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도 됩니다

편성준의 글쓰기 수업을 마치며

by 세템브리니

7월 1일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다음 주 화요일이면 어느덧 마지막 시간이다. 일상 에세이를 여러 권 출간한 작가가 진행하는 강의였고, 나의 책 쓰기 욕망을 잘 아는 지인이 추천해 준 분이었다. ‘내 책의 콘셉트 잡기’라는 수업 제목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이 수업을 들으면 언젠가 책으로 묶게 될 글들의 방향과 틀을 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컸다.

매주 하나의 주제를 정해 글을 써오는 과제가 있다. 이번 주는 마지막 시간답게 '내가 쓰고 싶은 책의 프롤로그 쓰기'다(A4 1장 분량). 명확한 주제를 정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몇 년간 틈틈이 써온 글들을 책으로 어떻게 묶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프롤로그를 써보았다.


이렇게 살아도 됩니다


“홍중이는 뭘 못 하게 하지 마세요. 그러면 크면서 엇나갈 수 있습니다.”


1989년, 나의 국민학교 1학년 담임이었던 손정분 선생님께서 엄마에게 하신 말씀이다. 당시의 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아직 야생의 동물에 더 가까운 아이였을 것이다. 그런 나를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꿰뚫어 보셨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말씀이 나의 삶 전체를 예언하듯 관통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그 말씀처럼 오랫동안 내 안에 내재한 반골기질과 싸우고 다스리며 살았다. 돌이켜 보면 반항과 저항은 나의 가장 솔직한 본질이었다.


그 기질 덕분에 나의 학창 시절은 언제나 파란만장했다. 나에게 “하지 마라”는 말은 더 큰 호기심과 욕망을 부추겼다. 납득할 수 없는 것에는 끝까지 저항했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요구에는 순응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이 대표적이다. 담임선생님은 방과 후 자율학습 동의서를 형식적인 절차라며 강압적으로 걷었다. 나는 형식이란 이유만으로 그 절차를 따를 수 없었다. 끝까지 저항했고, 결국 반 전체가 보는 앞에서 구타를 당했다. 너무 억울했던 나는 당시 막 상용화가 시작된 인터넷을 통해 교육청에 이 사건을 제보했다.


학교는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사건은 곧장 교장실까지 올라갔고, 교육청에서 파견된 장학사가 나와 엄마를 교장실로 불러 압박을 가했다.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비난을 받았다. 결국 엄마의 부탁으로 게시 글을 삭제했지만, 이후 담임선생님은 학년이 끝날 때까지 나를 비아냥거리며 괴롭혔다. 하지만 그 경험은 오히려 나에게 세상과 맞서는 법을 가르쳐준 일종의 성장통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의 반항적 기질은 어느 정도 부드러워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타협과 협력도 배웠다. 하지만 여전히 삶의 모든 장면에서 나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았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일을 그대로 두고 보지 못했다. 종종 조직 안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이 나에게 세상을 보는 독특한 시선을 선사했다는 사실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특별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


삐딱한 시선을 가졌던 나는 나보다 앞서 세상과 충돌했던 사람들의 삶과 글을 탐색하게 되었다. 나보다 먼저 세상에 저항했던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위안과 공감을 주었다. 그들이 살아온 궤적과 내가 걸어온 길이 닮았다는 사실은, 나의 반항적 성향이 결코 무의미한 고집이나 잘못된 길이 아니었음을 알려주었다. 오히려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흔적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나의 반항적 삶과 성장의 기록이다. 인생의 고비마다 나를 붙잡아 준 선배 반항아들의 말과 글을 담았다. 이 책을 쓴 이유는, 방황하고 흔들리던 시절의 내가 그런 이야기들을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랬다면 나의 삶이 조금 덜 외롭고, 덜 막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 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진정한 반항이란 결국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끝없는 질문과 탐구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나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반항은 삶의 본질을 향한 솔직한 질문이며, 누구나 자신만의 질문을 던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독자들이 각자 마음속에 품은 질문 하나를 용기 내어 세상을 향해 던질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자면.
엄마는 말년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고, 몇 명의 치매 환자를 돌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엄마가 처음 맡은 환자는 바로 내가 국민학교 1학년이었을 때 담임이셨던 손정분 선생님이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많이 노쇠해진 선생님은 엄마를 알아보지도, 나를 기억하지도 못하셨지만, 당신의 아들을 통해 그 인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는 선생님을 정성껏 돌보며 조용히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 반항적인 김홍중이, 지금은 잘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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