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가 맺어준 인연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감상문

by 세템브리니

“나는 예쁜 여자랑 결혼할 거야.”

어린 시절, 내 마음속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확신이었다. 누가 그렇게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 믿음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예쁘다는 건 곧 사랑받는다는 뜻이었고, 사랑받는 사람은 반드시 예뻐야 한다고 여겼다. 외모에 대한 막연한 동경. 아름다움이 곧 선택의 기준이라는 믿음. 나는 그런 가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연한 듯 그것을 기준 삼아 사람을 바라봤다. 무엇보다 그 기준에 맞추어 스스로를 조정해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빠져든 예쁜 여성은 TV를 통해 만났다. 어린이 드라마에서 세상을 파괴하는 악당이었다. 착한 주인공보다 훨씬 매력적인 악당의 모습에 권선징악의 스토리는 내 관심 밖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자 나의 시선은 금발의 서양 여성에게 옮겨갔다. 외국 영화에 나오는 화려하고 도발적인 인물들을 보며 막연한 동경과 욕망이 섞인 감정을 품게 되었고, 언젠가는 나도 그런 여성을 사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마음 하나로 영어 공부에 열을 올렸으니, 불순함이 동력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결과적으로 영어 실력이 향상되긴 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은 예쁘고 멋진 사람들끼리만 주고받을 수 있는 특권처럼 보였다. 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건 성격도, 마음도 아니었다. 외모였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얼굴을 보았고,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세상도 마찬가지였다. 광고와 드라마, 음악과 만화까지, 거의 모든 콘텐츠가 외모의 힘을 빌려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예쁘고 잘생긴 얼굴이 사랑의 자격처럼 느껴졌고, 나도 그 기준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렇게 외모 중심의 세계에 깊이 잠겨 살던 어느 날, 나는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낯선 제목이 눈에 들어와 호기심으로 책을 펼쳤다. 뜻밖에도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설정이 조금 이상하다 싶었지만, 줄거리에 이끌려 어느새 나는 마지막 장까지 읽고 있었다. 책을 덮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밀려왔다. 못생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편견을 당연하게 여겨온 내 시선이 이상했다.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한다면, 누군가에게는 나 역시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책은 나직한 음성으로, “그럼 너는 얼마나 잘생겼는데?”라고 되묻는 것 같았다. 사랑을 외모로 환원해 온 나의 오래된 관점이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었다. 나는 왜 아직도 사랑을 그런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나는 과연, 그만큼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유년 시절부터 너무도 당연하게 믿어온 나의 가치관은, 그 책이 던진 질문 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렸다. 나는 책을 덮고도 한참 동안 그 질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아무 목적 없이 캠퍼스를 천천히 걸었다.


소설은 독일에서 15년 만에 재회한 한 남녀의 장면으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스무 살 무렵, 한국의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 만났고, 그 인연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관계로 이어진다. 주인공은 가족을 버리고 재혼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다 버려진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다. 이후 강릉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서울에 올라오고,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곳에서 그는 시니컬한 선배 요한과, 외모로 인해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듯한 그녀를 만난다. 세 사람은 각자의 아픔을 안고 퇴근 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점 가까워지고, 주인공은 그녀에게 애정을 품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외모로 인해 받은 상처 탓에 그의 마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자신의 상처를 이겨내지 못한 요한이 자살을 시도한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뇌 손상을 입은 그는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남은 두 사람은 요한의 곁에서 서로를 의지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아무런 예고 없이 자취를 감춘다. 한 달쯤 지나, 주인공 앞으로 그녀의 편지가 도착한다. 아버지의 병세로 본가로 내려가 직장을 다니게 되었고, 언젠가 그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별을 결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부재 속에서 주인공은 무기력한 시간을 보낸다. 다시 백화점에 복직한 그는 어렵게 그녀의 주소를 찾아낸다. 찾아가서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짧은 편지를 남기며 생일날 카페에서 만나자고 약속한다. 그러나 약속 당일, 그는 버스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는다. 몇 년에 걸친 재활 끝에 마침내 그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1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 있었다. 이제 그는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 마음속에 간직해 온 그녀를 다시 찾기로 결심한 그는,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에게 책을 보낸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책은 나를 주인공의 시선에 이입하게 만들었다. 그의 감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게 했고, 그의 혼란과 연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외모 때문에 고통받는 일이 정말 정상이란 말인가. 도대체 누가 그녀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낙인을 찍었을까. 그녀가 말이 없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모습은 단순히 조용한 성격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반복된 상처의 기억이 만든 보호막 같았다. 낯선 시선과 조롱의 농도가 그녀의 침묵을 만들었고, 그 침묵은 다시 세상의 편견을 강화했다.


이 소설을 읽고, 이성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서 냉정하게 되돌아보았다. 예쁜 외모는 그 사람의 전부를 말해주지 않는다. 살아오며 몇 번쯤은 그 사실을 떠올린 적도 있었지만, 제대로 시야에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반성하지 않고 살아왔고, 반성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 채 살아왔다. 사랑이 외모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기본적이고 자명한 진실을 이제야 받아들이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그 늦은 깨달음이라도 얻게 해 준 이 책과의 만남이 고맙기도 했다.


이 책에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문장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내용을 기억할 때 장면보다는 문장에 기대는 편이다. 그래서 인상적인 표현을 만나면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천천히 되새기곤 한다. 그런 문장 중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인간은 대부분 자기와, 자신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끝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끝없이 오래 살려하고. 그래서 끝끝내 행복할 수 없는 거지.”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자아 없이 떠도는 현대인의 삶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나는 그 지적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삶이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며, 그 비교 속에서 허망함이나 허세를 키워왔던 내 모습 역시 그 문장 안에 비쳐 보였기 때문이다. 자아가 없기에 자기만을 챙기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 그것은 외모에 모든 가치를 투영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 책은 그 후에도 여러 번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책을 다시 읽어야만 하는 순간들이 삶에서 몇 차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책은 어느새 내게 ‘인생책’이 되었고, 결국 한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꺼내 들게 된다. 2013년 9월, 제주도의 한 웨스턴 술집에서 만난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물론 그녀의 외모를 보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외모는 그녀가 나의 평생의 반려자가 되는 데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초면에 말을 거는 나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 관심에서 벗어나려는 듯했다. 나는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을 거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뜸 말했다. “이 책을 읽고도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연락하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건넸다. 특별한 계산도, 계획도 없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이 그녀에게 닿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 마음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나를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서울로 돌아온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이런 책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추천한 거예요?” 따지는 듯한 말투였지만, 나는 그 말에 묻어 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걸려들었구나.’ 그녀도, 나처럼, 책 속에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아련함을 발견한 듯했다. 어쩌면 확신은 없지만, 호기심만으로 연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았다. 결국 우리는 그 책을 계기로 만나기 시작했고, 불과 여섯 달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렇게 만나게 된 아내는 아름답다. 짧은 감탄이나 순간의 인상을 담은 ‘예쁘다’가 아닌, 형상과 내면, 그리고 살아온 결까지 품는 ‘아름답다’라는 말이 그녀에게는 더 어울린다. 나는 어쩌면 ‘예쁜 여자’를 꿈꾸던 소년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할 준비가 된 어른으로서 그녀를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문득, 내가 왜 그녀에게 선택받았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건넸던 그 용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 책을 읽으며 미의 기준을 둘러싼 세상에 처음 질문을 던졌던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를 조금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걸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제주도 출신인 아내는 사실 오래전 미스코리아였다. 물론 지금의 그녀를 설명하는 데 그 사실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을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로 얻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묘하게 웃기고, 또 유쾌하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은 내게 여전히 영화처럼 두고두고 회상하게 되는 이야기로 남아 있다.


책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아내 자랑으로 끝나버린 이 긴 글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잘생기지도 않은 나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책을 들고 전직 미스코리아에게 다가갔고, 놀랍게도 그녀는 그런 나를 받아주었다. 세상은 종종 말이 안 되지만, 그래서 더 재밌기도 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 밤, 철학은 택시를 타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