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성준의 글쓰기 수업 과제 '택시와 관련된 기억 쓰기')
2009년 봄. 나는 카투사 전역을 몇 달 남겨두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군대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하거나 취업을 준비할 때, 나는 졸업장을 들고 뒤늦게 입대한 상태였다. 삼수와 편입으로 인해 남들보다 한 박자 늦은 군생활이었다. 그래서인지 입대하는 순간부터 내내 마음속엔 하나의 질문이 맴돌고 있었다. ‘나는 제대하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지?’
그 질문은 매 순간 나의 사고에 영향을 줬다. 군대에서의 모든 행위를 나의 이후의 삶과 연관 지어 바라봤다. 막막한 미래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으로 다가왔고, 그 불안은 고요하게 퍼지는 안개처럼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다. 하루하루는 군대 특유의 단조로움 속에 흘러갔지만, 나는 그곳을 빨리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학생부터 이어지던 비사회인의 신분을 군대를 끝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부담이 컸다.
시간이 지나 병장이 되고 어느 날, 후임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전역을 앞둔 후임들과의 조촐한 저녁이었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으로 시작한 저녁은 금세 얼큰한 술자리가 되었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전역 이후의 삶으로 흘러갔다. 각자 나름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누군가는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이었고, 누군가는 복학 후 유학을 목표로 토플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정된 환경에서 교육을 잘 받은 친구들이라, 미래에 대한 계획이 차곡차곡 준비돼 보였다.
나는 그들과 달랐다. 성장 배경도, 가정 형편도, 삶의 방향도 우리는 수준이 달랐다.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겉으론 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속으로는 '나는 너희와 다르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스물여섯, 그것도 대학 졸업 후 입대한 나와 달리, 후임들은 나보다 몇 살씩 어렸고, 제대를 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거나 시험을 준비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같은 정체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들은 오히려 나보다 한 발 앞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정된 궤도 안에서 미래를 그려나가는 그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술기운이 슬슬 올라오며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 됐다. 술자리를 마치고 후임들은 당구장에 간다고 했다. 당구나 게임에 관심이 없어서 같이 가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술을 마시면 생각이 많아지는 나는, 당구나 치며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웃고 떠들던 자리를 등지고 혼자 부대 앞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기지 앞 골목은 유난히 눈부셨다. 각종 네온사인이 뒤엉킨 거리엔 불필요한 것들로 가득했지만, 그 화려함이 이상하게 공허하게 느껴졌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가끔 들르던 술집 앞에 멈췄다. 낮게 깔린 기타 선율과 은은한 조명이 마음에 들던 공간이었다. 번잡한 밤거리 속에서 그곳은 나에게 숨 쉴 틈처럼 느껴졌다.
자주 마시던 싱글몰트 위스키를 잔으로 연거푸 시켰다. 술을 마셔도 답답하긴 매한가지였다. 나도 후임들처럼 돌아갈 학교나 도전할 목표가 또렷했으면 했다. 하지만 내 안에는 뿌연 안개만 가득했다. 아는 건 하찮은 단편적 지식뿐이었고, 모르는 것은 끝도 없어 보였다. 잔을 비워도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어느새 시계는 통금 시간을 향하고 있었다. 마음이 더 어지러워지기 전에, 일단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나는 말없이 계산을 마치고, 택시에 올랐다.
택시는 내가 근무하는 미군기지의 후문으로 향했다. 이 시간엔 복귀하는 카투사들이 많아 기사들도 익숙한 노선이었다. 내가 탄 택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운전석 너머로 힐끗 나를 보던 기사님이 말을 걸었다.
“카투사지? 표정이... 고민이 많은 얼굴인데, 무슨 일 있어?”
처음엔 망설였다. 모르는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일이 익숙지 않았고, 괜히 약해 보일까 망설여졌다. 하지만 술기운 탓이었을까, 아니면 오랜만에 만난 연장자에게 무언가라도 듣고 싶었던 걸까. 입을 열고 나자 마음속에 쌓아뒀던 말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군 생활 동안 붙잡고 있었던 생각들. 전역 후의 삶, 불확실한 미래, 나만 뒤처진 듯한 기분. 내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왠지 모르게 쿨한 태도를 유지하고 싶었다. 괜히 진지하게 구는 게 민망했던 걸까. 그래서 결국, 자조 섞인 말투로 말을 던졌다.
“삶을 근사하게 살 만큼, 똑똑해지고 싶은데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기사님은 거울 너머로 나를 바라보다 짧게 대답했다.
“똑똑하고 싶으면, 바보처럼 살면 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것이 책에서 흔히 접하는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오랜 시간 비슷한 고민을 품고 살아온 누군가의 체험에서 나온 말처럼 느껴졌다. 단순했지만, 곱씹을수록 삶을 잘 살아내는 데 필요한 원리처럼 다가왔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라’는 뜻은 아니었다. 어쩌면 너무 똑똑해지려 애쓰지 말라는 말, 당장 모든 것을 꿰뚫으려 하지 말고 일단 움직이고 부딪혀 보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날 밤 수많은 고민들 속에서도 유독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은 건, 아마도 그 순간의 내가 바로 그 말을 가장 필요로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전역 후 한참이 지나, 나는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를 만났다. 2022년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부터 이미 나를 매혹시킨 작가였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는 삶의 의미가 반드시 진리나 철학책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그날 밤 택시 안에서 내가 이미 체감했던 현실이기도 했다. 의미는 삶 그 자체에 깃들어 있기보다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다시 불러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에르노는 시간을 통과한 기억을 통해 삶을 다시 써 내려가는 사람이었다.
그날 밤 택시 안에서 들은 한 문장을 여태껏 품고 있다. ‘똑똑하고 싶으면, 바보처럼 살아.’ 나에게 있어서도 삶의 의미는 거창한 진리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일을 하거나, 홀로 길을 걷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소한 순간에도 삶의 의미는 나를 향해 매 순간 다가오고 있었다. 이십 대를 군대에서 마무리하며 고민과 불안이 짙게 내려앉았던 그 밤, 우연히 탄 택시 안에서 들은 농담 같은 말 한마디가 어떤 철학서보다 더 오래 삶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나는 계속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때처럼, 스쳐 지나간 장면들을 유심히 다시 들여다본다. 찰나의 순간 속에서 문득 건져 올린 말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날 밤의 택시, 그 짧은 대화가 지금의 내 삶을 바꿨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말 덕분에 나는 마음 한편을 조금은 덜 무겁게 하고, 그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말을, 가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똑똑하고 싶으면, 바보처럼 살자.” 그 말이 남긴 울림 속에서, 나는 오늘도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배워가는 중이다.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모르겠고, 바보처럼 산다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나는 지금, 그 어정쩡한 어딘가에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날의 기사님이 어쩌면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 말을 어떤 마음으로 건넸는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언젠가 그 기사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번엔 웃는 얼굴로 다시 여쭈고 싶다. 바보처럼 산다는 건, 대체 어떤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