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8일
돌아오는 주말부터 시작하는 독서모임에서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는다. 유명한 대작인 『전쟁과 평화』다. 인생 책으로 꼽는 사람이 많아 계획엔 있었으나 실제로 읽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 주는 1권을 읽고 대화를 나눈다. 700쪽을 1월 1일부터 읽기 시작하니 하루에 70쪽이 최소 분량이다.
작품에서 로렌스 스턴이라는 18세기 영국인 소설가가 등장한다. 톨스토이는 젊었을 때 스턴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고, 그의 작품 일부를 번역했다고도 한다. 실제로 『전쟁과 평화』는 스턴의『젠틀맨 트리스트람 샌디의 삶과 견해 』라는 작품에서 형식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전쟁과 평화』에서 언급되는 스턴의 문장이 내 시선을 붙든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베푼 선행이라기보다 우리가 그들에게 베푼 선행 때문이지.”
이럴 수가!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를 이보다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다.
이런 멋진 문장을 남긴 스턴에게 관심이 생긴다. 『전쟁과 평화』를 잠시 덮어두고 로렌스 스턴으로 검색을 시작한다. 이미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로렌스 스턴 명언’이라는 검색어가 따라온다. 나의 행동에 주의를 주는 문장을 하나 더 발견한다.
나는 2014년 결혼할 때 수중에 돈이 500만 원밖에 없었다. 아내가 살던 열두 평짜리 빨간 벽돌 전셋집에 몸만 들어갔다. 가전제품은 고사하고 결혼반지도 맞출 여유가 없었다. 아내 것만 가까스로 마련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여유 자금이 생길 때마다 신혼 때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이것저것을 사줬다. 나라면 쳐다도 못 보는 비싼 옷과 비싼 차도 포함됐다. 결혼식 때 못해준 게 어느 정도 보상됐다 여겼을 때, 이 만큼이면 충분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자고로 먹이를 주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다. 서서히 그런 마음이 드는 나에게 스턴은 진심 어린 충고를 하고 있었다.
“수중에 넣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얻은 것은 아니다.”
이번엔 대학 때 일화가 떠오르는 문장이다. 칸트의 ‘정언명령’과 비슷하다.
"모든 일에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일에서도 그를 믿지 마라.”
대학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지금 자기 분야에서 성공해 이름 석 자를 검색창에 올리면 근황이 나오는 인물이 됐다.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을 한 달 수입으로 벌 만큼 금전적으로도 성공한 친구다. 그런 친구를 내가 멀리하게 된 계기가 있다. 대학 때 그의 학교로 운동을 하러 갔다. 운동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을 때였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그는 갑자기 세면대에 소변을 봤다. 나는 그의 돌발 행동에 매우 놀랐다. 아무리 젊은 날의 치기였지만, 분명히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내가 없어도 비슷한 행동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보지 않아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감각, 즉 양심을 그 친구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후 그에게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의 당혹스러움이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그를 인정하기 어려운 감정이 남았다. 지금 그와 멀어지게 된 것도 어쩌면 그 장면이 내 무의식에서 그와의 거리를 벌려놨기 때문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책에는 이런 문장도 이어진다. 내가 이 문장에 완전히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성공하는 사람은 비열하고 추악한 인간들뿐이죠.”
다시 『전쟁과 평화』1권으로 돌아온다. 1권의 총 3장으로 구성된다. 1장은 아무리 들어도 외워지지 않는 등장인물 소개로 정신이 없었다면, 2장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는 듯한 장면 묘사로, 나도 마치 아우스터리 전투에 참여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이제 마지막 3장을 시작하며, 내일모레 모임까지 분량의 여유가 있어 장면을 음미하다 나를 휘어잡는 오늘의 마지막 문장을 만난다.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바라지 마라. 애써 구하지도 말고 근심하지도 말며 부러워하지도 마라. 네가 인간의 미래와 너의 운명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언제라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살아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볼콘스키 가문의 딸이 마음속으로 되뇌는 주문이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렇지만 신을 찾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욕망을 신에 투영하는 종교인의 행태를 비판스럽게 바라보면서도, 내가 궁지에 몰렸을 때 신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쩌면 내가 비판하는 부류에서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신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비종교인이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고뇌하던 오래된 물음이다.
이 문장은 읽고, 줄을 치고, 아이폰 메모장에 옮기고, 다시 읽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애써 구하지도 근심하지도 말며, 부러워하지도 말라. 내가 앞일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언제라도 무슨 일이 벌어져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살아라.
내가 신에게서 기대했던 바로 그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