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이름을 한 남자에게
뉴스를 보다 보면 가끔, 집에서 독립하지 않은 청년 문제가 눈에 띕니다. 성인이 되고도 부모 집에서 생활하는 비독립청년. 이른바, '캥거루족'이 문제라는 것인데요. 저는 이런 뉴스를 보면 아주 뜨끔합니다. 제가 캐나다 시댁에서 하는 더부살이야말로 진정한 '문제(?)'라 할만하니까요. 저와 남편은 더는 청년도 아닌 데다 아이까지 딸렸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말 그대로 '시아버지 밥'을 얻어먹고 사는 '급식생활자'이다 보니 뉴스에 나올까 겁이 날만 하지요.
저와 남편, 아이까지 세 가족은 지난겨울, 오랜만에 시아버지 캥거루 주머니에서 나와 한국에 있는 친정으로 긴 휴가를 떠났습니다. 혹독한 추위로 칩거 생활을 해야 하는 캐나다의 긴 겨울을 피했고, 이제 만 두 살이 된 아이는 한국말도 배웠고요. 저는 생각만 해도 눈물 날 듯 그리운 '엄마 밥'을 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저를 마치 혹독하게 시집살이하다 도망온 딸 해 먹이듯 보살펴 주셨지요. 물론 "자기 애 이유식 한 번 안 만들어본 엄마는 너뿐"이라며 저를 놀리셨지만요.
그래도 저희가 캐나다로 돌아올 때는 제가 사지에 끌려가는 듯이 눈물로 작별을 고했습니다. 저를 시아버지 급식 먹는 '급식충'이라며 깐족대곤 하는 남동생은 웬일로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캐나다와 한국, 어디에 가면 "아, 집에 왔다!"하는 생각이 드냐고요. 이 질문을 오래 곱씹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그런지, 혹은 어느 한쪽이라도 그런 생각이 들긴 하는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캐나다 집에 돌아오니 시아버지가 페로기를 저녁 메뉴로 준비했습니다. 밀가루 피에 으깬 감자 따위를 넣고 오므려 만든 모습이 영락없이 만두나 송편을 닮았습니다. 살짝 구운 후 베이컨과 같이 버터에 볶고 소시지를 오븐에 구워 곁들인 후 사워크림과 함께 먹습니다. 예전에 제가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캐나다스러운 요리'를 만들어 주겠다며 해주신 이후, 집을 떠났다 돌아오면 꼭 해주시는 요리입니다. 페로기 저녁이 차려지고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잊고 있었던 '캐나다스러운' 작은 행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왔다'는 기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돌아왔다'는 기분이 든다고요. 우리가 맛있게 먹으면 행복해하는 시아버지의 모습이 또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친정 아빠는 "내가 영어만 잘하면 네 시아버지한테 편하게 사는 법을 알려줄 수 있는데 아쉽다"며 농담을 하곤 하지만요. 시아버지는 "아직 내가 몸을 움직여 뭔가 나눌 수 있다니 다행"이라며 기쁘다 합니다. 친정 아빠가 영어를 잘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더라도 좋겠습니다.
시아버지는 요리를 잘하는 만큼 아이도 잘 봅니다. 제 아이를 볼 때는 아주 귀중한 것을 대하듯 하고요. 집에 이따금 손님이 오면 무릎에 앉혀두고 자랑을 늘어놓곤 하지요. 옛날, 저를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저에게 "우리 강생이(강아지)" 하셨던 것처럼, 이분들이 "작은 아가야", "작은 호박", "귀여운 파이"하고 제 아이를 부르면 저까지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주 오래된 행복을 다시 만나는 기분입니다.
온 가족 세 끼와 두 번의 간식을 도맡고 있는 우리 시아버지. 이유식 하던 시기에는 이유식도 '급식'으로 주셨지요. 그래선지 아이는 '엄마', '아빠' 다음에는 '할아버지'를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발음이 어렵다 보니 '합삐'라고 하더군요. 아이가 "합삐, 합삐!"부르면, 할아버지는 너무나 기뻐하며 "Happy(행복)?" 합니다. "그게 아니고 당신을 부르는 거예요."하고 알려주면 더 기뻐합니다. "내가 '행복'이라고?"하고요. 저는 그 말에 몇 번이고 대답하고 싶어집니다.
맞아요, 당신이 행복이에요. 그게 당신이에요.
앞으로 함께할 시간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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