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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6개월 (3부)

아내와 함께 뉴욕 여행

by 세템브리니


뉴욕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안에서


뉴욕에는 케이시 한이라는 한인 2세대 여성이 산다. 그녀의 부모는 1970년대 초반 한국에서 이민해 뉴욕 퀸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기를 바란다. 케이시는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부모가 그려온 ‘성공의 경로’—로스쿨 진학이나 안정된 직장—를 따르지 않고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하며 여러 관계 속에서 방황한다.


그녀는 한국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주류 사회에 속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 사회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피부색, 이민자 배경, 성별이 언제나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체감하며 살아간다.


케이시의 친구 엘라 심과 동생 티나 한 역시 같은 이민 2세대이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살아간다. 엘라는 전통적이고 모범적인 경로를 밟으려 하고, 티나는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삶을 찾아 나선다.


케이시는 부모와의 갈등, 친구와 연인 관계의 부침, 그리고 커리어와 정체성에 대한 내적 싸움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속하는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가’를 탐색한다. 이 여정 속에서 전통적인 부모 세대와 미국에서 자란 딸 세대 간의 간극, 성공과 실패, 좌절과 선택이 얽힌 복잡한 감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위 내용은 이민진 작가의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의 줄거리다. 제목은 문자 그대로 회사에서 계약이 성사되면 직원들에게 점심을 사주는 관습에서 비롯됐으며, 주인공이 이민자 2세대로서 그 ‘특권의 세계’에 속하지 못한다는 소외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소설을 나는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 해외로 나설 때면, 그곳이 여행이든 출장이든, 방문지의 배경이 되는 책을 미리 읽는 습관이 있다. 처음 가보는 뉴욕은 세계의 중심이라 불리지만, 나에게는 낯선 도시였다. 내가 가진 사전 지식이라곤 『호밀밭의 파수꾼』 속 센트럴파크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뉴욕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킬 자극이 필요했고,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그 목적에 딱 맞는 작품이었다.


어릴 적 나에게 미국은 ‘외국’을 대표하는 나라였다. 내 또래 친구들과 나는 길을 지나가는 서양인을 보면 “와, 미국인이 지나간다”라며 신기해했다. 토요일에도 오전 수업을 하던 초등학교 시절,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TV에서 미국 드라마를 보며 서양 문화의 낯섦을 조금씩 익혀갔다. 영어 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 시절, 은연중에 형성된 친미적 호감 덕분이었다.


물론 미국에 대한 시선이 언제나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해 우리나라 여학생이 희생되었을 때, 나 역시 분노로 반미 시위에 참여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카투사로 미군 부대에 입대했다. 아이러니했지만, 그곳에서 다시 미국이라는 나라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미군 기지에서 근무하며 느낀 것은, 인종이나 출신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성과를 중시하는 문화였다. 미군 기지에서 소속된 카투사 사회에서는 대학 서열이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었다면, 미군 부대에서는 실력과 책임감이 기준이었다. 서울 상위권 대학 출신의 카투사들 틈에서 중하위권 대학을 나온 나는 처음엔 위축됐지만, 미군들과 일하며 오히려 능력으로 평가받는 경험을 했다. 그 덕에 시니어 카투사로 선발되어 그 무리의 대표가 되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인생의 첫 ‘환경 극복 경험’이었다. 전역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함께 복무한 미군 동료들과 형제처럼 지내고 있으니, 카투사 근무는 내게 미국에 대한 호감을 굳히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그래서였을까.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속, 미국 사회의 중심에서 동시에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내게 낯설지 않았다. 미군 부대에서 느꼈던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소설 속 케이시처럼 나 또한 경계의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두 권에 달하는 분량을 비행기에서 다 읽을 즈음, 뉴욕 공항 착륙 안내 방송이 들렸다. 그렇게 나는 여러 감정이 뒤섞인 채, 미국 경제의 심장부 뉴욕에 첫발을 내디뎠다.


맨해튼의 첫 사흘


공항을 나서자 한인 택시 기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가 지연되어 꽤 오래 기다렸을 텐데,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숙소가 있는 맨해튼까지는 약 한 시간 남짓. 창밖으로 스치는 이국적 풍경과 기사의 유창한 모국어가 한꺼번에 다가오니 잠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기사는 뉴욕 생활이 벌써 20년이 넘었다고 했다. IMF 시절 이민을 왔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문득, 오는 비행기에서 읽은 이민진의 소설 속 한인 이민자 가족이 떠올랐다. 현실의 한인들이 그려진 소설의 풍경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궁금했다.


그는 ‘뉴욕 한인타운’이라 하면 퀸스의 플러싱을 가리킨다고 했다. 1970~80년대, 한국에서 건너온 1세대 이민자들이 맨해튼보다는 집값이 저렴하고 일자리가 가까운 이곳을 터전으로 삼았다고 한다. 세탁소, 식당, 식료품점, 리커 스토어 같은 소규모 자영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한인 커뮤니티를 세웠다. 거리의 간판 대부분이 한국어였고, 교회와 학원이 밀집한 그곳은 ‘작은 서울’이라 불렸다고 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푸젠성과 광둥성, 최근에는 북경과 상하이 출신 중국계 이민자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풍경이 바뀌었다. 그들은 부동산, 식당, 의류, 약국 등 생활 업종 전반을 빠르게 장악했다. 2000년대 중반이 되자 “플러싱은 더 이상 코리안타운이 아니라 차이나타운의 확장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도권이 바뀌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민진의 소설 속 ‘퀸스 세탁소에서 일하며 자식 교육에 모든 걸 걸었던 부모들’이 바로 그 시대의 전환기에 살았던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인 1세대가 땀으로 일궈놓은 터전이 다른 민족에게 넘어가면서, “노력하면 미국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다"라는 믿음이 흔들리던 시기였다.


기사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중국 사람들은 똘똘 뭉쳐서 사는데, 한국 사람들은 각자 잘난 체하느라 옛날처럼 서로 돕지 않아요.” 그의 말에 잠시 웃음이 났다. 해외여행 중 한국인을 마주치면 반가워하기보다 피하려 한다는 기사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랐다. 어쩌면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한인 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사이, 차는 숙소 앞에 도착해 있었다.


맨해튼은 TV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사방으로 솟은 고층 빌딩,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 그리고 어깨에 쇼핑백을 멘 관광객들. 도시의 화려함보다는 그 속도를 먼저 느꼈다. 짐을 풀자마자 우리는 첫 목적지로 향했다. 바로, “이곳이 없었다면 뉴욕 사람 절반은 정신병에 걸렸을 것”이라 불리는 센트럴 파크였다.


센트럴 파크는 맨해튼의 심장부에 자리한 거대한 공원이다. 빽빽한 빌딩숲 속에서 숨을 고를 수 있게 만든 도시의 폐처럼 보였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구두를 벗고 잔디밭에 앉은 직장인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공원의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했다. 면적이 약 3.4㎢, 여의도 전체보다 약간 더 크다. 서울 여의도의 ‘공원’이 아니라, 여의도 전체가 공원으로 변한 것과 비슷했다. 인공호수, 산책로, 자전거 도로, 동물원, 조각공원, 공연장, 아이스링크, 그리고 숲과 언덕이 이어져 있었다. 하나의 도시 안에 또 다른 소도시가 들어앉은 느낌이었다.

아내와 나는 사흘 내내 센트럴 파크를 걸었다. 숙소와 가까운 것도 있었지만, 녹색의 압도적인 기운이 우리를 끌어당겼다. 하루는 남동쪽, 하루는 서쪽, 하루는 북쪽—이렇게 조각을 나눠 천천히 둘러봤다. 사실 공원 둘레를 따라 이어지는 10km 러닝 코스를 뛰어보는 게 내 버킷리스트였지만, 여행 직전 얻은 장경인대 증후군 탓에 걸음으로 대신해야 했다.


센트럴 파크는 19세기 중반, 도시화가 폭주하던 시기에 “인간이 도시 속에서도 자연과 관계 맺을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문명의 속도에 맞서는 자연의 완충지대였다. 여의도 역시 인공섬이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그 철학은 정반대다. 여의도는‘국가의 상징이자 자본의 중심’을 전제로 만들어진 공간이고, 그 안에 공원이 들어온 구조다. 반면 센트럴 파크는 ‘자연이 중심이고 도시가 그를 감싸는 형태’다. 두 공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그렇게 달랐다.


센트럴 파크를 거닐다 보니, 도시의 빠른 리듬이 잠시 멈췄다. 잔디밭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은 빌딩숲 속과 달랐다. 여의도에서 점심시간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직장인과는 결이 다른, 삶의 여유가 느껴졌다. 나는 그 풍경을 보며 뉴욕 시민들이 누리는 어떤 특권—도시 속에서 자연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부러워했다.


(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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