”
“다들 합격했으면 좋겠다.”
“그라고, 우리 오늘 원서접수 끝나믄, 신촌에서 서울친구들이랑 만나기로 했다잉.”
“서울얘들한테 연락했어?”
“잉, 엊그저께 전화 돌렸어.”
기차가 서울을 향해 거침없이 달렸다. 일부 승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고스톱을 쳤다. 천영기가 가락국수로 출출함을 달랜 포만감에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문승협도 따뜻한 스팀에 졸음이 몰려왔다.
무척 오랜만에 꿈속에서 정난희를 만났다. 문승협을 붙잡고 연세대학교에 꼭 합격하라며 절규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지난날을 돌이켜봤다. 친구들과 주변사람들 때문에 정난희에게서 벗어난 것처럼 행동하였지만,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연세대를 지원한 목적도 정난희였다. 정난희성격상 기필코 이화여대무용과에 진학할 거라 믿었다. 이별의 아픔을 힘겹게 다스리는 중에도 확신했다. 고3병을 겪으면서도 공부에 집중하려 애쓴 이유 또한 정난희였다. 책만 보면 아파오는 두통을 참고, 쇠약해진 건강에 고통을 견뎌냈다. 신촌에서 정난희와 팔짱을 끼고 다니는 상상만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처음에는 하향안전지원을 염두하였으나, 정난희에게 조금이라도 돋보이고 싶은 욕심에 점수보다 높은 상경대학을 택했었다.
모든 과정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무의식 속에서 이뤄졌다. 배짱지원불안감이 꿈속에서 정난희와 나타난 것이다. 대입원서제출 시간이 다가오면서, 불합격될까 봐 덜컥 겁이난 현실의 발로였다.
문승협은 불쑥 들이닥친 걱정을 떨치려 애썼다. 또래들 사이에서 연대생이대생커플이 선망의 대상인 것처럼, 한 번쯤 몽상이 아닌 자기 현실로 이뤄지길 바랐다.
잠시 후 영등포역에 도착한다고 안내방송이 나왔다.
“차창밖에 뭐 있냐?”
“어, 아니야. 언제 깼어?”
“쪼가 전에. 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냐?”
“생각은 무슨, 서울시내 구경하고 있었어.”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안그만.”
서울시내 기찻길 주변으로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부산스레 움직였다. 어둠에 가려진 세상이 여명과 함께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 서울역을 빠져나오니 추위가 반겼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이 입김을 달고 다녔다. 문승협과 천영기는 아침을 먹으러 역 주변 국밥집을 찾았다.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식당을 나서니 동이 텄다. 서울역 건너편에 거대한 황금탑이 반짝거렸다. 햇빛에 비친 황갈색 대우빌딩이 웅장하였다. 천영기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을지로입구버스를 물었다. 건국대를 가려면 을지로입구역에서 2호선 지하철을 타야 했다. 길 건너 버스정류소까지 한참 걸었다.
을지로에 내려서도 지하철 타는 곳을 몰라 찾아 헤맸다. 국민학교5학년 때 서울을 떠난 문승협도 마찬가지였다. 생경하게 변해버린 서울지리를 알턱이 없었다. 영락없는 시골 쥐의 서울나들이였다. 지하철승차장도 성수방향을 물어 물어 탔다. 버스기사에게 확인하던 것처럼 지하철노선도를 보고 몇 정거장인지 세어봤다. 정차역안내방송이 나올 때마다 귀를 쫑긋 세웠다. 건대입구역에 내리면서도 조마조마하였다.
지하철 2호선은 정부의 강남개발로 강남과 강북도심을 연결한 순환선이었다. 신설동에서 종합운동장노선은 3년 전 1980년 10월 31일 완공됐다. 신설동역을 잇는 을지로입구구간과 성수지선이 3개월 전부터 운행했다. 전구간개통은 내년 1984년 5월 말 예정이었다.
“아따, 서울이라서 그란가 사람들이 무자게 많다잉.”
“그러게, 목포에서 등교할 때 만원 버스와 똑같다야.”
“니 지갑은 잘 있냐?”
“지갑? 어, 잘 있다.”
“지하철에도 소매치기가 득시글하다드라.”
“그나저나 여기서 어디로 가야 건국대가 나오는 거지?”
“저그 역무원아저씨한테 여쭤보자.”
친절히 알려준 역무원아저씨말대로 찾아갔다. 건국대학교병원 옆길을 돌아 후문이 나왔다. 당장 시급한 용무가 대입원서라 접수처를 찾았다. 마감일이 3일 남아선지 생각보다 한가하였다. 천영기가 써온 대학입학지원서를 꺼내 곧장 창구로 다가갔다.
“영기야, 접수 전에 몇 명 지원했는지 한번 확인해 봐?”
“아야, 배짱지원하는 판국에 뭔 눈치를 보겄냐, 시원하게 그냥 내불란다.”
천영기가 호기롭게 원서제출을 마쳤지만, 불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감정을 숨기려 대범한 척 애썼으나, 동공이 흔들렸다. 인생을 결정할 중대사안이기에 당연지사였다. 문승협도 이심전심 모른척하였다.
둘이 원서접수처를 나와 캠퍼스를 걸었다. 다양한 나무들이 자란 엄청 넓은 호수가 나타났다. 서울지역 인공호수 중 가장 큰 규모라며 자랑할만했다. 건국대학교캠퍼스자체가 커다란 공원이었다.
“영기야, 이 호수가 일감호래.”
“어뜨크롬 아냐?”
“며칠 전 건국대학교 신입생모집안내책자에서 봤어.”
“어디서 났는디?”
“담임선생님이 보라고 주더라.”
“니는 담임 복도 있다잉, 울 담탱인 뭐 했나 모르겄다.”
“추운 겨울에 호수가 얼면 스케이트를 타기도 한대.”
“호수가 허벌나게 넓어 갖고, 저그 건물에서 수업 들을라믄 빙 돌아가야겄다야.”
“하하, 그런 단점이 있네. 저기 호수 건너 다리 보여?”
“잉, 작은 거 하나 있그만.”
“무지개다리라는 뜻의 홍예교란다, 잘 봐둬.”
“다리가 다 거그서 거그제, 잘 봐둘 것까지 있어?”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대.”
“뭔디?”
“커플이 아닌 사람들이 건너면 커플이 되고, 커플이 건너면 헤어지게 된다더라.”
“그래? 진짜?”
“그렇다나 봐, 근데 왜 눈이 커지냐?”
“여그 입학하믄, 맘에 드는 가시나랑 같이 건널라고.”
“지랄, 백미정은 어쩌고.”
“대학 가믄 땡이어, 각자 갈길 가야제.”
“에휴, 카사노바 같은 네 바람기를 누가 막겠냐?”
“염병, 바람기는 무슨, 내가 결혼을 했냐 뭣을 했냐?”
“관두자 관둬, 내 인생도 아니고 네 인생이니까 뭐.”
“니나 그 지조 지킨다고 애쓰지 마, 여럿 만나봐야 좋은 가시나인지 아닌지 알제.”
“여기가 청심대인가?”
“청심대?”
“응, 여기서 보면 호수풍경을 감상하기 좋대.”
“글쎄잉, 호수가 한눈에 보이긴 한디, 겨울이라서 그란가 벨로 볼 것은 없다야.”
“영기야, 저거 봐봐.”
“뭔 학교에 황소동상이 다 있다냐?”
“이런, 건국대학교상징이잖아, 너는 건국대를 지원하면서 도대체 아는 게 뭐냐?”
“그래도 캠퍼스가 아름답다 정도는 알어, 그라고, 배짱지원한마당에 알게 뭐여?”
“어느 정도는 알아야지, 곧 면접도 볼 텐데.”
“아따, 니는 얼마나 아는가 이따 보자잉?”
“불놀이야 노래 부른 옥슨80 알지?”
“잉, 걔들이 으째서?”
“그 옥슨80이 여기 건국대학교 그룹사운드고, 옥슨이 저 황소란 뜻이잖아.”
“예예, 잘 알아서 모시겄습니다.”
“하하, 가자, 우리 작은집이 여기서 가까워.”
“오랜만에 간다믄서, 인사만 하고 나올 수 있겄냐?”
“그러게, 일단 가보자.”
문승협의 서울 작은집은 동부경찰서 맞은편 구의동이었다. 건국대에서 걸으면 10여분 거리였다. 가는 길 건너에 어린이대공원이 시선을 끌었다. 담너머로 구경하다 보니 30분쯤 걸렸다. 요즘 인기리에 지어진 불란서식 2층 단독주택이 즐비하였다. 인터폰을 누르니 작은엄마목소리가 들려왔다. 삐 소리가 나며 대문이 열렸다. 현관까지 나와 반겨주어 황송했다.
“작은엄마, 안녕하셨어요?”
“와따, 우리 집 장손 왔는가, 어서 들어와.”
“처음 뵙겄습니다, 천영기라고 합니다.”
“목포에서 같이 올라온 제 친구예요.”
“반갑소, 들어와요.”
“승희랑 승현이는요?”
“승희는 학교 가고, 승현이는 유치원 갔어.”
“그동안 잘 계셨죠?”
“응, 우리 조카님 덕분에. 어제 엄마한테 전화 왔었다.”
“네. 친구가 건국대에 원서 내는데 따라왔다 들렀어요.”
“엄마아빠는 잘 지내시지? 동생들도 잘 있고?”
“네, 모두 잘 있어요.”
“친구는 그렇고, 너는 어디에 원서 쓰는데?”
“연세대에 지원할까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와, 우리 장조카가 공부 좀 했네?”
“어쩌면 떨어질지도 몰라요.”
“호호, 자신감을 가져, 그래야 떨어질 것도 붙고 그래.”
“네.”
“앉아서 숨 좀 돌리고 점심 먹자.”
“아니에요, 빨리 가서 원서내야죠.”
“그래도 점심은 먹어야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잖아.”
“친구랑 가면서 먹을게요.”
“그럼 지금 간다고?”
“원서 내고 또 들를게요.”
“너 온다고 해서 시장도 봐놨그만은.”
“죄송합니다.”
“할 수 없지 뭐,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니까.”
“하하, 싫은 게 아니고 시간이 좀 그래서요.”
“알아 알아, 그러면 용돈이라도 좀 줘야겠네.”
“아니에요, 엄마한테 받아서 충분해요.”
“객지 나와서 돈 없으면 불안하고 그래, 배 굶지 말고.”
“너무 많아요, 그럼 만원만 주세요.”
“어허, 어른이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윤옥희가 3만 원을 억지로 쥐어줬다. 문승협과 천영기를 배웅하려 따라나섰다.
“가는 길은 알아?”
“네, 대충이요.”
“구의역에서 전철 타고 을지로역에 내리면, 연세대로 가는 버스가 있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구의역은 이쪽으로 쭉 가면 나와. 꼭 다시 들려라, 작은아빠도 만나고 가야지.”
“네, 들어가세요.”
서울작은엄마 윤옥희가 골목자락을 돌아갈 때까지 문승협과 천영기를 지켜봤다. 명성여고 앞 이면도로가 나오자, 천영기가 작은집에서 수갑을 봤다고 하였다.
서울작은아버지 문경빈은 군복무시절 월남전에 참전했다. 지금은 남대문경찰서경위로 교통경찰팀장이었다. 문승협을 무척이나 예뻐하였다. 총각시절엔 수시로 옷과 장난감을 사서 안겼다. 외가에서 작은 외삼촌 이우철이 애정을 쏟아줬다면, 친가에서는 유일하게 문경빈이 그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