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71)
드디어 전기대학 입학원서마감날 아침이 밝았다. 문승협과 천영기는 친구들에게 도움 될까 싶어 쫓아다녔다. 다들 마지막순간까지 어느 학과에 지원할지 망설였다. 거듭 고민 끝에 원서를 내고 큰 박정진집으로 갔다.
박정진엄마가 고기를 구워 저녁상을 차렸다.
“다들 고생했다, 많이 먹어라.”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아들하고 상인이는 단국대고, 봉수랑 작은 정진이는?”
“최봉수는 동국대 썼는데, 작은 박정진은 모르겠어요.”
“작박은 서강대에 낸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 시끼는 우리한테도 자꾸 숨기려 하더라?”
“걔들은 왜 같이 안 왔어?”
“이따 신촌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엄마, 나 전기대학 떨어지면 어쩌지?”
“뭘 어째, 후기대학에 가.”
“후기대학도 떨어지면?”
“그럼 전문대 가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전문대도 안되면?”
“남자가 대학 간다고 칼을 뺐으면 아무 대학이라도 가.”
“실력이 안 돼서 떨어질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고졸로 살든가 재수하든가 해.”
“역시, 우리 엄마가 최고야.”
“후기대학하고 전문대는 언제 원서접수야?”
“후기는 1월이고, 전문대는 2월.”
“전문대는 다시 시험 쳐야 할걸?”
“맞아. 국영수, 국사, 국민윤리 해서 250점이 만점.”
“너 전문대 가려고 자세히도 알아봤구나?”
“오늘 원서 냈구만, 무슨 그런 악담을 하냐?”
“야, TV 틀어봐, 경쟁률이 어떤지나 한번 보게.”
방송사들이 대학입학원서접수일부터 입시현황을 수시보도하였다. 마감일 오후 6시에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각 대학학과별 지원실태를 특집으로 다뤘다. 문승협은 연세대상경대학의 예상합격점수가 높아 걱정됐다. TV를 보며 과연 공정한 경쟁인지 의문이 들었다.
학력고사를 치르고 대학을 지원하는 ‘선시험 후지원’ 제도에서 일단 합격이 목표였다. 정해진 원서접수기간에 커트라인과 경쟁률 정보가 핵심이었다. 보다 안전한 대학학과에 지원하려 심사숙고했다. 치열한 입시과정에 온 가족이 동참하였다. 돈을 주고 구한 사람을 대신 줄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대학별로 흩어져 살피며 연락을 주고받았다. 학교내외 공중전화박스에 줄이 늘어섰음은 물론, 무전기를 동원한 가족도 등장했다. 동태를 파악한 뒤 눈치껏 지원학과를 변경하였다. 마감이 임박해 지원자수가 적은 학과에 뜀박질은 예사였다. 마감시간이 넘어서 원서를 접수처 안에 밀어 넣거나, 닫힌 문과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가는 등 전쟁이 따로 없었다. 어느 대학을 가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직장 수준과 인생이 달라지기에 신분상승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점수가 학생인생을 좌우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물론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고득점자는 예외였다. 곳곳에서 기상천외한 장면이 연출된 결과 또한 놀라웠다. 눈치작전으로 최고인기대학학과정원이 미달된 사태가 벌어졌다. 실력이전에 운이 크게 작용한 웃지 못할 일이었다. 과열된 입시경쟁과 여러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선지원 후시험’으로 바꾸자며 비판이 들끓었지만,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대학입학운명이 결정되는 벼랑 끝 승부가 변함없을 것이란 우려도 상존했다.
“무슨 대학입학원서 땜시, 온 나라가 저렇게 난리 다냐, 저것이 정상이어?”
“와, 가관이다 가관이야.”
“너무 뭐라 그러지 마, 우리도 별반 다를 것 없잖아?”
“하긴, 우리가 저 사람들을 욕하면 안 되지.”
다들 동병상련으로 TV를 지켜봤다. 목이탄 문승협이 보리차인 줄 마셨다가 맥주여서 미간을 찡그렸다. 입시보도가 끝나자 삼성반도체통신소식이 이어졌다.
64KB D램 개발 자축연이 장충동 신라호텔다이너스티홀에서 열렸다.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상공부장관, 과학기술처장관, 전국경제인연합회장,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삼성그룹계열사사장 등 각계인사 500여 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이병철회장이 세계최강반도체기업으로 향해가는 첫 신호탄을 자축하며 인사말을 하였다. ‘이번 64KB D램 개발 성공은 세계첨단기술로 부가가치창출에 기대가 크며, 앞으로 지속적인 기술축적을 통해 256K D램 개발을 실현하겠습니다’. 화면 한쪽에 삼성가 후계자가 비쳤다.
“와씨, 이건희가 부럽다.”
“아들, 왜 이건희가 부러워?”
“그렇잖아, 태어나보니까 재벌집,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거 다할 수 있고.”
“그렇다고 행복할까?”
“승협이 니가 고따구로 말하믄 곤란하제, 니는 이미 재벌집 손자라 이거여?”
“야 씨,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와, 그런 뜻이 아니잖아.”
큰 박정진대답에 무심코 한 말을 천영기가 꼬투리 잡아 비꼬았다. 문승협은 밝혀지길 원치 않는 태선화학과 관계가 노출될까 당황했다.
“승협이가 재벌집 손자니?”
“아 아니에요, 영기가 헛소리한 거예요.”
“어무니, 승협이가 태선화학 박동후회장 손자여라우.”
“아니에요, 그냥 친척이에요 친척, 먼 친척.”
“무슨 친척?”
“아, 저희 할머니오빠세요.”
“그럼 손자 맞네, 먼 친척이 아니라 엄청 가깝구만.”
“너는 괜한 말을 해 갖고 사람을 곤란하게 하냐?”
“호호, 승협이는 그게 그렇게 쑥스러워?”
“긍께 말이요, 나 같으믄 막 자랑하고 다니겄그만.”
“혹시, 유한양행이라는 회사 알아?”
박정진엄마가 어색해하는 문승협을 보며 ‘유한양행창업주 유일한박사’ 이야기를 꺼냈다.
유일한박사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독립운동가·교육자·사회사업가다. 대한민국국민훈장 모란장과 무궁화장을 받은 모범기업인으로, 한국에서 노블레스오블리주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대한제국시기인 유년시절에 미국유학을 떠나, 미시간대학교 경영학학사·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영학석사·스탠퍼드로스쿨 법학박사를 이수하였다. 일제치하에 귀국해서 제약회사 유한양행을 창립했다. 직접 차를 몰고 홍보하며, 전국 각처에 싼값의 의약품과 생활용품을 보급하려 힘썼다. 중국·대만·일본 등 해외시장개척도 큰 성과를 냈다.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에 참여해 독립운동자금조달을 지원하고, 재미한족연합위원회집행부위원으로 미주한인의 대일전선동참과 미군후원목적의 ‘맹호군’ 창설을 주도하는 등, 재미한인사회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광복 후에도 기업을 운영하며 윤리경영·모범납세·국익우선·정경유착사절을 근본으로 삼았다. 대다수 대한민국기업인들이 전쟁피해기업을 재건하면서, 정경유착·가족경영·노동탄압·탈세·부정축재의 비판에 자유롭지 못했으나, 유일하게 인정받은 위인이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정치자금미납보복조치로 수없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세무조사원이 관계기관에 생산약품성분검사를 의뢰해 보니 함량이 정확하였다. 제조공정에서 20% 손실이 난다면 원재료 125%를 투입해 만들 정도였다. ‘아무리 털어도 먼지조차 안 나는 경우가 있구나’라며 감탄한 일화가 유명했다. 결국 탈세내역을 발견하지 못해 그대로 보고하였고, 박정희대통령이 머쓱해져서 ‘훈장을 받아야 마땅하다’며 되려 동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또한 산업인재양성을 위해 ‘유한공업고등학교와 유한대학교’를 설립하였다. 보건장학회와 연세대를 비롯한 각종 공익재단에 기부하며 사회공헌에 앞장섰다. 연세대학교명예법학박사를 받으면서 유일한박사로 불렸다. 대한민국기업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최초 후생시설을 세워 회사임직원복지를 직접 챙겼다. 최초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하고, 전사원주주제를 실시한다며 본인 주식 52%를 사원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말년에는 최초 전문경영인제도를 시행하고, 회사경영권을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일임했다. 전문경영인도 외부영입이 아닌 내부승진원칙이었다. 스스로 가족세습경영을 원천차단하려, 혈육은 유한양행과 계열사입사를 금지시켰다. 세상을 떠나면서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였다.
박정진엄마가 말미에 기업가의 정신과 인간성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문승협은 태선화학과 결부될 때 느꼈던 거부감의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책임지는 도덕적인 회사가 왜 중요한지, 가족 같은 회사의 의미가 무언지 처음으로 이해되었다.
저녁식사 후, 문승협과 천영기는 친구들을 따라 서울밤문화체험에 나섰다. 어제 내린 함박눈이 거리곳곳에 쌓여있었다. 천영기가 나이트클럽에 호기심을 보였다. 박상인이 입장하기 이른 시간이라며 소주집을 찾았다. 신촌유흥가는 목포와 전혀 다른 별천지였다. 추운 겨울 월요일저녁인데도 사람들로 북적댔다. 며칠 전 낮에 왔을 때와 딴판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려는 듯, 큰길과 작은 골목을 가리지 않고 마이클잭슨노래로 시끌벅적하였다. 친구들과 연세대 쪽으로 걷는데, 젊은 남녀들이 레코드가게에 몰렸다. 전 세계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등극한 ‘Thriller’ 뮤직비디오가 틀어졌다. 듣는 음악에 더해 보는 음악개념의 막을 열었다는 찬사가 어울렸다. 옆가게는 연초에 문워크를 선보였던 ‘Billie Jean’, 또 그 옆가게는 ‘Beat It’, 말 그대로 마이클잭슨특집이었다. 마이클잭슨이 올해 2월 1983그래미상시상식에 불참하여 주목받았던 터라 그럴만했다. 더구나 내년 2월 초 1984그래미상시상식을 앞두고 투표에 들어간 날이었다. ‘Thriller’는 올해의 앨범상, 최우수 남성팝보컬퍼포먼스상, 올해의 프로듀서비클래식상, 최우수 비디오앨범상. ‘Beat It’은 올해의 레코드상, 최우수 남성락보컬퍼포먼스상. ‘Billie Jean’은 최우수 남성R&B보컬퍼포먼스상, 최우수 R&B음악상 등 그래미상 8개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마이클잭슨 따라 하기 열풍에 온 세상이 떠들썩하였다.
앞장서 걷던 박상인이 비교적 손님이 적은 소주집으로 들어갔다. 주문한 안주가 나오는 동안, 큰 박정진이 음악지식을 뽐냈다. 마이클잭슨노래는 벌써 한물갔다며 요즘 트렌드를 설명했다.
영미권대중음악의 최고격변기다. 펑크록‘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에 영향받은 뉴웨이브음악이 인기며, 신시사이저를 주로 사용한 ‘유리스믹스의 Sweet Dreams’ 같은 신스팝의 태동기다. 1980년 선풍적인 디스코가 몰락하고, 1981년과 1982년 과도기 이후 음악적 변화가 심한 때다. 1970년대 영향을 벗어나기 시작한 해로 정의하면서, 올해 인기탑으로 ‘마돈나, 메탈리카, Wham’을 손꼽았다.
문승협은 목포에서 느낄 수 없는 유행이라 선뜻 믿기지 않았지만, 큰 박정진의 해박한 팝음악정보에 토 달지 못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다른 친구들은 지루해하며 평론대신 소주와 안주로 대신하였다. 작은 박정진과 최봉수가 뒤늦게 합류했다.
소주집서 한 시간쯤 보낸 뒤, 나이트클럽피크타임이라는 10시에 맞춰 신촌로터리로 이동하였다. 천영기가 지난번 목포에서 디스코텍에 입장하지 못했다며 매우 들떴다. 문승협은 서울 신문물참관에 의의를 뒀다.
신촌은 큰 대학이 세 개나 몰려있었다. 장안에서 음악을 좋아하고 논다 하는 대학생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청년문화를 이끄는 대학문화중심지였기에 언제나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건물 5층에 ‘우산속’ 나이트클럽이 있었다. 365일 중 현충일 단 하루만 문을 닫았고, 젊은이들이 밤을 꼴딱 새우며 노는 곳이었다. 클럽서 새어 나온 음악에 건물이 흔들렸다. 문승협은 친구들과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에 섰다. 대입원서마감날이라 또래들이 많을 것으로 짐작됐으나, 대부분 성숙한 차림이었다. 자세히 보니 성인처럼 꾸민 고등학생들이었다. 남자들은 복장뿐 아니라 머리스타일에 꽤나 신경 썼다. 여자들은 화려하게 화장하였다. 잔뜩 멋을 부려 어른스럽게 치장했지만, 앳된 티가 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간혹 롱코트 속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있었다. 뭇남성들 시선을 즐기는듯하였다. 천영기가 무척 섹시해 보인다며 눈을 떼지 못했다. 잘생기고 예쁜 남녀학생들이 서로 몰래 훔쳐보거나 눈빛을 교환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웨이터가 손님을 들여보내려 클럽문을 여닫을 때마다 음량크기가 천양지차였다. 대학스쿨밴드인지 무명언더그라운드그룹사운드인지 연주가 끝나고, DJ멘트와 함께 ‘마이클잭슨의 Billie Jean’이 들렸다. 이어서 ‘신디로퍼의 Girls Just Want To Have Fun, 유리드믹스의 Sweet Dream’이 울렸다. 문승협은 문화예술이 전국에 동시전파된다고 믿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TheGoGo’s의 We Got The Beat’이 나오자, 서울이 유행을 선도한다는 걸 알았다.
차례가 되어 웨이터가 안내하였다. 친구들과 클럽으로 들어선 순간, 폭발할듯한 음량에 몸이 튕겨나가는 것 같았다. 클럽전체를 휘감고 도는 조명불빛에 영혼이 날뛰었다. 목포에서 봤던 디스코텍과 비교할 수 없는 휘황찬란한 풍경이 펼쳐졌다. 흥겨운 음악과 현란한 조명 속 젊은 남녀들이 무아지경에 빠져 뒤죽박죽이었다. 음악과 조명을 제거하면, 춤추는 모두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묘하게 어우러졌다. 규모와 인원, 음악과 조명, 모든 면에서 상상을 초월했다.
웨이터가 목청을 높여 몇 명이냐고 물었다. 박상인이 손가락 6개를 펴 보였다. 웨이터들끼리 수신호를 주고받더니 문승협일행을 이끌었다. 손님들을 비집으며 스테이지좌측구석자리로 데려갔다. 4인 테이블 두 개를 붙여 자리를 마련하고, 빨간색원통 안 초에 불을 붙였다. 박상인에게 명함을 건네면서 귀엣말을 주고받았다. 웨이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자, 이번엔 박상인이 큰소리로 친구들에게 외쳤다. ‘여섯 명이라 두 테이블을 차지해서 기본 두 세트를 주문했어’. 쿵짝쿵짝 음악소리에 어렴풋이 들렸다.
웨이터들이 좌석안배하랴 주문받으랴 엄청 바빠 보였으나, 술과 안주를 금방 가져왔다. 한 테이블 4인 기본세트가 맥주 5병에 과일과 마른안주 각 한 접시였다. 맥주병을 펑펑 소리 내며 순식간에 따는 것이 신기하였다. 박상인과 최봉수가 친구들 잔에 맥주를 채웠다. 작은 박정진이 넘치는 맥주거품을 후룩 마셨다. 우정을 위해 건배하자고 외쳤다. 다들 기꺼이 축배를 들었다. 문승협은 인생 첫 나이트클럽입장을 자축하며 맥주잔에 입만 대고 내려놓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이트클럽을 둘러보았다. 이곳저곳 사람들이 너무 많아 부대꼈다. 바글바글 하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유은정을 통해 알게 된 노래 Yazoo의 Don't Go가 나왔다. 박상인이 스테이지에 나가 놀자며 선동하였다. 모두 따라나섰지만, 문승협은 자리를 지키며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한참 살펴보다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였다. 군무처럼 똑같은 동작으로 율동하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아마도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춤으로 보였다. ‘BonnieTyler의 Holding Out For A Hero’를 끝으로 빠른 음악이 끝났다.
블루스타임이라는 DJ멘트와 함께 ‘DeepPurple의 Soldier Of Fortune’이 나오자, 친구들이 자리로 돌아왔다. 스테이지에서 여자손을 잡는 남자들이 눈에 띄었다. 작은 박정진설명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남자손길에 자연스레 안기면 연인, 거절하거나 뿌리치면 헌팅이라고 했다. 작년 무용연구소에서 부루스를 추듯 장난스레 끌어안던 정난희가 생각났다. 금세 센티해져 맥주를 연신 들이켰다. 남녀가 껴안고 블루스를 추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였다.
세 번째 곡 ‘LionelRichie&DianaRoss의 Endless Love’가 시작되면서 무대 위 사람들이 분주했다. 앞쪽 테이블손님들이 무대를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놀랍게도 그룹사운드‘송골매’였다. 클럽에 입장하려 줄 섰을 때 홍보벽보가 떠올랐다. 11시부터 출연한다는 포스터를 읽으면서 그저 호객행위로만 알았다. TV에서 봤던 송골매공연을 라이브로 직관하다니 흥분됐다. 작년 고2 때 학교그룹사운드를 하며 선망하던 그룹이었다. 윙스멤버들과 송골매노래를 연습하던 지난날을 생각하니 뭉클하였다. 중학교 때부터 기타에 빠져 살고, 그룹사운드멤버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큰 박정진도 감격스러워했다. 이윽고 퍼스트기타 리프로 시작하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연주되었다. 우산속나이트클럽에 모든 손님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흥분한 일부는 스테이지로 우르르 나갔다.
송골매는 ‘TBC가요제, 배철수의 항공대그룹 활주로’와 ‘해변가요제, 구창모의 홍익대그룹 블랙테트라’를 합친 록밴드였다. 두 개의 캠퍼스밴드다 보니 음색이 달랐으나, 세기적 밴드 ‘비틀스’에 ‘폴메카트니와 존레넌’처럼 각기 매력이 있었다. 다양한 분위기로 음반판매대기록을 남긴 그룹 ‘이글스’에 비견되곤 하였다. ‘글렌프레이와 돈헨리’ 외에도 전 멤버들이 보컬에 참여한 것과 유사했다. 깔끔 세련된 구창모톤에 열광하는가 하면, 투박 토속적 배철수창법에도 환호하였다. 여성팬들은 예쁘장한 구창모와 잘생긴 ‘이봉환’을 좋아했다. 맑은 미성의 고음과 키보드를 치는 현란한 손놀림이 더할 나위 없었다. 야성적 터프해 보이는 배철수와 뛰어난 기타 실력 ‘김정선’은 남성팬들에게 인기였다.
인트로곡을 마치고, 짧은 인사말에 이어 ‘이 빠진 동그라미,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를 열창하였다. 나이트클럽이 열광의 도가니였다. ‘모두 다 사랑하리, 빗물’을 노래할 때는 용기 낸 두 커플만 블루스를 췄지만, 열기는 오히려 고조되었다. ‘처음 본 순간, 산꼭대기 올라가, 세상만사, 구름과 나’로 재차 흥을 돋웠다. ‘아가에게’를 마지막곡으로 무대에서 내려갔다. 한 시간가량 공연에 모두가 송골매열성팬이었다.
DJ가 분위기를 띄우려고 신나는 팝댄스가요를 틀었다. ‘SteveMillerBand의 Abracadabra, F.R.David의 Pick Up The Phone, TheWeatherGirls의 It's Raining Men, ELO의 Don't Bring Me Down’을 연속으로 달렸다. 스테이지가 더욱 뜨거워졌다. 열정적으로 흔들어댄 탓에 많은 사람들이 땀으로 흥건했다. 다시 블루스곡이 이어지자, 썰물처럼 빠져나와 자리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이틈을 노리는 남자헌팅족들이 여기저기 활보하였다. 춤추는 동안 눈여겨봤던 여자들에게 접근했다. 성공한 남자들은 개별 또는 일행들과 합석하였다. 여자나 남자나 서로 꼬시기 눈치가 치열했다. 웨이터에게 이끌려서 어디론가 따라가는 여자들이 있었다. 웨이터손을 뿌리치려 안간힘을 쓰는 여자도 보였다. 문승협이 씁쓸한 광경에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니, 최봉수가 부킹이라고 알려줬다. 모든 것이 남녀 간 유혹하려는 행위였다. 서울친구들도 관심 없었으나, 천영기만 바쁘게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신디로퍼의 Time after Time’이 나온 가운데, 천영기가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향하였다. 자연스레 문승협과 친구들 시선이 따라갔다. 여자 4명이 놀러 온 테이블이었다. 한 여자손목을 잡고 스테이지를 가리켰다. 블루스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하였다. 물러서지 않고 옆자리에 앉았다.
‘JoeCocker&JenniferWarnes의 Up Where We Belong’으로 음악이 바뀌었다. 문승협이 돌연 나이트클럽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람들 시선을 피할만한 장소를 다급히 찾았다. 건물모퉁이를 돌면서 눈물을 흘렸다. 인적 없는 곳에 주저앉아 소리 죽여 흐느꼈다.
Up Where We Belong은 지난 3월 정난희생일 때 함께 봤던 영화‘사관과 신사’OST였다. 노래를 듣자마자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했다. 감정을 폭발시킬 도화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친구들 앞에서 울 순 없는지라 황급히 밖으로 나온 것이다.
당시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영화를 보는 중에 정난희손을 슬며시 잡으며 느꼈던 떨림. 영화상영 내내 정난희를 훔쳐보다 들었던 얼굴 닳아지겠다는 핀잔. 집 근처까지 동행을 허락해 줘서 감격한 순간. 헤어지기 전에 정난희가 한 말도 떠올랐다.
‘오빠가 아무 말없이 지켜주려 노력했다는 거 잘 알아. 그래서 고맙고, 나도 많이 노력했고 또 변했어. 무용하다가 뜬금없이 떠오르는 오빠얼굴에 힘들었고, 오빠가 생각나고 보고 싶어서 무용이 싫어지기도 했어. 하지만 나 스스로 통제하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안되잖아.’
아까 연거푸 마신 맥주에 취기가 돌았다. 하필 주변카페에서 ‘돈맥클린의 Vincent’가 흘러나왔다. 급기야 폭풍눈물을 쏟았다. 레스토랑서 ‘고흐와 별이 빛나는 밤’을 이야기 나눈 추억이 또렷하였다.
‘난희야, 너는 그 그림을 보면 어떤 감정이 들어?’
‘생각이 아닌 감정?’
‘응, 난 그 그림을 보면 슬픔을 느껴.’
‘고흐의 처절한 일생 때문인가?’
‘고흐가 죽은 뒤, 동생 테오는 별을 봤을까?’
‘아마도 그랬겠지, 사랑하는 형의 별을 찾으면서 슬픈 마음을 달랬을 거야.’
‘고흐는 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봤겠지.’
‘별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을 수도 있잖아.’
‘설마, 별과 인간의 상호작용?’
‘너는 별을 어떻게 생각해?’
‘별은 늘 그대로인데, 매번 달라지는 건 인간이야.’
‘별이 인간에게 꿈과 상상의 나래를 주어서 그런가?’
‘항상 같은 별이 분명한데, 바라보는 인간의 생각에 따라 다른 별이 된다고.’
‘별은 무슨 낙으로 살까?’
‘에이, 별은 그냥 말없이 빛날 뿐이야.’
‘우리가 별을 보듯, 별도 인간을 바라볼 수 있잖아.’
‘말도 안 돼.’
‘인간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보면서 힘과 용기를 얻어 더 빛을 낼지도 모르지.’
‘풋, 오빠, 상상력이 도가 지나쳤다.’
회상도 잠시, 술 취해 비틀거리며 노상방뇨할 곳을 찾는 남자가 나타났다. 세상은 더 이상 슬퍼할 겨를을 주지 않았다. 문승협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 끝나가는 노래를 음미했다. ‘Starry starry night~’을 허밍 하며 걸었다. 갑자기 정난희가 떠나고 없는 현실에 외로움이 몰려왔다. 가슴이 조여오며 심장이 아팠다. 잠시 벽을 짚고 마음을 추슬렀다. 기다리는 친구들 생각에 눈가를 정리하며 서둘러 올라갔다.
나이트클럽은 언더그라운드그룹사운드가 공연 중이었다. 큰 박정진이 어디 갔다 왔냐고 묻자, 문승협은 화장실을 핑계 삼았다. 다른 친구들은 스테이지가운데에 둘러서서 신나게 춤추고 있었다. 큰 박정진도 문승협처럼 춤추기에 흥미 없었다. 친구들 부추김에 한번 스테이지에 나갔을 뿐 줄곧 자리에서 관찰만 하였다.
어느덧 새벽 3시가 넘어갔다. 춤추는 사람이 서너 명에 불과하고, 부킹에 성공한 몇몇 남녀들이 도란도란 어울렸다. 웨이터들이 분주히 돌아다녔다. 문승협테이블도 찾아와 곧 영업이 끝난다며 계산을 부탁했다. 박상인이 어제 친구들과 모은 돈으로 지불하였다. 야간유흥업소나 백화점에서 영업종료를 알리는 시그널뮤직이 울렸다. ‘빠빠빠 빠빠빠 빠빠빠빠빠빠빠 빠빠빠빠 빠 빠빠빠~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피날레곡으로 ‘딕패밀리의 또 만나요’를 들으며 나이트클럽을 빠져나갔다.
“항상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니?”
“오늘은 일찍 끝난 거야, 보통새벽 4시까지 해.”
“목포촌놈들, 오늘 송골매도 보고 호강했다.”
“허허허, 서울이나 되니까 보는 거야.”
“어허, 목포에도 극장식나이트클럽에 가믄, 남진이랑 유명한 가수들 많이 나와.”
“짜식, 그거랑 같냐?”
서울친구들이 목포친구들을 무시했으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쌀쌀한 새벽날씨에 코끝이 시렸다. 오늘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알게 된 남녀들이 어디론가 바삐 움직였다. 여자를 꼬시지 못한 남자들은 아쉬움에 술집을 찾아 헤맸다. 박상인이 버스 다닐 때까지 한잔 더하자며 앞장섰다.
새벽식당에서도 남자끼리 여자끼리 온 손님들의 짝짓기가 계속되었다. 각자 술을 마시며 추파를 던졌다. 주로 선택권이 여자들에게 있었다. 맘에 드는 남자면 동석하여 술잔을 받았지만, 별로면 거들떠보지 않았다. 보통 싫은 티를 내면 남자들이 포기하였으나, 간혹 끈질기게 추근대서 실랑이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남자들은 대화보단 흑심을 품었다. 나이트클럽서 만나 같이 왔든 술집서 성사됐든 마찬가지였다. 여기선 간단히 하고 3차로 여관에 가서 편하게 한잔 더하자며 꼬셨다. 서울친구들은 으레 그러려니 못 본척한 반면, 문승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남자면상을 한 대 때려 주고 싶었다. 큰 박정진이 신경 끄라며 콧등을 찡그렸다. 뜬금없이 최근 활발히 활동하는 ‘들국화, 부활, 시나위, 백두산’을 들먹였다. 아직 유명하지 않아도 조만간 데뷔해서 성공할 거라고 했다. 특히 ‘이승철’이라는 후배가 노래를 엄청 잘한다며 친분을 자랑하였다. 기회 되면 소개해주겠다고도 했다. 문승협은 관심 가는 보컬이라 이름을 되뇌었다. 최근 대중들 입에 오르내린 그룹사운드이야기를 끝으로 술집을 나섰다.
신촌로터리에서 홍은동으로 가는 새벽 첫 버스에 올랐다. 문승협은 서울친구들을 따라 날밤 새운 신세계체험에 피곤이 몰려왔다. 친구들이 조느라 정신없었지만, 춤추기와 술을 자제한 큰 박정진은 그나마 맨 정신이었다. 버스에서 내릴 땐 술 취한 천영기를 부축하느라 진땀 뺐다. 모두 고양이걸음으로 큰 박정진집에 들어가 쥐 죽은 듯이 잤다.
박정진엄마가 점심 먹으라고 깨워서 겨우 일어났다. 대학입시면접을 하루 앞둬 조신히 보내기로 하였다. 저녁 무렵 종로에 있는 ‘조계사’를 갔다. 서울친구들이 다니는 절이었다. 박정진엄마명령을 받들어 대학합격기원연등을 달고, 한마음 한 뜻으로 간절히 빌었다. 천영기 때문에 이태원 가서 요즘 유행하는 벨트와 버클을 사고 홍은동으로 돌아왔다. 문승협과 천영기가 다음날 면접을 마친 후 바로 목포로 가야 했다. 서울친구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큰 박정진집으로 갔다. 생애 첫 면접을 앞둔 밤이라 쉽게 잠들지 못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