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초밥은 일본 거예요.
시부모님, 시동생, 우리 부부와 제 아이까지. 삼대가 사는 우리 집에는 아기가 둘 있습니다. 이제 두 살이 된 제 아이와, 마흔 살이 된 저 말입니다. 시부모님은 캐나다인이라 당연히 저를 한 번도 '새아기'라 부르신 적 없지만, 제가 왜 모를까요. 그분들이 저를 새로 생긴 딸처럼, 아기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을요.
캐나다에서도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볼까 하고 얼마 전부터 일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어느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녀왔지요. 면접관이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고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내기에 울며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시아버지가 이 일을 알고는 몹시 화를 냈습니다. "그런 곳에는 앞으로 20년 동안 가지 않을 거야!"라면서요. 제 귀에는 '20년이나 망하지 않고 잘 운영되라'는 덕담으로 들리긴 했지만, 시아버지의 분노만큼은 참 든든했습니다. '또 면접에 실패하면 일러야지!' 하면서요.
그런데 오늘,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다시 면접이 잡힌 것입니다. 그것도 제가 사는 도시 다운타운 한 가운데에 있는 곳인데요. 지하철 타고 가겠다 했더니 안 된답니다. 이유도 가지각색입니다. 차로는 금방인데 지하철은 오래 걸린다, 다운타운 역 근처는 우범지대다. 그러면서 시아버지가 나서서 본인과 함께 가자 합니다. 가는 차에서는 내내 긴장 풀라며 농담을 하고, 바로 건너편에 내려주고는 길 건널 때 여기랑 저기를 보라며 몇 번이나 당부합니다. 면접을 끝내고 나왔더니 문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하이파이브를 건넵니다.
새아기가 '아기'이듯이, 시아버지도 '아버지'인가 봅니다. 마흔이 된 아기를 새삼 '자라게 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시아버지의 응원이 아니었다면 면접에 또 도전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요. 늘 실패가 두려워 포기하곤 했던 저에게 '용기'를 주어 일으켜 세우고, 옆에서 함께하고,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손을 잡아주는 저 따뜻한 사랑이 놀랍도록 행복합니다. "아버지(Dad), 당신이 나를 용감하게 해줬어요."하고 고맙다고 하자, 시아버지 눈에도 행복이 가득 차는 것이 보입니다.
집에 돌아오자 시아버지의 너스레에 온 가족이 나와 하이파이브를 건네고 어깨를 토닥여줍니다. 면접을 보러 갔다 왔을 뿐인데, 이것을 '성공'으로 쳐주는 분위기입니다. 괜히 휩쓸려 저도 뿌듯한 기분이 듭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부딪혔으니 성공은 성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작은 성공을 한 걸음씩 쌓아가다가 어느 날 달려가기도 했던 어린 날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도 같습니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법을 배워왔을 남편이 새삼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시아버지가 건넨 식전주를 받아 들고 저녁을 기다리며 앉아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합니다. 큰 숙제를 끝낸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놓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의 급식 담당, 시아버지가 "오늘은 맛있는 거 먹자!"하면서 "오늘의 메뉴는 초밥"이라네요. "아버지, 초밥은 일본 거잖아요. 고향 음식은 아니에요."하고 말하고 싶지만, 제가 힘들어 보일 때는 더 메뉴선정에 신경쓰는 것을 알기에 그냥 웃습니다. 게다가 제 친정엄마도 제 남편이 한국에서 힘들어 보일 때는 피자를 시켜주시거든요. 고향 음식 먹고 힘내라고요.
어찌 됐든 밥 짓는 냄새만 맡아도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 시아버지의 시도도 '성공'입니다.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서로의 하루를 물었다가, 아이의 재롱에 웃었다 하면서 초밥을 나눠 먹었습니다. 초밥을 잘 들여다보면 시아버지가 누구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는지가 잘 보입니다. 날음식을 못 먹는 시어머니 것,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는 아이 거. 온 가족이 자기 몫을 쏙쏙 골라 먹으며 만족하는 모습에 늘 기분이 좋아집니다. 내 부모를 고를 수 없었듯 시부모님도 그러한데 남편을 고를 때쯤의 저는 얼마나 운이 좋았던 걸까요.
둥근 피자 판에 놓인 초밥을 보니 남 일 같지가 않아 조금 쓸쓸해지기도 했습니다.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덩그러니 놓인 듯한 것이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몸이 지쳐 마음도 지쳤겠지. 긴 하루였다. 포기하지 않았으니 됐다. 잘했다.'하고 스스로 어깨를 쓰다듬어 봅니다. 배우고 성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졌으니, 이제는 시간이 도와주리라. 그렇게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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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오늘 처음 한 일 : 노래를 스스로 지어서 부름. (물론 엉터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