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춘기 며느리에게는, 시아버지 잡채

그런데 이제 맛밤을 곁들인

by 세츠나

"설거지는 제가 하게 해주세요."


언제나처럼 시아버지가 차려주시는 저녁을 먹고 나서 처음 말했던 날이 생생합니다. 시아버지는 자신이 요리한 후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는 사람은 살다 처음이라며 온 가족들을 붙들고 자랑했지요. 그게 민망하고도 간지럽고도 이상했습니다. 저도 이제 마흔인 것은 미뤄두더라도 제가 '며느리'인데 말입니다.



소꿉놀이 같은 설거지를 하는 며느리가 여기 있어요


삼시세끼와 아이 이유식까지 시아버지가 도맡아주시는 캐나다 집. 식사 시간이 되어 식탁에 앉으면 꿈꾸는 기분이 되곤 합니다. 창밖이 잘 보이는 내 고정 자리에 앉아 가족들의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를 듣다가, 꺄르르 웃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좀 낯설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어릴 때 봤던 어느 영화 속에 들어온 것만 같습니다. 분명한 행복이 확실하지만요. 내 것이 아닌 듯한 기묘한 이질감도 분명해졌습니다. 집안에서 '가장 어린 여자'로서의 역할이 유전자 어딘가에 도사리다 이럴 때 불쑥 갈비뼈 아래 어딘가를 살살 긁어 불편하게 하는 느낌입니다.


시부모와 시조부모까지 모신 맏며느리, 친정엄마를 보며 자란 저에게 어쩌다 이런 어울리지 않는 호강이 온 것일까요. 이 몹시 불편한 행운을 좀 덜어내려고 '설거지'를 하겠다 나섰던 날 이후로 시아버지는 저에게 설거지를 '남겨' 주십니다. "이 냄비는 너무 크고 무거워."하면서 냄비를 씻고, "이건 물에 불려놔야 해."하면서 씻기 힘든 것들을 한쪽에 쓱 밀어놓고, "아, 이건 위험해."하면서 칼을 씻어버리고 나서 말이지요.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벌써 깨끗한 식기 몇 개만 남은 싱크대 앞을 양보받고 나면 얼떨떨합니다. 아기가 된 기분입니다. 무척 사랑받는 것도 같고 허전한 것도 같고요.



퇴근의 맛, 달콤쌉싸름


가끔 텅 빈 부엌에서 컵이라도 몇 개 씻고 있으면 '켄(시아버지 이름, Ken) 소리'가 난다며 가족들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설거지를 좀 하고 있어도 가족들이 놀라지 않게 됐을 때, 내 역할이 생긴 것 같아 기뻤습니다. 그래도 전직 K-노예, '일개미'로서의 정체성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걸까요. 이제 집 밖에서 내 자리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시아버지 손잡고 가서 면접 보기를 몇 번, 주에 며칠만 짧게 할 일을 구했습니다. 처음 시급을 받았던 날은 작고 소중한 봉투를 품에 안고 얼마나 뿌듯하던지요. 소꿉놀이하다 갑자기 다 큰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직장에서도 둥글게 적응하려면 모서리가 깎여나갈 동안은 좀 아픈게 당연하겠지만, 이상하게 너무 아픕니다. '굴러들어 온 돌'에 날을 세우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라 그런지 참 어렵고요. 새 길에 들어서는 것이 필연적으로 '사춘기'를 불러오는 줄을 잊고 있었네요. 이런 텃세를 견딜만큼 가치 있는 일인지, 이 일이 날 행복하게 하는지, 나를 성장으로 이끄는지. 꼼짝없이 고민해 가며 앞을 계획하고, 새 삶의 모양에도 적응해야 하는 것은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꾸만 울적해집니다.



토닥토닥 위로가 있는 식탁


퇴근길. 아이처럼 엉엉 울며 길을 걸어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소매를 당겨다 눈가를 쓱쓱 닦았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음식 냄새가 나고 어디선가 '도도도도도'하며 제 딸이 달려와 품에 안깁니다. 일하는 시간 동안 놓쳐버린 내 아이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 품에 꾹 눌러 안고 "보고 싶었나요?"하고 물어봅니다. "녜에!"하고 대답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다 고개를 드니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우리를 웃으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행복'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이 장면일 것 같습니다.


제가 지쳐 보일 때는 메뉴에 더 신경 쓰는 우리 시아버지. 오늘은 일본 초밥도 아니고, 중국 챠오미엔(볶음면)도 아니고 진짜로 한국 음식에 도전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동안 한인마트에 다녀왔다고 조금만 기다리라네요. 버터나 샐러리같은 재료야 그렇다치고 캐슈너트, 고수, 맛밤까지 조리대에 나와 있는 것이 불안하기야 했지만요. 어떤 모양이면 어떻습니까. 시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이렇게나 확실히 전해지는 것이 얼마나 기꺼운지요.


간장 한 방울 들어가지 않은 '잡채'에서도 그립던 맛이 나는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때로는 특식을 먹어가며 어리광도 부려가며 조금 시간이 흐르면 저도 사춘기를 잘 보내 한 뼘쯤 자랄 날이 올 테지요. 오롯이 내 편인 사람들의 온기 속에 무럭무럭 자라면 저는 어떤 싹을 틔우고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모양의 삶을 살게 될까요. 그날이 조금 기대됩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한인마트에서 '잡채'에 어울릴 것 같은 재료는 모두 쓸어담아 온 모양. 버터, 콩나물, 맛밤, 캐슈너트, 새우, 고수. '잡채' 안에서는 초면인 재료들.
처음엔 놀랍다가 볼수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요리로 누군가를 이토록 웃게 할 수 있다면 그걸 '성공'이 아니라곤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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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오늘 처음 한 말 :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야, 예쁜이."하고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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