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를 다시 소개합니다

브런치북 『자소설』 연재 이유

by 세템브리니

저는 관심을 받으면 살아나는 사람입니다. 흔히 ‘관종’이라고 부르는 성향이지요. 그렇다고 이 단어를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 제 이야기에 ‘좋아요’를 눌러주면 마음이 밝아지고 생각도 또렷해집니다. 관심을 받고 싶다는 욕망은 저에게 숨기고 싶은 결함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입니다. 저도 저 자신을 알아가는 중이니까요. 다만 그 관심이 제가 가진 무엇이나 타인으로부터 비롯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생기는 관심은 저에 대한 관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인의 관심에 대한 욕망은 늘 조심스럽게 저 자신을 향해 있습니다. 한때는 그런 경향을 분석한 ‘나의 관종 성향 분석 보고서’라는 글을 써서 개인 블로그에 올려두기도 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 글 역시 나를 설명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작은 시도였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여러 기업에서 인사 업무를 해왔습니다. 흔히들 인사를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제가 마주한 일은 조금 달랐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다른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일이었습니다. 조직은 언제나 일정한 기준을 세우고 사람들은 그 틀 안에서 각자의 얼굴을 만들어 냅니다. 그 안에서 관계는 복잡하게 얽히고 기대나 외로움이 동시에 생겨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Human Resource보다 Human Relation이라는 표현이 더 와닿게 느껴집니다. 저는 태생적으로 사람의 표정과 말투, 말 사이의 공백에서 보이는 기질을 관찰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관종이라는 성향과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맞물리면서 인사 업무는 제게 자연스럽게 적성이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채용은 저를 가장 오래 설레게 한 분야였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쓴 글 한 장을 받아 들고 그의 삶을 조심스럽게 상상하는 순간은 늘 새롭고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면접에서 마주하는 눈빛과 대화에서는 글로는 보이지 않던 사실이 갑자기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회사라는 공간은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 굴러가는 곳이라서 개별의 서사는 언제나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읽을 때마다, 면접에서 정해진 질문을 던질 때마다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 사람의 실제 이야기는 이 글보다 훨씬 크겠구나.”

저 역시 여러 차례 면접을 경험했습니다. 어떤 때는 면접관이었고 어떤 때는 면접자였습니다. 어느 쪽에 서든 질문하고 답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강점이나 약점을 정리해 말해 보라고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사실은 성의 없는 질문에 가깝습니다. 좋은 답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은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서로의 말을 온전히 믿기 어렵게 만듭니다. 중요한 내용일수록 짧은 답으로 확인하기보다 한 사람의 삶 속에서 반복해서 드러나는 장면을 통해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질문을 더 좋아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왜 좋아합니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는 질문은 사람의 표정을 바꾸고 말투를 바꿉니다. 기쁨과 쑥스러움과 의지가 한꺼번에 섞이며 그 사람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저는 그 표정을 믿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순간 사람은 가장 자기다운 얼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쌓일 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이 책을 쓰기로 한 이유도 결국 그 믿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저는 관심을 받고 싶고 동시에 저를 알리고 싶습니다. 질문이라는 형식은 그 두 마음이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자기소개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삶을 질문의 구조로 다시 정리한 개인적 기록이며 동시에 실험적인 형식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모두 ‘타인’을 알아가는 데 유용한 질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을 이해할 때 필요한 질문은 결국 자신을 들여다볼 때도 필요합니다. 이 책을 구성하는 질문과 답은 독자가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도,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도, 혹은 스스로를 정리하고자 할 때도 충분히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질문은 상대를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하고, 어떤 답변은 내 감정을 다시 묻는 자리로 데려갑니다.

질문으로 시작하는 대화가 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실용적인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이 자기 이해를 넘어 타인을 이해하는 길잡이로도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욕심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좋은 질문 하나가 좋은 대화를 만들고, 좋은 대화는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는 사실을 저는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 안에서 사실과 기억, 작은 허세와 약간의 픽션은 서로 겹치며 진실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진실을 꼭 사실과 동일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어떤 장면은 압축될 때 더 정확해지고, 어떤 이야기는 비틀렸을 때 비로소 본질에 가까워집니다. 아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에게 귀여운 허세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 작은 허세가 저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됐다는 말과 함께요. 저의 그런 허세는 이 책에도 조금씩 스며들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거짓이나 속임수는 아닙니다. 제가 전달하고 싶은 진심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방식일 뿐입니다.

저는 잘 다니던 회사를 최연소 임원이라는 직책을 얻은 지 일 년 만에 떠났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에서 점점 자라던 물음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일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휴식은 너무 짧아 나를 돌아볼 시간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멈춰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은 퇴사 후 일곱 달째입니다. 예상했던 자유는 분명 달콤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사회적 자리가 사라진 후의 고요함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무엇인가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마음이 이 책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나의 자기소개서를 써 보기로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책은 세 개의 흐름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첫 번째 흐름에서는 저를 만든 장면들을 돌아보며 지금의 기질과 가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살펴보고,

두 번째 흐름에서는 일과 관계에서 배웠던 것들과 흔들림의 순간들을 정리해 보며,

마지막 흐름에서는 지금의 나를 이루는 관심사와 앞으로의 방향을 천천히 그려 보려 합니다.

이 책을 통해 큰 결론을 내리려는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글을 다 쓰고 나면 스스로를 조금 더 폭넓게 설명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한 사람을 이해하는 작은 창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좋은 질문을 어떻게 던지고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실용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제가 앞으로 어떤 삶을 선택하든 이 책이 저라는 존재를 설명해 주는 기록으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이 자소서가 저의 두 번째 출발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