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어머니는 계모였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자주 들려주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본처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술집에서 일하던 여인을 새 아내로 맞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묻어 있는 생모에 대한 그리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계모에게도 진심 어린 애정을 갈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자주 풍겼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는 늘 ‘어머니’라는 자리에 결핍이 있었다. 그 자리를 새어머니가 대신 채워주길 바라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처음부터 새 할머니를 부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기억이 지금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엄마는 음력 1월 4일생이었다. 해마다 설 연휴가 끝나면 곧장 생일이 돌아왔다. 우리는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치매에 걸린 증조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엄마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챙기고, 장남이라는 이유로 들러붙은 시동생들까지 감당해야 했다. 또한, 능력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학습지 배달을 하고, 미싱과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밤낮없이 이어갔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런 엄마가 늘 안쓰럽고 불쌍해 보였다.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은 그런 엄마를 위해 큰아들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물 같은 날이었다. 내가 엄마를 웃게 해 줄 수 있는, 일 년 중 단 한 번뿐인 날이었다.
그해 설날, 나는 세뱃돈을 모아 엄마에게 운동화를 선물했다. 진열대에서 운동화를 고르던 순간부터 엄마가 웃으며 신어보던 모습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엄마 생일 다음 날, 집에 머물고 있던 새 할머니가 그 운동화를 신고 그냥 떠나버렸다. 말도 없었다. 농담처럼이라도 "신어보겠다"라는 말조차 없이, 엄마에게 선물한 운동화를 발에 꿰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나는 분노를 느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 내 안에는 새 할머니에 대한 서운함이 아니라 분명한 원한이 쌓이기 시작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신발은 단지 물건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주고 싶었던 내 마음이자, 세상의 무게를 홀로 감당해 내던 엄마에게 바치고 싶었던 작은 보상이었다. 그런데 새 할머니는 그것을 가볍게 빼앗아갔다. 그녀는 일상의 상식보다 교회에 집착했고, 손주들에게까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무섭게 외쳤다. 어릴 적 나는, 신을 믿는다면서도 인간에게는 그렇게 가혹할 수 있는 사람의 말과 태도가 너무나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세세한 일화는 모두 떠오르지 않지만, 그녀가 엄마에게 보였던 태도는 일방적이고 억압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새 할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아버지 역시 나에게는 또 다른 실망의 대상이었다. 누구보다 엄마를 지켜줘야 했던 사람인데, 그조차 침묵했다. 어린 내가 감당해야 했던 혼란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위의 일화는 내가 기독교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기 시작한 시발점이었다. 이후에도 가정사는 순탄치 않았다. 내가 머리가 클 때까지, 아니 어른이 되어서도 불행한 일은 반복되었다. 그 모든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나를 불편해하던 막내 삼촌은, 종종 걸핏하면 나를 때렸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기였다. 무식하게 맞고 나면 내 삶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심리적 위축이 찾아왔다. 친할머니가 둘째 삼촌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들어왔지만, 술만 마시면 우리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삼촌을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는 엄마를 입에 담기 어려운 말로 욕하고, 가전제품을 부수고, 동생과 나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그 모든 장면이 마치 의례처럼 반복되었다.
지쳐버린 아버지는 동네에서 운영하던 오락실 사업까지 망한 뒤, 분노를 엄마에게 쏟아냈다. 동생과 나는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를 떼어놓아야 했고, 마침내 분리 조치까지 감행해야 했다. 나는 그 모든 혼란과 상처의 책임을 기독교라는 이름 아래 무책임한 신념을 따르던 새 할머니,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서 찾았다. 그들이 강조하던 신의 이름은 나에게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고, 오히려 모순된 신념이 가족을 더욱 파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의 제목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과거의 오늘’이라는 페이스북의 기록에서 2021년 내가 남긴 밑줄을 다시 마주하며 문득 이 기억이 떠올랐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신에 대한 갈망이 제도화된 종교 안에서만 작동되거나 실천될 필요는 없다.” “절대적 확신이 아니라 끊임없는 의심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인간의 한계성 너머에 있는 어떤 세계에 대한 갈망과 기다림을 지닌 이들이라면, ‘신 없이 신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 문장은 나를 잠시 멈춰 세웠다. 어린 시절의 나는 종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곡된 신앙을 내세워 사람을 괴롭히고 억압하는 어른들을 보며, 종교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종교의 진정한 의미를 삶의 방식으로 일치시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런 만남은 나의 관점을 조금씩 바꾸어놓았다.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계기는 조셉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 프란시스 치셈은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를 잃고 친척 집에서 자란 인물이다. 유약하고 예민하지만 따뜻하고 강직한 성품의 그는 성장하면서 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사제가 되기를 결심한다. 그러나 그는 신학교 시절부터 교리와 형식에 얽매인 신부들과 부딪힌다. 권위보다는 진심, 관념보다는 연민을 중시했던 그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을 신앙의 본질로 여겼다. 사제로 서품된 이후 중국으로 선교를 떠난 그는, 낯선 땅에서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충돌, 전염병과 전쟁, 굶주림과 같은 고통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는 현지인들과 나란히 걸으며 병원을 짓고, 아이들을 돌보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삶을 선택한다. 그의 선교는 강압적인 개종이 아니라 공감과 사랑, 실천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고, 처음엔 비난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진심이 전해졌다. 소설 속에서 그는 점점 신뢰를 얻고,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눈이 떠졌다. 내가 보아온 신앙은 왜곡된 그림자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치셈 신부는 상상 속의 인물이지만, 형식보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종교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곧 현실 속에서도 그런 종교인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전 교황 프란치스코였다. 나는 2015년, 『천국의 열쇠』를 읽고 문장 한 줄을 이렇게 남겼다. “종교를 섬기는 사람의 행실은 종종 그 종교를 지향하는 선의의 지위를 재는 잣대가 되는 법입니다. 신부님께서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저를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한 줄을 덧붙였다. “이게 진짜 종교지.”
공교롭게도 최근, 그와 비슷한 사유를 품은 인물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소설 『만다라』에 등장하는 지산 스님과 법운 스님이다. 법운 스님은 순수한 구도자다. 세속과 단절된 삶을 살며, 오직 깨달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는 교리에 충실하고 금욕적인 수행을 실천하지만, 그 삶이 과연 진정한 자비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스스로도 끊임없이 묻는다. 반면 지산 스님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창녀촌에 머물며 빈민을 돌보고, 세상 한복판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는 자비를 관념이 아니라 실천으로 여긴다. 두 스님의 여정은 단순한 대립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법운은 지산의 방식을 의심하면서도 그 안에서 배운다. 지산은 법운의 고립된 구도를 경계하면서도 그의 진심을 존중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논쟁하고, 함께 고뇌하며 불교가 무엇인지, 구도가 무엇인지,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여정을 마치며 법운은 비로소 깨닫는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어렵고도 진실한 수행일 수 있다는 것을. 수행이란 홀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만다라』의 지산과 법운, 『천국의 열쇠』의 치셈 신부는 서로 다른 종교의 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든 갈망은 닮아 있다. 이들은 신에 대한 사유를 제도와 교리의 울타리 너머로 확장시킨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세속의 고통을 껴안고, 어떤 이는 침묵 속의 진실을 탐색하며, 또 어떤 이는 사랑과 헌신으로 신을 증명한다. 이들을 보며 나는 깨닫는다. 신에 대한 갈망은 반드시 제도화된 종교 안에서만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갈망을 품은 사람이라면 신이 없더라도 신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종교를 경계한다. 아니, 오히려 더욱 경계하게 되었다. 종교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지배를 정당화하며, 공동체의 이름 아래 폭력을 행사하는 수단이 되는 사례들을 최근에도 보아왔기 때문이다. 조직화된 종교는 권력과 결탁할 때, 그 본질을 잃기 쉽다. 형식과 교리가 사랑과 자비를 대신할 때, 신의 이름은 공허해진다. 그런 점에서 나는 종교의 순기능보다도 그 역기능의 폐해에 더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사람들 덕분에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되었다. 신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그보다 더 신 답게 살아가는 사람들. 설교보다 손을 내밀고, 교리보다 연민을 실천하며, 형식보다 진심을 우선하는 사람들. 그들은 종교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품는 이들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 안에서 종교의 본래 얼굴을 보았다. 말 대신 삶으로 신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돌아보면 나는 한때 종교에 배신당했다고 느꼈다. 신을 믿는 사람의 위선에 질려버린 시절을 살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신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억압하고 상처를 남긴 기억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됐다. 그것은 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이름을 빌려 타인을 지배한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 잘못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나는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끝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도, 누군가가 만든 신을 믿지 못할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절대자에게 삶을 맡기는 일은, 내게 여전히 비현실적이며 낯선 방식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알게 됐다. 그 이름을 믿지 않아도, 어떤 사람들은 신보다 더 신다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보다, 신이 없어도 인간이 선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내게는 더 현실적이다.
‘신 없이도 신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결국 신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 신의 자리를 다시 묻는 방식이다. 절대자의 실재 여부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부재의 자리를 어떻게 살아내느냐다. 나에게 있어 그 자리를 끝내 채우는 것은 교리도 구원도 아니다. 삶 그 자체로 증명하는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