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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6개월 (2부)

by 세템브리니

퇴직 후 첫 여행


바래오시다길. 남해바래길의 첫 번째 코스다. 남해바래길은 경남 남해군 전역을 잇는 도보 여행길로, 자연과 마을, 역사와 삶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전체 길이는 약 263km에 이르며, 본선 16개 코스와 지선 7개 코스로 구성된다. 본선 코스는 섬 전체를 잇는 순환 종주형으로 설계되어 남해의 정취를 둘러보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바래’는 남해 어머니들이 물때를 맞춰 갯벌에서 파래와 조개, 미역 등을 채취하던 일을 뜻하는 토착어라고 한다.


남해를 첫 번째 여행지로 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바다와 산의 조망이 적절히 섞여 있으면서도 사람이 붐비지 않은 곳. 남해는 그 조건을 완벽히 갖춘 곳이었다. 나는 1코스 바래오시다길을 시작으로 섬 남쪽으로 이어지는 앵강다숲길과 다랭이지겟길까지, 총 40km를 2박 3일간 걷기로 계획했다. 출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이자 대학 후배가 합류를 희망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 파트너가 되어, ‘어서 오시다’라는 따뜻한 이름의 길 위를 함께 걷기 시작했다.


남해의 봄은 맑고 찬란했다. 회색 도시와 극명히 대비되는 목가적인 풍경, 흙과 풀의 냄새가 뒤섞인 시골의 내음이 마음을 단숨에 풀어냈다. 봄바람에 이끌려 한발 한 발 내딛는 순간, 나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도보 여행이 처음인 동행도 떠남이 주는 설렘에 들떠 있었다. 평소 시니컬함을 개성으로 삼던 그조차, 이 길 위에서는 유난히 부드러워 보였다. 우리는 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걷는 행위 그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걷기를 나의 취향으로 만든 책이 두 권 있다. 하나는 장 자크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다.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블로그 닉네임을 ‘고독한 산책자’로 정하기도 했다. 루소는 걷기를 통해 세상으로부터의

거리 두기를 실천했다. 그는 인간관계의 피로와 세속적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걷기를 선택했고, 그 속에서 오히려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인식했다. 특히 “나는 걸을 때에만 생각할 수 있다"라는 고백이 오래 남았다. 그는 생각이란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리듬을 찾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 했다. 루소에게 걷기는 고독의 징벌이 아니라, 고독의 해방이었다.


퇴직을 결심했을 때 나 역시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둘 필요를 느꼈다. 너무 많은 약속, 사람, 만남이 내 삶을 피로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모든 소음을 벗어나야만 나의 중심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걸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앉아서 하는 생각보다 훨씬 생동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실제로 회사 생활 동안 일이 막히거나 사람 관계로 지칠 때면, 짧은 산책이 언제나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었다. 그래서 걷기는 내게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하나의 철학적 행위로 자리 잡았다.


다른 한 권은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이다. 이 책은 걷기를 단순한 이동이 아닌, “생각이 움직이는 속도”로 바라본다. 솔닛은 말한다. “걷기는 생각의 자연스러운 속도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리느라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잊어버렸다.” 나는 그 문장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는 걷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길 위의 인간’ 임을 일깨운다. 걸음의 속도는 곧 마음의 속도이며, 세상을 이해하는 속도이기도 하다. 『걷기의 인문학』을 읽으며 느낀 건, 걷기야말로 삶의 리듬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번 남해 여행을 준비하며 생각했다. “무작정 걸어보면 언젠가, 다시 나 자신을 만나는 순간이 오겠지.”


‘바래오시다’의 인사말처럼 부드럽게 시작한 여정은 앵강만을 따라 이어지는 10코스 앵강다숲길과, 가천다랭이마을을 품은 11코스 다랭이지겟길로 이어졌다. 사흘 동안 약 42km를 걸었다. 하루 종일 걷는 행위가 몸에 익어가는 둘째 날이 지나면, 이상하게도 눈동자가 맑아지고 머릿속이 정리된다. 걷기는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고, 단순함은 다시 평온을 낳는다. 적당한 무게의 가방을 메고 일정한 리듬으로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이 동시에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여행은 깨달음도 남겼다. 함께한 파트너는 평소 친한 친구였지만, 여행에서는 차이가 더 뚜렷했다. 그는 긴 도보에 익숙지 않았고, 무릎 통증으로 일찍 지쳐갔다. 해변에 앉아 휴식할 때조차 그는 눈앞의 풍경보다 휴대폰 화면에 집중했다. 숙소에서도 늦은 밤까지 유튜브를 시청했다. 나는 그 작은 불빛이 불편했다. 여행 둘째 날 밤쯤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함께 걷는 여행보다, 때로는 혼자 걷는 여행이 더 진실할지도 모른다. 걷기의 본질은 누군가와 맞추는 리듬이 아니라, 자신의 리듬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저희 출판사와는 맞지 않습니다”


며칠 전 H출판사로부터 받은 메일의 내용이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회신을 받기도 했다.

“내부 논의를 거친 결과, 매거진의 지면과 구성에 맞춰 일부 원고만을 선정하게 되었으며, 아쉽게도 이번에는 선생님의 원고가 최종 선정되지 못했음을 안내드립니다.”


퇴직 후 여섯 달이 흘렀다. 남해바래길로 시작한 여행은 제주, 뉴욕, 포르투, 오사카로 이어졌다. 걷고, 머물고, 돌아와 글을 썼다. 어느 정도 분량이 쌓이자 출판사와 잡지사에 원고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늘 정중한 거절이었다. 최근엔 글쓰기 강의도 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강사의 온라인 강의부터,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작가의 수업까지. 모두 훌륭한 강의였지만, ‘글을 쓰는 일’과 ‘책을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세계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세 곳의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지만, 관심을 보인 곳은 없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알고 있었다. 아직 내 글이 책으로 묶일 만큼 완성되지 않았다는 걸.


글쓰기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회사에 다닐 때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책을 읽고, 그 책의 문장을 붙잡아 생각을 쏟아내곤 했다. 출퇴근길,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메모 앱을 열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자, 한 문장을 길게 이어가기조차 버거워졌다. 지금까지 써놓은 글도 통일된 방향이 없다. 논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에세이라고 하기엔 형체가 모호하다. 내가 독자라도 이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런데도 쓰고 싶다. 이게 가장 큰 문제이자, 내가 계속 붙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며칠 전, H출판사에 원고와 기획서를 함께 보냈다. 그곳은 내가 자주 가는 북토크의 저자가 책을 내는 출판사이기도 하고, 대표를 지인 통해 소개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예외적인 통로로 무언가를 얻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메일 투고—으로 문을 두드렸다. 다음날, 메일함에 도착한 답장은 정중했지만 단호했다. “저희 출판사와는 맞지 않습니다.” 그 한 문장 속에 “아직은 부족합니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는 듯했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작가의 문턱이 그렇게 쉽게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은 안심시켰다.


그런데 우연인지, 인스타그램을 열자마자 H출판사의 광고가 내 피드 맨 위에 떴다. 제목은 다름 아닌 『죄송하지만 저희 출판사와는 맞지 않습니다』. 거절 메일을 보낸 바로 그 출판사가 낸 책이었다. 출판사의 거절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조언서라 했다. 너무 공교로운 타이밍이었다. ‘하필 지금, 하필 이 광고라니.’ 씁쓸했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나는 결국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거절을 대면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기보다, 거절의 순간에도 나를 비춰보려는 마음으로.


퇴직 후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시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남해의 바람과 포르투의 거리, 도서관의 정적 속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그냥 흩어져버릴까 봐.

남해를 걷던 봄날의 햇살,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들었던 Jay-Z의 ‘New York’,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향해 떠났다가 포르투에서 발을 돌렸던 그날까지. 내가 멈춘 순간들마저도 모두 ‘걷기’의 일부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최근 다시 구직을 시작했다. 돈이 없어서도, 아내의 권유 때문도 아니다. 여전히 글을 쓰는 시간이 행복하지만, 소득 없는 자유가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생겼다. 인사(HR)라는 내 전문성을 완전히 놓아버려도 될까. 그런 고민이 나를 다시 현실로 끌어당긴다. 하지만 지난 6개월 동안 분명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이제 ‘일하는 사람’이자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쓰는 행위가 언젠간 일로 연결되길 바라지만 조급하진 않다.


앞날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래도 나는 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다시 내 방식대로 부딪혀 나갈 것이다. 최근 투자한 주식이 40% 넘게 올랐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삶에 글쓰기가 언제나 함께 하리라는 확신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다시 걸어보려 한다. 이번 여정에는 문장이 동행한다.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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