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7일
하루에 몇 줄의 문장과 만날까. 읽고, 쓰고, 생각하고, 대화하는 행위는 글자로 시작해 문장으로 이어진다. 적어도 수백 개의 문장이 하루 동안 나를 지나간다. 나는 읽기를 정체성으로 산다. 책이든, 블로그든, 기사든, 과거에 내가 쓴 글이든, 글을 읽으면 갖가지 잡념이 떠오른다. 잡념을 문장으로 붙들면 그럴듯한 생각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어디엔가 기록하지 않으면, 손에 쥔 모래처럼 언젠가는 모두 흘러가 버릴 것이다.
그래서 써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문장일기’. 부제도 있다. ‘수없이 많은 문장을 만나며’. 스웨덴의 한 청소 노동자가 있다. 다섯 아이를 홀로 키우며 청소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는 자신의 일상과 고단함, 가족사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기록한 에세이를 썼다. 제목은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다. 부제는 그 책에서 빌려왔다. 노동과 일상, 가족사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보고 싶었다. 이미 여러 소셜미디어에 그런 짧은 글들을 오래 흩뿌려 놓았다. 새로울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형태를 갖추지 않았을 뿐, 나는 오래전부터 쓰는 인간으로도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김영란법으로 유명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자신의 독서법을 소개한 적이 있다. 사방에 여러 책을 놓아두고 틈날 때마다 읽는 방식이다. 여행을 갈 때도 여러 권의 책을 챙긴다고 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나 역시 김영란식 독서 스타일에 가깝다. 지나와 생각해 보면, 나는 장면에 대한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이를테면 신입사원 면접 자리에서 소속 팀장이 던졌던 질문이라든지, 순종적이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대들던 순간에 무슨 말을 했는지 같은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장면들을 불러내는 문장을 자주 만난다. 그런 순간들의 기록으로 일기를 쓰고 싶다.
일어나자마자 들여다본 스마트폰 화면에 블로그 알림이 떠 있다. 이웃이 새 글을 올렸다는 표시다. 평소 독서 후기를 올리는 사람인데 개인적인 친분은 없다. 다만 글이 깔끔하고 단정해서 종종 읽는 편이다. 오늘 소개된 책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다. 빅터 프랭클이나 프리모 레비의 수용소 체험담은 감명 깊게 읽었지만, 이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나는 읽을 책을 쌓아두는 앱에 이 책과, 이웃이 함께 추천한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추가한다.
“아침 식사 시간 십 분, 점심과 저녁 시간 오 분이 유일한 삶의 목적인 것이다.”
블로그 이웃이 책에서 강조한 문장이다. 23쪽이 출처라고 적혀 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주인공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곳에서의 삶을 이어가는 흔적처럼 느껴졌다. 그 문장을 읽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예전에 비슷한 문장을 소셜미디어에 남긴 적이 있다. “출근 전 한 시간, 점심시간 사십 분, 퇴근 후 한 시간이 내가 살아 있는 시간이다.” 여기서 말한 시간은 읽는 시간이었다.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의 일상 속에서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담긴 문장이었다. 당시 나는 오전에는 집중이 필요한 비문학을, 점심에는 구독하던 르몽드 같은 월간지나 일간지를, 저녁에는 쉬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읽었다. 그렇다고 내가 했던 일이 수용소에서의 노동처럼 죽을 만큼 끔찍하지는 않았다. 일에서 재미를 느낀 순간도 많았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남길 때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그것이 내 정체성이라고도 느꼈다.
오늘은 기상 기준 시간인 오전 6시 30분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눈이 떠졌다. 어제 오랜만에 마신 소주와 맥주 덕분이다.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장일기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도 그랬지만, 지난주에 읽은 후안옌의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 역시 이 생각에 영감을 주었다. 노동과 일상,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 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