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별 – 2권 2부 4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34)

by 태양을 품은 별

이틀이 지나가는 동안 교실은 평온하였다. 문승협이 노병돈을 주시했지만 특이한 점은 없었다. 장기원도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오전수업만 하는 토요일청소시간이라 다들 들썽거렸다. 노병돈은 주위를 맴돌며 메시지를 기다리는 문승협을 의식적으로 피해 다녔다. 더군다나 다른 때보다 장기원에게 더 친근히 대하였다. 문승협은 현실과 타협해 버린 노병돈태도에 낙심했다.

학생들은 5분도 걸리지 않는 종례를 길게 느꼈다. 빨리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보자는 담임선생말이 끝나자, 반장에게 모인 시선이 인사를 재촉하였다. ‘차렷, 경례’ 구령과 동시에 ‘안녕히 계세요’를 외쳤다. 평상시 작고 힘없던 목소리가 유독 토요일엔 우렁찼다. 해방감에 일제히 환호하며 일어섰다. 미리 챙겨놓은 책가방을 들고 총알처럼 튕겨나갔다.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다 교실문에 끼었다. 조심하라는 담임선생호통도 귓등에 닿지 않았다. 문승협은 무덤덤히 책과 노트를 가방에 넣었다. 책걸상을 정리하면서 무심결에 노병돈을 쳐다봤다. 노병돈이 장기원동태를 살피며 천천히 책가방을 쌌다. 교실을 나가는 장기원을 보고서야 문승협에게 시선을 줬지만 내색은 없었다.

문승협이 운동장을 지나 교문에 다다를 즈음, 왠지 노병돈이 교실에서 기다릴 것만 같았다. 혹여 장기원이 학교에 있을까 봐 주위를 둘러본 뒤 서둘러 교실로 향했다. 교실앞문이 열쇠로 잠겨있고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교실 뒤쪽 거울에 비친 낯익은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뒷문으로 가 열었으나 잠금고리에 걸려 들썩였다.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노병돈을 불러도 움직임이 없었다.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잠금고리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야, 안에 있으면서 왜 대답을 안 해?”

“가분 줄 알았는디, 나 여그 있는지는 으째 알았냐?”

“네가 아무 말 없길래 그냥 가려고 했는데, 혹시 교실에서 기다릴까 싶어 한번 와봤어.”

“숨어있었는디, 보이디?”

“기둥 옆에 있는 네 가방이 저 거울에 살짝 보였어. 네가 뭘 잘못했다고 숨어있냐?”

“쪽시럽기도 하고, 행여 장기원이 올까 비.”

“나도 오면서 살펴봤는데, 장기원이는 안보이더라.”

노병돈이 불안한 마음에 고개를 내밀어 복도좌우를 둘러보았다. 뒷문을 닫고 잠금고리를 걸었다. 가방이 놓여있는 기둥벽에 기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교실 열쇠는 어떻게 된 거야?”

“아, 내가 다음 주 주번이어.”

“기분은 좀 어때, 괜찮아?”

“쉿.”

노병돈이 잔뜩 긴장하여 귀를 기울였다. 슬그머니 창문으로 가서 이리저리 복도를 살폈다. 문승협은 무척 안쓰러웠다. 갑자기 책상을 끌어다 운동장창가 쪽에 자리 잡았다. 노병돈은 불안하게 바라봤다.

“거기서 이야기하면 복도를 오가는 사람이 들을 수 있으니까, 차라리 이쪽에 앉자.”

“그라믄 지나가다 다 보잖애.”

“보라고해, 보면 어때? 우린 여기서 나머지 공부를 하는 거야, 우리끼리.”

“…….”

“괜찮아, 누가 물어보면, 서로 모르는 거 가르쳐주면서 공부했다고 하면 돼.”

“그 거짓갈을 누가 믿겄냐? 내가 니한테 공부 좀 갈쳐달라고 했다믄 모르까.”

“그래 그럼, 그렇게 하면 되겠네.”

둘은 책상 하나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수학책을 폈다. 문승협은 말없이 연습장에 수학문제를 풀며 기다렸다. 노병돈은 창밖 운동장과 책을 번갈아 보다 문승협정수리를 물끄러미 보았다. 한참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자신의 가정사와 괴롭힘 당한 사정을 짧게나마 다시 설명하였다. 장기원의 괴롭힘도 힘들지만 점점 주위 친구들까지 덩달아 따라 해서 죽고 싶다며 토로했다.

“병돈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네가 죽는다는 생각을 해.”

“…….”

“부모님 이혼이 네 잘못이야?”

“아니, 근디 정상은 아니잖애.”

“왜 정상이 아니야? 너 장기원이 싫잖아, 싫어서 보기 싫지? 그거랑 다를까?”

“그래도, 자식새끼를 생각하믄 그래선 안되제.”

“그러면, 너를 위해서 엄마가 희생하길 바라는 거야? 너의 인생 중요하지, 그럼 엄마 인생은?”

“…….”

“엄마도 너처럼 죽을 만큼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이혼을 선택한 건 아닐까?”

“…….”

“엄마아빠도 잘해보려고 많이 노력했을 텐데, 우리가 부모님 속마음을 다 모를 뿐이야.”

“그래도, 참고 또 참고 참아서, 이혼 안 하고 사는 가정이 훨씬 더 많잖애.”

“그래 맞아, 그니까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을 칭송해야지, 이혼을 비난할 일은 아니라 생각해.”

“…….”

“부모이혼은 네가 어떻게 생각하냐에 달려있어, 부모판단을 존중하느냐, 창피해하느냐.”

“존중?”

“네가 엄마를 사랑한다면, 불가피하게 그런 결정을 내린 엄마를 위로해 줘야지. 아마도 너희 엄마는 너한테 한없이 부끄럽고 또 미안하실 거야.”

“느그 부모님은 사이가 좋은 갑다잉.”

“그럴 리가, 나도 우리 엄마아빠가 싸울 때마다 이혼할까 봐 엄청 무서워.”

“만약에 느그 부모가 이혼하믄 너도 존중할 거여?”

“야, 그런 건 가정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모르겠어, 그때 가봐야 알지.”

“거봐, 니도 남일이라고 편하게 말하는 거잖애.”

“그래, 당장에 내 문제가 되면 나도 너랑 별반 차이 없어. 하지만, 너처럼 창피해하진 않을 거야.”

“…….”

“너한테 엄마는 필요조건이지만, 너희 엄마에게 너는 이미 충분조건이야, 넌 자식이니까.”

“그건 또 뭔 말이데?”

“부모와 자식이 행복을 위한 요소일 수는 있어도,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뭔 말인지 모르겄다.”

“너와 엄마를 한번 분리해 봐, 너는 너, 엄마는 엄마.”

“사람이 정이 있는디, 그게 말멩키로 어디 쉽간디?”

“정을 끊으라는 말이 아니야, 정은 끊는다고 생각처럼 쉽게 끊기지 않아.”

“…….”

“엄마 인생을 가져다가 너의 행복으로 삼지 말라고, 엄마 인생과 너의 인생은 달라.”

“하기사, 엄마는 엄마제 내가 아닌께.”

“그래, 이미 일어난 일을 원망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차라리 앞으로 행복을 생각하자.”

“원망? 집착?”

“응, 지금 진짜 문제는 너의 가정사를 자기들 재미를 위해 놀리는 애들이야.”

“개쌍놈의 호로시끼들, 생각 같아서는 모가지를 확 비틀어버리고 싶단께.”

“병돈아, 너 오늘은 유독 장기원을 가깝게 대하더라, 장기원과 문제는 어떻게 할 거니?”

노병돈표정이 장기원이름을 듣는 순간 어두워졌다. 미간을 심하게 찡그리며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때 교실뒷문이 들썩였다. 노병돈이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문승협이 일어나 가보았다.

“아무도 없어, 바람인가 봐.”

“사람소리 같았는디?”

“지금 학교에는 3학년들 밖에 없어, 별관에 있는 3학년이 여기 본관에 올 일도 없고.”

“3학년?”

“응, 대입학력고사공부 때문에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6시까지 교실을 개방했다더라.”

“하기사, 3학년이 여그 2학년 교실을 올 일은 없은께.”

“병돈아, 우리 같이 해결방법을 찾아보지 않을래?”

“방법은 무슨, 그때만 잠깐 참고 넘기믄 돼야.”

“다음이 있잖아, 다음이 올 때까진 어떻게 참을래, 그때까지 네 마음은 또 어떻겠어? 그리고 또 그다음은?”

“그라믄 나보고 으짜라고야?”

“세상은 늘 잠깐이 문제야, 대부분 사람들이 두려움에 순간을 넘기려고 현실을 회피해, 그러면 그럴수록 잠깐과 순간이 더 길어진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야.”

“…….”

“맞아서 아픈 것은 피할 수 없어도, 고통을 참고 대항하는 건 선택이 가능해. 죽자 살자 덤비면 상대도 알아,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거야. 병돈아, 상상만 하지 마, 해보지 못한 거 해봐. 희망이 없으면 폭력에 굴복하고, 희망이 강하면 위협을 이겨낼 수 있어.”

“…….”

“누군가 나서서 도와주길 바라지 마, 네가 해내지 않으면 누구도 돕지 않아. 스스로 이겨내야 비로소 네 편이 생길 거야,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

노병돈이 고개 숙인 채 죄인처럼 들었다. 용기가 필요하다는 대목에서 척추를 곧추세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책상 위에 양손을 올려 깍지 끼면서 눈빛이 달라졌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뭔가 결심한 모습이었다.

문승협은 현실자각을 통한 각성을 일깨우려 노력했다. 더 이상은 과유불급이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멈췄다. 나머지 판단은 노병돈에게 맡겼다.

“알았어, 알았은께 인자 집에 가자.”

“병돈아, 이병규도 좀 이상하던데, 왜 그런지 아니?”

“뭐가야?”

“요즘 들어 말수가 부쩍 줄고, 자꾸 너랑 나를 살피듯이 관찰해서.”

“니가 직접 물어봐라, 내입에 올리기 거시기한께.”

“짐작 가는 게 있구나?”

문승협은 이병규행동도 노병돈처럼 뭔가 고민하는 신호로 보였다. 노병돈이 분명 아는듯한데 대답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펼쳐 논 책을 가방에 담는데, 누군가 후다닥 달아나는 인기척이 났다.

“거그 누구여?”

“응?”

“누가 뛰어간디?”

“걱정하지 마, 장기원이었으면 도망가지도 않아.”

노병돈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문승협이 어깨를 감싸 안고 안심시키며 교실을 나섰다. 노병돈이 잠깐 기다리라더니 앞문열쇠를 풀었다. 안으로 들어가 뒷문잠금고리를 걸고 나와 다시 열쇠를 채웠다.

둘은 아무 말이 없이 교정을 가로질렀다. 노병돈이 한숨을 몰아쉬며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았다. 문승협이 번민에 휩싸인 노병돈을 격려하려고 나직이 읊조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얼마 전 김생출선생이 수업시간에 가르친 데카르트명언이었다.

서로 집 방향이 달라 노병돈이 먼저 온 버스를 탔다. 문승협은 버스에 오르는 노병돈을 지켜봤다.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 반 걱정 반이었다. 아무쪼록 용기 있는 행동을 하길 바랐다. 곧이어 문승협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자리에 앉아 자신이라면 어땠을지 돌이켜보았다. 힘들어하는 노병돈마음만큼은 이해되었다.


노병돈은 월요일 정규수업까지 평소와 다름없었다. 조용한 야자시간에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장기원이 공부하다 무료해서 일상처럼 볼펜으로 노병돈옆구리를 세게 찔렀다. 노병돈이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비만 때문에 비하당한 일들을 목청 높였다. 적막을 깨트린 외침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항상 웃음으로 넘기던 아이의 대항이라 놀라는 건 당연하였다. 장기원이 곱지 않은 시선에 얼굴이 빨개졌다. 반아이들은 처음 보는 노병돈행동임에도 동조 없이 금세 각자 공부에 집중했다. 오히려 노병돈이 뒷자리서 자고 있던 모영욱에게 잠을 깨웠다는 이유로 온갖 욕설을 들었다.

반아이들은 장기원이 노병돈을 괴롭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았다. 노병돈을 이렇게까지 만든 공법이었다. 그러나 노병돈목소리가 교무실까진 아니어도 좌우옆반에 들렸다. 다른 반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무슨 일인지 물으러 왔다. 평소 노병돈태도와 다른 이야기라 다들 의아해하였다.

두 번째 반항은 다음날 쉬는 시간이었다. 노병돈이 돈을 꿔달라는 장기원에게 그동안 뺏긴 액수가 어림잡아도 십만 원은 넘을 거라고 거칠게 따졌다. 장기원은 노려보는 반아이들 눈초리에 손을 저어가며, 노병돈에게 터무니없는 소릴 한다고 윽박질렀다. 반아이들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구심을 가졌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나서서 묻는 아이는 없었다.

세 번째는 같은 날 점심이었다. 장기원이 노병돈의 도시락반찬을 갈취하면서 벌어졌다. 노병돈은 엄마를 과부니 이혼녀니 하며, 가정사로 놀림당한 사실을 조목조목 쏟아냈다. 옹기종기 모여 먹는 시끌벅적한 점심시간이지만, 교실이 떠나갈듯한 절규에 정적이 흘렀다. 노병돈이 장기원에게 그만 좀 하라며 눈물로 애원하다시피 했다. 마침내 반아이들이 동요하였다. ‘뚱보, 돼지, 돈 뺏기, 호구, 이혼녀, 과부’등 노병돈을 자극한 단어들은 그나마 그러려니 했으나, 엄마가 밤에 외로울 텐데 어떻게 해결하냐는 성적발언이 결정적이었다. 하나 둘 장기원을 향해 힐난하였다. 동조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욕설도 나왔다. 장기원은 갑자기 등 돌리며 노병돈 편에선 반아이들이 두려웠다. 자칫 모두에게 외면받거나 혼자 고립될 위기를 직감했다. 아무리 독보적인 존재라도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공동체인식변화에 견뎌낼 사람은 없었다.

노병돈의 두 번 세 번 이어진 저항이 반아이들을 움직였다. 공개적으로 항거하는 용기가 그렇게 효력을 발휘하였다. 장기원에게 돌변한 반아이들 모습은 마녀사냥이나 집단따돌림과 유사했지만, 여느 사회집단에서 볼 수 있는 선한 정의로움으로 다수가 불의에 분노하는 여론이 되었다.

이후 반분위기는 말 그대로 적막하였다. 장기원은 오후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에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노병돈 또한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장기원은 머리회전이 빨라 심각성을 인지했다. 야자시간에 담임선생이 자리 비운틈을 타서 교단 앞으로 나갔다. 고해성사한뒤 무릎 꿇고 사과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에 반아이들뿐 아니라 노병돈도 충격이었다. 장기원이 고개 숙인 채 바르르 떨었다. 치욕감인지 진심을 다해선지 분간이 어려웠다. 적어도 반아이들 마음을 움직여 동정심유발에는 성공했다. 노병돈은 사과를 받아들이라는 무언의 반아이들 시선에 안절부절못하였다. 당장 수용하기 힘들었으나 반아이들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망설임 끝에 단상으로 나가 장기원을 일으켜 세웠다. 반장 강원종이 둘의 결단에 손뼉을 쳤다. 반아이들도 덩달아 박수로 독려했다. 장기원이 악수를 청하자 노병돈도 손을 잡았다. 정작 사과받고 용서해야 할 주체가 노병돈인데, 반아이들이 사과받고 용서하는 꼴이었다. 노병돈은 경황없이 자리로 들어가면서 문승협을 힐끔 쳐다보고 머쓱해하였다. 횡포꾼 모영욱이 땡땡이쳐서 가능했고, 반아이들이 화해의 증인이 될 수 있었다.

야자시간이 끝나고 하교하면서 장기원과 노병돈이 함께 교실을 나섰다. 이병규가 혹시라도 불상사가 있을까 싶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교실문을 나가는 문승협을 허겁지겁 뒤따라갔다.

“아야, 문승협.”

“응?”

“니는 일을 벌였으믄 뒤처리까정 해야제, 요로코롬 모른척하고 가불믄 으짤라고 그라냐?”

“뭘?”

“어허, 지금 저그 장기원하고 노병돈이 같이 가잖애, 니 눈깔에는 안 보이냐?”

“그게 뭐 어때서, 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서겠지.”

“니도 답답하다잉, 장기원이가 노병돈을 가만두겄냐?”

“지가 가만 안 두면 어쩌겠어, 장기원이 또 그러면 반아이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잖애?”

“병규야, 너는 가만히 있을 거야?”

“…….”

“정 그렇게 불안하면 쫓아가 보던가.”

“…….”

“서로 나쁜 감정을 풀시간이 필요할 거야. 아까는 애들 앞이었잖아, 둘이 할 말이 많겠지.”

“진짜 괜찮으까?”

“응, 아무 일 없을 거야, 너무 걱정 마.”

이병규가 단언하는 문승협을 못 미더워하였다. 그렇다고 장기원과 노병돈을 따라가 볼 엄두도 못 냈다.

문승협은 이병규언행으로 보아, 오랫동안 장기원과 노병돈일에 관심 갖고 지켜봤음을 확신했다. 이병규에게도 무슨 일이 있다는 심증을 굳혔다. 노병돈사건이 일단락되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누구든 자기가 당하는 불의에 자각과 각성이 중요하고, 힘이 부칠 때는 도움과 연대를 요청하는 용기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가까운 사례도 있었다. 방학 전 학생인권개선을 위해 스스로가 나섰던 전교생단체행동사건이 그랬다.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깨어있는 시민의 단결된 힘으로 맞선 5.18광주민주항쟁이 증거였다.

다음날 반온도가 조금 달라졌다. 노병돈이 용서하는 모양새였지만, 장기원에 대한 벽이 생기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반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거부감에 이전처럼 장기원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였다. 노병돈에게는 방관했던 미안한 마음에 관심을 가졌다. 노병돈은 장기원문제로 오랜 시간 힘들었으나 악감정을 담아두진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성격 때문에 먼저 장기원에게 다가가는 결자해지의 대범함을 보였다. 모두가 서먹한 가운데 외관상으로는 문제없었다. 예전처럼 자연스럽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문승협이 점심을 먹고 턱걸이 연습을 하러 운동장 한편에 있는 철봉으로 갔다. 며칠 뒤 내년 대입학력고사를 대비한 체력장측정 때문이었다. 철봉을 선점한 아이들이 매달려 서로 떨어뜨리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면서 평행봉 위를 날아다니는 3학년 선배를 구경했다.

“여그서 뭐 하냐?”

“야 노병돈, 저 선배 평행봉 진짜 잘하지.”

“잉, 나도 저만침은 해.”

“배불뚝이 네가?”

“뭐라고야, 배불뚝이?”

“배가 나온 건 사실이잖아, 안 그래?”

“음마, 니도 장기원이랑 매한가지다잉, 외모로 사람을 비하해쌌고 말이어.”

“나라고 뭐 다르겠냐? 그러니까 너도 살 좀 빼.”

“내가 물 찬 제비를 한번 보여주께.”

노병돈이 평행봉에 뛰어올라 양팔겨드랑이를 끼었다. 발을 앞뒤로 흔들더니 평행봉을 짚고 일어났다. 두발을 높이 들어 올려 구르다 물구나무섰다. 이내 어깨로 평행봉 위를 굴러 풀쩍 뛰어내렸다. 우쭐대며 반응을 살폈다. 문승협이 엄지를 추겨 세웠다.

“우아, 물 찬 돼지 잘 봤다.”

“니 억지로 나 놀리냐?”

“응, 그래야 옛날 네 모습으로 빨리 돌아올 거 같아서.”

“허허, 연설하네 진짜.”

“병돈아, 나 턱걸이 좀 가르쳐주라, 저기 자리 났다.”

“맨입에?”

“이따 매점 가서 음료수 살게.”

“음료수 받고, 앙꼬빵 추가.”

“으이그, 제발 먹는 것 좀 그만 밝히라니까. 대신 못 가르치면 네가 사는 거로.”

“오케바리. 니 턱걸이 몇 개 하냐?”

“5개 정도.”

“포도시? 학력고사 체력장에서 18개가 만점인가 긴디, 니는 큰일 났다.”

노병돈이 시범을 보이겠다며 뚱뚱한 체격에도 턱걸이 20개를 가볍게 하였다. 아는 범위에서 턱걸이방법을 열심히 알려줬다. 매번 5개를 넘지 못한 문승협을 보고 난감해했다. 어깨근육과 활배근운동을 해서 근력을 키우라고 하였다. 특단의 기술인 배치기요령을 가르쳤다.

“2반 이달순 따라서 헬스장이라도 다녀야 하나?”

“그것도 좋은 방법이제.”

“에휴 힘들다, 그만 가자.”

“몇 개 했다고 그렇게 죽상이어.”

“매점 가기 싫어?”

“뭔 소리까잉, 학교는 공부하러 오는 것이 아니고 매점 갈라고 오는 것인디.”

“하하하, 언제는 도시락 먹으러 학교 온다며?”

“허허, 둘 다제.”

둘은 매점으로 향했다. 잠시 말없이 걸었다.

“나는 기원이가 이렇게 빨리 사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잉, 뜻밖이라서 마지못해 받아들였어.

“상상을 행동으로 옮긴 느낌이 어때?”

“니 말이 맞드라.”

“뭐가?”

“용기 말이여.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 용기 낸께 세상이 달라지드만.”

“다행이다.”

“이혼이 흠이 안 되는 시대, 많이 먹는 게 자랑이고 돈이 되는 시대가 있으믄 좋겄다.”

“그래, 네 바램이 현실이 되는 시대가 꼭 올 거야.”

“그라고야, 입으로는 친구라믄서 괴롭히는 시끼들도 싹 다 없어졌으믄 좋겄어.”

“학교폭력으로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그런 시대도 언젠가는 오겠지, 카르마의 법칙처럼.”

“그것이 뭣인디?”

“세상이 순리대로 알아서 해결한다는 그런 거야. 참, 장기원이 다른 말은 안했어?”

“그날 같이 하교하믄서 미안하다고 하드라. 근디, 장난이 지나쳤다는 말을 덧붙여서 짜증 났어. 나는 그 장난질에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겄다.”

문승협은 모든 걸 장난으로 돌렸다는 말을 듣고 아무 죄의식 없는 악의 평범성에 놀랐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림을 멀리서 보면 아름다우나 가까이서 보면 잔인한 것처럼, 노병돈의 비극도 한걸음 떨어져 보면 희극이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은 그리 아름다운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노병돈이 매점에 들어서서 매대로 갔다. 다 팔려버린 단팥빵에 망연자실하였다. 문승협은 대신 삼립크림빵과 바나나우유를 사서 안겼다. 노병돈이 해맑은 표정으로 봉지를 뜯어 빵을 크게 한입 물었다. 문승협은 천진난만한 노병돈표정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오후수업은 늘 졸음과 사투였다. 특히 수학시간엔 배수의 진을 친 졸음과 전쟁에서 필패했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로마개선장군이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다들 승리를 만끽하는 졸음 앞에 꾸벅꾸벅 머리를 조아렸다. 거시적 세계의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F=MA공식으로 수학을 배우게 만든 아이작뉴튼을 원망하였다.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유명세가 아니었다면 학생들에게 희대의 역적이 될뻔했다. 하지만 공부 잘하는 몇몇 학생은 차치하더라도 유독 이병규눈이 똘망똘망하였다. 문승협은 잠을 이기는 방법이 궁금해 유심히 살펴봤다. 다름 아닌 수학책에 끼어있는 만화책이었다.

이병규는 다음 수업도 야자시간에도 만화책을 봤다. 공부는 언제 하나 걱정될 정도였다. 얼마나 교묘하게 숨기고 보는지 옆자리 친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만화책 보기와 도시락 까먹는 수법이 다양하였으나, 이병규의 만화책 보기 신공은 새로운 기술이었다. 만화책을 얇게 갈라 여러 권으로 만들거나 손바닥만 한 포켓용을 애용했다. 만화방에서 빌리지 않고 서점에서 직접 샀기에 가능하였다. 헌책방에서 구입해 임의가공하고, 출간된 포켓용 만화들 중에서 선호하는 장르물을 골랐다. 더욱이 만화책을 모으는 색다른 취미가 있었다. 신간이 나올 때면 서울청계천상가까지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정판인 경우 사전예약과 웃돈주기는 예사였다. 상점이 열리기를 밤새워 기다리려고 결석도 불사할 정도로 만화책집착은 상상이상이었다.

반아이들이 이사실을 아는 건 다음날 점심 먹고 쉴 때였다. 장기원이 이병규의 만화책을 빼앗았다.

“장난하지 말고 빨리 주란께.”

“오메오메, 사내새끼가 뭔 이런 만화를 좋아하까잉, 완전 가시나들 만화그만.”

“니가 뭔 상관이어, 빨리 줘.”

“지가 가시나맨치로 생겼은께 이런 만화만 본 갑써.”

“염병 그만하고 빨리 주란께.”

“맨입으로는 못 주겄는디? 어디 한번 TV유치원체조를 해봐, 그라믄 주께.”

이병규가 보았던 만화책은 남자주인공을 여자처럼 그린 순정만화였다. 장기원은 돌려달라고 사정하는 이병규를 조롱했다. TV유치원체조는 KBS2‘TV유치원 하나 둘 셋’ 프로그램이 며칠 전 첫 방영되면서 인기 있었다. 이병규가 만화책을 돌려받겠다는 절실함에 부득이 체조를 하였다. 예쁘장하게 생기고 평소 행동이 여성스러워 여자아이처럼 했다. 주위에 있던 반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장기원이 이병규를 흉내 내자, 반아이들 몇 명이 따라 하며 왁자지껄했다. 창피해서 고개를 떨군 이병규가 광분한 것은 장기원의 다음 행동 때문이었다.

“아그들아, 이 시끼 가시나 같지 않냐?”

“긍께, 쪼까 수상한디?”

“옴마 그라믄, 우리가 가시나하고 한 반이었던 거여?”

“아야, 저 시끼 팔 좀 잡아봐라잉.”

“잡어, 꽉 잡어.”

“놔, 놔, 씨발 놈들아 노란께. 이 개새끼들아 노라고, 이 개쌍노무새끼들아.”

장기원이 이병규의 성정체성을 확인하자며 아이들을 선동하였다. 이병규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에 빠졌다.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발을 차고 몸을 비틀어 방어했지만, 여러 명의 힘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죽을힘을 다한 발악에도 점점 벗겨지는 바지에 눈물을 흘렸다.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하려는 순간, 문승협과 김부일이 달려들어 아이들을 뜯어내 말렸다. 노병돈이 바지를 올려주며 이병규를 추슬렀다. 운동장에서 턱걸이 연습을 하던 문승협과 노병돈, 김부일이 때마침 교실로 들어오던 참이었다. 엉덩이와 성기가 반쯤 노출될 즈음 중단시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병규가 성적수치심에 부르르 떨었다.

“이 미친놈들아, 뭐 하는 짓이야?”

“아따 그냥 장난친 거여.”

“장난? 너희들 눈에는 이게 장난으로 보이냐?”

“야 문승협, 니가 뭔디 참견이어?”

“아야, 느그들 승협이가 말한께 으째 시피 뵈냐? 이 씨발 확 처발라버릴까 부다 그냥.”

“병규야, 괜찮니?”

“…….”

“누가 이런 것이어, 누구여?”

“아따 부일아, 친구들끼리 장남 좀 친 거 같고 그라냐?”

“니 일루 와, 내가 니 바지 벗겨불란께.”

“야 장기원, 이 씨발놈아. 니 왜 나한테 지랄이어, 왜 나한테 이러냐고?”

“미 미안하다 병규야, 내가 장난이 좀 심했어, 미안해.”

“개새끼야, 니가 이런 것이 어디 한두 번이어? 까딱하믄 혀 내밀어 내 얼굴에 침 묻히고, 까딱하믄 내 거시기를 만질라 하고, 내가 니 애인이어? 니 애인이어도 이렇게는 안 하겄다, 이 쌍노무새끼야.”

“아따 미안하단께, 인자 안 그러께, 진짜로 미안하다.”

“이 씨발, 니 호모냐? 니 호모 맞제?”

“아 아니어, 친한께 장난친 거여. 병규야, 나랑 잠깐 나가서 이야기 좀 하자.”

장기원이 주위눈치를 보며 황급히 이병규를 데려나갔다. 노병돈과 사건이 불과 엊그제인데 사태가 더 커지면 곤란하였다. 어떻게든 이병규를 달래서 빨리 수습하고 싶었다. 이병규일까지 문제 될 경우, 반아이들에게 사고뭉치로 낙인찍혀 따돌림당하고 감당키 힘든 비난을 받을까 노심초사했다. 한바탕 소란이 있었음에도, 장난과 재미를 이유로 장기원에게 동조하던 아이들이 생각나는 데로 입을 열었다.

“아야, 이병규가 저렇게 욕을 잘했었냐?”

“긍께, 가시나같이 굴길래 순한 줄로만 알았드만.”

“난 이병규가 TV유치원체조를 안 것이 더 신기하다야.”

“야, 너희들도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병규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니?”

“이 시끼들아, 느그도 다 공범이어.”

“아따 너무 뭐라 그러지 마라, 장기원이가 장난치길래 우린 그냥 따라 한 것뿐이어.”

“그란께 말이어, 장기원 저 시끼가 장난을 해갖고는 그냥, 괜한 우리가 욕먹그만잉.”

“맞어, 장기원이가 나쁜 놈이제.”

그 아이들은 문승협과 김부일의 지적에 움찔했을 뿐,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변명하기에 급급하였다.

장기원과 이병규는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교실로 돌아왔다. 둘의 표정이 나갈 때와 다르게 의외로 평온했다. 오후수업과 쉬는 시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누가 봐도 필요이상으로 친근하였다. 반아이들은 그렇게 잘 해결된 것으로 생각했다. 문승협은 반아이들에게 보여주려는 장기원의 꼼수로 의심하였다.

일과수업이 끝나고 저녁식사시간이 되었다. 이병규가 식사를 한 뒤 문승협에게 이야기 좀 하자며 운동장화단 옆 계단으로 데려갔다.

“승협아, 내가 다 들었어. 지난번 토요일에 교실서 니랑 병돈이랑 야그 한 거.”

“네가 그 염탐꾼 새였구나?”

“새?”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잖아, 그때 병돈이가 네 인기척에 엄청 놀랐어.”

“나 실은 며칠간 느그 둘을 계속 지켜봤어, 느그들이 어뜨크롬 한가 볼라고.”

“그래서?”

“니가 병돈이한테 한 말 중에, 가슴에 와닿는 말이 있드라. 니 잘못이 아니고 잠깐이 반복된다고, 상상만 하지 말고 용기 내 보라고. 내가 왜 만화를 좋아한지 아냐?”

“글쎄.”

“만화에서는 괴롭힘 당하믄 꼭 누군가가 도와준디, 현실은 전혀 딴판인께.”

“그렇구나.”

“병돈이가 그러고 나서, 내가 병돈이를 만나 물어봤어, 그렇게 한께 어떻드냐고. 니 말대로 한번 용기내기가 거시기하제, 막상 해본께 아무것도 아니라드라.”

“그래서 오늘 점심때 장기원한테 덤빈 거야?”

“잉, 나한텐 상상도 못 할 만화 같은 일이 벌어진 거제”

이병규에게 만화가 있었다면 문승협에게는 음악이 있었다. 둘에게 만화와 음악은 영화와 드라마처럼 살지 못한 삶의 대리만족이고, 삶을 위로하며 어루만져주는 매개체였다.

이병규는 스스로 두려움을 극복하기 어려웠으나, 노병돈과 문승협에게서 희망을 얻었다고 했다. 낮에 장기원에게 이끌려나갔을 때, 그동안 느꼈던 치욕과 굴욕을 다 말하였고,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문승협은 예전에 시립도서관에서 장기원에게 추행당하며 괴로워한 이병규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서울로 전학 간 방송부친구 김진철이 떠올랐다. 이병규처럼 행동과 말투가 여성스러웠다. 국민학교 때 남자아이들보다 여자아이들과 더 친하였다. 여자 아니냐는 장난석인 의심과 선입관이 따라다녀 힘들어했었다.

이병규가 망설이다 장기원에게 성추행 당한 계기를 털어놓았다. 장기원이 시험공부할 겸 해서 이병규집에 놀러 왔고, 밤이 늦어져 함께 잠자게 되었다. 깊이 잠든 이병규입술을 덮치더니 혀를 들이밀었다. 이병규는 잠결에 꿈인 줄로 알았는데 실제상황이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치욕스러워 잠든 척하였다. 곧이어 사타구니에 장기원손이 들어와 잠투정하듯 뒤척이며 밀어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러고 난 후 장기원의 자위행위였다. 그때 바로 응징하지 못해 후회스럽다며, 장기원을 호모게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문승협이 부르르 떨며 우는 이병규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뭐여, 니도 장기원이멩키로 나를 물로 보냐?”

“응 맞아, 세상의 모든 물질은 물로 되어있거든. 하지만, 난 장기원이가 아니야.”

“연설하네.”

“숨기고 싶은 이야기일 텐데, 왜 나한테 말한 거야?”

“니한테 털어놓으믄 잊혀질 거 같아서.”

“그래, 그럼 잊어. 그리고, 너의 용기를 칭찬해.”

“고맙다, 승협아.”

“야, 근데 궁금한 게 있어, 호모하고 게이는 무슨 뜻이야? 나는 처음 들어본다.”

“뭐야, 처음 들었다고? 니도 무자게 순진하다잉.”

“누구든 관심이 없으면 모를 수도 있는 거지, 하필 거기다가 순진을 붙이냐?”

“남자끼리 거시기 한 거여, 거시기.”

“거시기? 아, 거시기.”

“하하하, 그래 거시기.”

“네 마음에 상처가 컸는데, 왜 장기원을 용서한 거야?”

“호기심에 장난쳤다믄서, 무릎 꿇고 사과했어.”

“참나, 걔는 무릎도 잘 꿇는다. 하긴, 용서를 바라면 열 번이라도 꿇어야지.”

“지 마음 편할라고 무릎 꿇었는지는 몰라도, 나도 내 마음이 편하드라.”

“그래, 네 마음이 편하면 됐다.”

문승협은 도대체 장난이 이유가 되며 용서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후련해 보이는 이병규와 교실로 들어갔다. 장기원의 사과가 진심인지 예의주시하였다.

이튿날 장기원이 무슨 연유에서인지 문승협을 찾아가 일깨워줘서 고맙다고 했다. 잘못한 일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였다. 받아줄 때까지 사과할 생각이었다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재발방지약속을 덧붙였다.

“기원아, 병돈이랑 병규한테도 이렇게 사과했니?”

“잉, 그동안 잘못한 거 하나하나 야그하믄서 사과했어,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크다야.”

“그래 잘했다, 나한테도 말해 줘서 고맙고.”

“아니어, 나는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지 몰랐다야, 이것이 다 니 덕분이여.”

“우리 아직 어린 청소년이잖아,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는 거지 뭐.”

“이해해 줘서 고맙다잉.”

“그래, 같은 잘못을 두 번은 하지 말자.”

노병돈과 이병규의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와 해결되었다. 2학년 4반은 예전보다 활기찼다. (계속)


keyword
이전 03화단테의 별 – 2권 2부 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