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장생활 17년 차다. 그중 15년은 인사 업무를 맡아 전문성을 쌓았다.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비교적 빠른 나이에 임원이 되기까지, 인사 부서에서 다양한 사람과 사건을 마주했다. 내가 인사를 천직으로 여기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컸고, 대학에서는 사람들이 만든 사회가 궁금해 사회과학을 전공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그 관심이 자연스럽게 ‘사람을 직접 경험하는 일’을 찾게 만들었다. 인사 업무는 그 욕구를 가장 충족시켜 주는 영역이었다. 나는 대학 시절 기업 인사팀에서 인턴을 했고, 군 복무 때는 카투사 인사과에서 근무했다. 그렇게 시작된 길은 결국 나를 인사 전문가로 이끌었다.
길 위에서 내가 마주한 불편한 사실이 있다. 회사와 업종이 달라도 인사팀은 거의 모든 조직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채용을 진행할 때, 성과평가 점수를 조정할 때, 연봉 협상에서 숫자를 다룰 때, 규정을 들이밀 때마다 불만의 화살은 인사팀으로 향했다.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면서도, 동시에 가장 멀리서 원망을 받는 부서. 그것이 내가 경험한 인사팀의 모순된 자리였다.
지난 4월, 나는 다양한 회사 인사팀에서 쌓아온 경력을 마무리하고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 일이 힘들거나 어려워서는 아니었다. 그동안 일을 통해 쌓인 경험과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만나온 다양한 사람들과 그 안에서 겪은 경험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몸담은 곳은 영국계 바이오 화학 회사였다. 국내 대기업에서 사모펀드를 거쳐 영국 회사에 매각된 곳이었다. 나는 그 회사에서 인사 임원이 되었다. 사십 대 초반이라는 나이에는 이례적인 인사였다. 이후 인사 조직의 수장으로서 회사를 안정화시키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는 내가 지나온 회사들과 그 안에서 겪은 경험을 자세히 이야기하려 한다. 그 경력의 궤적 속에서 왜 인사팀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팀이 조직에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차근히 풀어 보려고 한다.
나의 첫 회사는 인터넷 전화 솔루션이 주목받던 시절, 잘 나가던 IT 기업이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나는 채용과 인사발령 같은 기본 업무로 인사 일을 시작했다. 설립된 지 오래되지 않은 벤처치고는 인사 규정과 체계가 갖춰져 있어 배움을 쌓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회사의 사업은 기대만큼 풀리지 않았다.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제4 이동통신 사업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지만 계획이 무산되면서 급격한 경영 위기가 찾아왔다. 임직원의 절반 이상이 회사를 떠났고, 사회생활 2년 차였던 나도 퇴직금 일부를 받지 못한 채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내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회사는 상장폐지되며 사실상 문을 닫았다.
첫 회사에서 사회생활의 쓴맛을 본 나는, 보상이라도 받듯 듯한 독일계 화학 기업의 한국 법인으로 이직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탄탄한 회사였고, 규모나 매출, 인사 조직의 전문성은 이전 회사와 비교할 수 없었다. 나의 첫 직무는 해외 주재원 관리였다. 당시 한국 직원들의 역량은 그룹 내에서 높이 평가되어, 사무직 직원의 10% 이상이 세계 곳곳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반대로 반도체나 석유화학처럼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산업 분야에는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7년을 보내며 주재원 관리로 시작해 평가, 보상, 비즈니스 파트너 등 인사의 광범위한 영역으로 업무를 확장했다. 해외 법인의 동료들과도 긴밀히 협력하며 일과 사람에 대한 시야를 한층 넓힐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미국계 제조업과 스웨덴계 가구회사를 각각 1년 남짓 거쳤다. 직전 회사에서도 인사 업무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경험하기가 어려운 분야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부분을 메꾸고자 이직한 미국계 회사에서는 사업부 담당 인사 파트너로서 해당 조직의 인사 전략부터 시작해 업무 전반을 기획 및 운영했다. 스웨덴계 회사에서는 그동안 경험이 가장 부족했던 노사 업무를 맡았다. 단체협약 체결에 번번이 실패하던 상황에서 파업 대응과 노사 협상에 직접 뛰어들어 회사의 첫 단체협약을 이끌었고, 고충처리위원회나 노동위원회 대응 같은 개별적 노무 업무도 맡았다. 이쯤 되면 교육을 제외한 인사의 거의 전 분야를 경험한 셈이었다.
최종적으로 몸담은 곳은 사모펀드에 매각된 국내 대기업 계열사였다. 2차전지, 전자재료, 바이오 등 신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하던 회사였다. 처음에는 해외 지사의 인사 업무를 관리하는 글로벌 인사 담당자로 입사했지만, 인사팀 수장이 재무 출신이라 인사 경험이 부족해 사실상 전반을 총괄하게 되었다. 그동안 여러 회사에서 쌓은 경험은 빠르게 변하는 조직을 관리하는 데 큰 자산이 되었다. 국내외를 오가며 2년쯤 근무하던 시점, 바이오 사업부를 담당하던 임원이 나에게 인사팀장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규모가 작은 사업부로 옮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마음이 움직였다. 결국 나는 영국계 회사로 매각될 바이오 사업부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임원이 되어 인사 조직을 맡았다.
이렇게 여러 회사를 거치며 경험을 쌓는 동안, 나는 인사팀을 향한 불만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반복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회사가 왜 마음대로 결정을 해요?”
스웨덴 가구 회사에 다닐 때 가장 자주 들었던 불만이다. 이 회사는 ‘민주주의’를 조직 문화의 핵심 가치로 내세웠고, 노사협의회를 “Go With”라 부르며 직원 참여를 장려했다. 국내 기업의 시각에서 보면 파격적인 문화였지만, 실제 운영에는 간극이 있었다. 특히 성과급 문제가 갈등의 불씨가 됐다. 회사는 복잡한 산정식을 근거로 성과급을 책정했지만 공식이 워낙 난해해 인사팀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직원들에게는 결국 ‘회사 마음대로 정한 결과’로 비쳤다. 불투명한 기준과 부족한 소통은 곧바로 불만으로 이어졌고, 인사팀은 회사의 일방적 결정을 전달하는 부서로 낙인찍혔다. 이런 경험은 이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규모와 문화의 차이는 있었지만, ‘일방적 결정’은 어디서나 인사팀을 향한 불만의 기폭제가 되었다.
“인사팀은 왜 늘 회사 편만 들어요?”
노동조합과 협상을 할 때마다 인사팀은 어김없이 ‘사측’이라 불렸다. 대표이사를 대신해 협상 자리에 앉는 순간, 직원들에게 인사팀은 회사를 대변하는 존재가 된다.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은 회사와 직원 모두가 지켜야 할 약속이지만, 갈등의 현장에서 원칙을 지키려 하면 언제나 보수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직원들의 인식 속에 인사팀은 늘 회사 편에 서 있는 집단으로 굳어졌다. 나는 학창 시절에는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회사에 다닐 때는 부당 해고를 막으려다 경영진과 마찰을 빚고 퇴사까지 했던 경험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노동자의 권리를 중시했지만, 인사팀의 자리에 앉는 순간 그런 성향은 무의미했다. 협상 자리에서는 원칙을 지킨다는 이유로 인간적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때 깨달았다. 개인의 이념이나 성향과 상관없이, 인사팀에 있는 한 직원들의 눈에는 사측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사팀은 왜 관료적이에요?”
아마 모든 회사에서 가장 흔하게 들었던 불만일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구분이 필요하다. 관료제는 현대 조직 운영에 불가피한 장치다. 절차와 규정을 정하지 않으면 혼란이 생기고, 특히 인사 업무는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하지만 관료주의는 다르다. 제도가 사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 버리는 태도다. 독일계 화학 회사에서 본 일부 인사팀 동료들의 모습이 그랬다. 규정과 절차는 완벽했지만, 직원의 현실적 어려움은 외면했다. 규정만 지키면 책임이 끝이라는 태도였다. 그 순간 인사팀은 제도를 관리하는 부서가 아니라, 규정 뒤에 숨는 집단으로 비쳤다. 그래서 나는 늘 말한다. 인사팀은 관료적일 수밖에 없지만, 관료주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강조해 왔다. 인간은 타인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현상학에서는 타인의 고통은 언제나 ‘나의 바깥’에 있다고 말하고, 해석학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석일 뿐 동일한 체험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내가 상대를 이해한다고 믿는 순간에도, 그 이해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단어와 행동으로 전해지는 것은 단편적 흔적일 뿐, 타인의 내면을 온전히 살아낼 수는 없다. 인사팀과 직원을 둘러싼 관계도 다르지 않다. 직원은 회사의 의사결정이 얼마나 복잡한 절차와 규정을 거쳐 나오는지 알기 어렵고, 인사팀은 직원의 개인적 사정과 감정을 끝까지 헤아리기 어렵다. 서로의 세계가 완전히 겹쳐질 수 없다는 사실, 바로 그 한계가 불만과 오해를 낳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인내다. 어차피 우리는 나와 다른 세상의 타인을 100% 이해할 수 없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상대의 입장을 온전히 알 수는 없어도, 적어도 오해하지 않으려는 노력만큼은 가능하다. 상대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잠시 멈추어 짐작해 보는 여유, 그리고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겸손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다면 불만은 금세 비난으로 변하고, 대화는 단절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상론만으로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인사팀의 운영에는 실제로 극복해야 할 약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규정 뒤에 숨어 사람의 이야기를 외면하거나, 권위적으로 소통을 차단한다면 그 비난은 정당하다. 동시에 구조적으로 인사팀이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인사팀은 회사의 입장을 제도로 구현하는 부서이자, 직원들의 요구를 제도 속에 담아야 하는 이중의 위치에 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자리, 그래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다. 나는 오랫동안 그 내부와 외부를 모두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모순이 얼마나 큰 긴장을 낳는지 몸으로 경험했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은 내가 겪었던 수많은 장면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성과급 산정의 불투명함, 협상 자리에서 ‘사측’이라 불리던 기억, 규정만을 붙잡는 관료주의적 태도는 그중 대표적인 사례들일뿐이다. 앞으로 나는 이와 같은 구체적 장면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또 누군가에게는 낯익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인사팀이 왜 비난을 받는지 더 정확히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이 글을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대화를 위한 시도로 쓰고 있다. 인사팀의 안과 밖을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 최소한 비난을 하더라도 사실 위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오해에서 비롯된 분노는 해답을 낳지 못한다. 그러나 정확한 맥락을 짚어낸 비판은 서로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인사팀은 앞으로도 욕을 먹을 것이다. 다만 그 욕이 무지가 아니라 이해에서 비롯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원망을 넘어 조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을 믿으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