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는 정당한가요?” 회사에서 해고를 진행 중인 한 직원의 상사가 물었다. 나는 정당하다고 말하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해고는 정당하지 않았다. 법과 절차의 기준으로 보아도 미흡했다. 나는 대답을 미뤘다. 대신 해고 절차를 설명했다. 그 설명이 해고의 정당성을 묻는 질문을 회피하는 대답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음 대화로 이어갔다.
나는 여러 회사를 거치며 인사 업무를 맡아왔다. 대부분은 일과 사람을 통해 성장할 수 있어서 고마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단 한 곳만은 예외다. 시간이 흘러도 불편한 기억이 옅어지지 않는 회사가 있다. 위의 장면은 바로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든 경험이 지나고 나면 소중하다고 믿는 것이 개인의 철학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억이 아름답게 남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예외의 이야기를 여기서부터 시작하려 한다.
그곳은 미국계 기업이었다. 처음 발을 들이던 날, 나는 독일계 기업에서 쌓아온 경력이 새로운 환경에서 빛을 발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공기는 메마르고, 사람들은 조심스러웠다. 활기와 자율성은 없었고, 획일적인 분위기가 사무실을 채우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성향 차이가 아니었다. 과도한 성과 압박이 만들어낸, 숨 막히는 규율이었다. 실적을 증명하지 못하면 자리를 잃는 것이 암묵적인 법칙처럼 작동했다. 회사의 이익은 빠르게 결정됐지만, 사람의 사정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동료들 사이의 유대는 얕았고, 회사는 직원을 조직의 구성원이 아니라 비용 항목으로 취급하는 듯했다. 내가 알고 있던 ‘조직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어느 날 회사의 영업 직원이 동남아 국가로 출장을 갔다. 군부 계통의 정부 관료를 만나 우리 제품을 홍보하는 자리였다. 공무원인 고객은 현지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해외 법인 소속 상사와 함께 저녁 접대를 진행했다. 식사 분위기는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흘렀다. 고객은 고가의 주류를 잇달아 요구했고, 예상치 못한 금액이 쌓여 갔다. 자리를 준비한 영업 직원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지만, 같은 자리에 상사가 있었기에 승인을 받고 고객의 요구를 들어줬다.
문제는 귀국 후에 터졌다. 그 접대는 해당 국가의 청탁금지 규정을 위반했던 것이다. 우리로 치면 김영란법 기준을 넘어선 셈이다. 곧 현지에서 법적 조사가 시작됐고, 회사도 내부 조사를 착수했다. 한국 법인의 HR 담당자인 나는 절차에 따라 당사자를 인터뷰하며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조사 결과, 규정 위반의 책임은 실무자보다 관리자인 상사에게 더 무거웠다. 상사의 승인 없이 진행된 일도 아니었고, 상사 역시 자리에 동석해 있었다. 위반이 분명했기에 두 사람 모두 징계는 피할 수 없었으나, 그 수위는 책임의 경중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나는 1차 조사 결과와 의견을 신중히 정리해 징계 담당 부서에 보고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규정 위반의 무게를 따지는 대신, 징계 수위에 따라 회사가 입을 손실을 계산하는 기류가 감지됐다. 결론은 정해지고 있었다. 경영진은 실무자인 한국 영업 직원을 해고하기로 내부 합의를 마친 상태였다. 국내법상 필수 절차인 정식 징계위원회조차 열리기 전이었다. 더 무거운 책임이 명백한 상사는 경징계로 마무리됐다. 회사 안에는 앞으로의 비즈니스 전망을 고려하면 실무자 한 명을 잃는 손실보다 상사를 잃는 손실이 훨씬 크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해고 통보의 지시를 받은 나는 찜찜함을 안고 영업 직원의 국내 상사를 찾아갔다. 외국계 기업 특유의 매트릭스 조직에서는 국내와 해외에 동시에 보고라인을 가진다.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보다 오래 다닌 만큼 조직의 생리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위에서 이미 결정된 일이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내게 다시 물었다.
“해고는 정당하죠?”
나는 끝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었고, 정당하지 않다고 말해도 이미 내려진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의 해고는 사실상 확정된 상태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절차를 다시 설명하는 것뿐이었다. 원래라면 사건을 조사하고 판단한 뒤,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징계를 확정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해야 할 일과 이미 주어진 일 사이의 간극에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주저함은 결국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당시 회사의 본사는 미국에 있었다. 미국의 해고 관행은 우리와 다르게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본사는 주주의 이익을 위해 비용과 리스크 최소화를 우선했고, 해고는 합리적 수단이자 최고의 효율로 간주된다. 그 기준이 표준 절차라는 이름으로 한국 법인에 이식되었다. 본사에서 강요하는 절차의 형식과 내용은 우리 법과 충돌했다. 실무자인 내가 과정에서 해당 사실을 지적해 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동일했다. 법적 분쟁으로 간다고 할지라도 해고가 더 이득이라는 것이었다.
회사의 조직문화는 상사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에 대한 환상은 그런 순간마다 무너졌다.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라는 논리 아래, 이익을 앞세운 결정 앞에서는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웠다. 이견을 가지면 실행을 지연시키는 사람, 곧 문제 있는 직원으로 분류되기 일쑤였다. 여기에 한국 조직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가 겹쳤다. 질문하는 사람은 예의 없는 직원이 되었고, 승진이나 보직에서 불이익을 받기 쉬웠다.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싸우는 일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소송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었고, 이길 수 있다는 확신조차 없는 법정 다툼을 위해 최대 2년을 버틸 수 있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 커리어에 남을 평판 리스크도 컸다. 노동조합이 없는 상황에서는 내부 고충을 제보하는 것조차 생계를 위협하는 선택이 됐다. 겉으로 드러나는 KPI와 준법 점수는 숫자로 관리됐지만, 그 안에는 사람의 사정이 반영되지 않았다. 조직은 법을 잘 지키면서도 직원을 가족처럼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그 약속은 이익이 보장되는 순간에만 유효했다.
글로벌 기업의 매트릭스 구조는 책임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상사는 해외 법인 소속이었고, 최종 결정권은 본사에 있었다. 각 조직은 자신이 감당할 몫을 줄이는 데 익숙했다. 국내 노동법상 책임을 지는 한국 법인의 대표조차 직원을 구제할 권한이 없었다. 글로벌 핫라인은 영어가 기본이었고, 조사 주도권은 본사에 있었다. 지역 현실과 법의 취지를 설명해도, 우선순위는 언제나 본사의 기준표였다.
이번 일의 배경에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본사의 이익 우선 문화, 상사의 결정을 절대화하는 조직 풍토, 한국 특유의 상명하복 관행, 노동조합 부재, 그리고 다중 법인 체계가 만든 책임 회피 구조가 서로 맞물려, 부당한 결정을 견제하거나 되돌릴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하고 있었다.
그런 토양에서 이런 사례는 쉽게 만들어졌다. 나는 매일 그 토양을 밟으며 일했고, 그곳의 상식을 점점 내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내가 느낀 주저함은 단순한 성격이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회사의 제도와 문화가 빚어낸, 피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 결과는 예측 가능했고, 반복되었다. 현장에 대한 나의 감각은 점점 무뎌졌고, 그 흐름 속에서 규정과 절차 준수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어디까지 내가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는지를 깊이 고민한 순간이었다.
학창 시절 나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재수와 삼수 끝에 들어간 학교에서 처음에는 영어학을 공부했지만, 사회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1학년 때 노무현 대통령 탄핵 과정을 지켜보며, 세상을 향한 대의를 품었기 때문이다. 정정당당함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면서 기본과 원칙이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전공을 선택했고, 그 약속을 오래 지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맡은 역할은 그 다짐을 거두라는 요구와 다름없었다. 규정을 앞세우고 생각을 접으라는 신호가 자주 반복됐다.
내가 경험한 그 사건은 학창 시절 가졌던 다짐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첫 번째 사례였다. 조직은 절차의 미흡함을 알면서도 “회사의 결정이니까”라는 말로 사유의 중지를 요구했다. 나는 규정과 절차를 지키는 것을 임무로 받아들여야 했고, 그 범위를 벗어나 행동할 수 없었다. 책임을 실무자 한 명에게 전가하는 구조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바꿀 충분한 시도는 하지 못했다.
그때 한나 아렌트의 개념이 떠올랐다. 아렌트는 유대계 독일인 철학자로,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1961년 그녀는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을 직접 취재했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강제 수용소로 이송하는 작전을 총괄한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악마적 괴물로 상상했지만, 아렌트가 마주한 그는 살의를 품은 광인이 아니라 주어진 임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했다고 믿는 평범한 관료였다. 그는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말을 반복했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도덕적으로 성찰한 흔적은 없었다.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 불렀다. 악은 반드시 악의적인 의도나 증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멈춘 평범한 사람들이 구조 속에서 반복하는 행위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이 스스로를 ‘충실한 관료’라 불렀듯, 나 역시 그 순간만큼은 ‘규정을 준수하는 직원’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의 평범성은 나와는 먼 이야기라 여겼지만, 생각을 멈춘 나의 태도 역시 그 메커니즘 위에 있었다.
이 개념은 조직 전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왜 많은 사람들은 사유를 멈추는가. 모두가 교육을 받았고 판단할 능력을 지녔는데도, 현실 앞에서는 왜 그렇게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가. 평판을 지켜야 하고, 일을 지연시키면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일까. 평가와 승진, 자리보전이 판단의 기준을 바꿔 놓기 때문일까. 나는 현장에서 침묵이 안전을 주고, 저항이 위험을 부른다는 사실을 자주 목격하며 조직 생활 자체에 회의감을 느꼈다. 그리고 순응이 미덕이 된 공기가 압박으로 다가올 때, 나는 결국 개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은 나는 개인적 경험을 역사와 철학의 맥락 속에서 다시 바라보게 했다. 아이히만이 보여준 악의 평범성은 단지 20세기 유럽의 비극이 아니라, 오늘날의 회사 회의실과 인사부서에서도 재현될 수 있었다. 그것은 생각하지 않는 배움, 의심하지 않는 복종, 그리고 구조 속에서 안주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깨달음은 나를 불편하게 했지만, 동시에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내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기준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기도 했다. 배움과 사유를 함께 지키는 것, 그것이 내가 이 경험에서 건져 올린 가장 값진 결론이다.
결국 나는 그 회사를 1년 남짓 다니고 떠났다. 오랫동안 굳어진 경영 방침은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부당한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사회인으로 살고 싶지도 않았다. 많은 이들의 우려를 뒤로하고 퇴사를 선택했지만, 비인간적인 방침을 직접 실행했던 기억은 직업적 트라우마로 남아 오랫동안 마음속에 쌓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를 지치게 한 건 주변의 무관심도 있었다. 누구도 해고 위기에 놓인 그를 돕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동료로부터 “조직에서 시키는 일은, 생각과 달라도 따라야 한다"라는 충고를 들었을 때는 씁쓸함을 넘어 허탈했다. 내가 믿었던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당시 나도 소극적 저항에 그쳤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옳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조직의 일이라도 최소한 ‘왜’라는 질문은 던져야 한다. 그 질문이 변화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스스로의 방향을 지키는 방패가 되기 때문이다.
그 경험은 내 진로를 잠시 우회하게 했지만, 직업을 대하는 분명한 기준을 남겼다. 규정과 관행을 따르기 전, 먼저 이유를 묻는 습관. 숫자와 절차 뒤에 숨겨진 사람을 먼저 떠올리는 습관. 특히 누군가의 경력과 생계를 위협하는 결정이라면, 더 느리고 불편한 절차를 거치더라도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전하고 싶다. 당신이 속한 자리에서, 비록 작은 결정이라도 ‘왜’를 묻는 습관을 가져 달라. 그 질문이 모든 것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당신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다. 구조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으려면 배움과 사유가 함께 있어야 한다. 아렌트가 말했듯, 생각을 멈추는 순간 평범한 악은 조용히 자라난다. 그것이 내가 회사를 떠난 이유이자 앞으로도 지켜갈 삶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