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9일
브런치북에 『자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직장에서 15년 동안 인사 업무를 하며 수없이 많은 자기소개서를 읽었다. 그중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 글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를 가감 없이 드러낸 글이 입사지원서로 과연 매력적일까. 아마도 나처럼 호기심 많은 인사담당자가 아니라면, 튀지 않고 무난한 자소서를 더 반길 것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글을 읽으며 답답함이 남았다. 동시에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진솔하게 소개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연재를 시작했다. 『자소설』은 그렇게 시작된, 나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자소설』은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에세이는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이라고 설명된다. 작가의 개성과 인간성이 드러나고, 유머와 위트, 기지가 담기는 글이라고도 한다. 다만 내가 쓰는 글은 100퍼센트 사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E. H. 카는 역사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선택된 사실들의 집합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기억하는 나의 역사 역시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소설처럼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억이라는 과정에서 과장되거나 허세 어린 서술이 스며들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진실을 드러내는 데 반드시 사실만이 유일한 조건일 필요는 없다.
에세이라는 장르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고백하자면, 이 형식이 16세기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의 『에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우연히 사라 베이크웰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으며 몽테뉴를 만났고, 그를 소개하는 문장을 읽는 순간 깨달았다. 그가 내가 쓰는 글의 대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덕분에 나 역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을 간결하게 적어 내려가며,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사물과 정신 상태를 포착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사라 베이크웰은 말한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타인이 각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은 언제나 존재해 온 것이 아니며, 그 거울을 처음 착상한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미셸 드 몽테뉴였다고. 몽테뉴 어르신, 감사합니다!
나를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을 여섯 개의 장으로 나누고, 각 장마다 일곱에서 여덟 개의 큰 질문을 배치했다. 그리고 각 질문은 다시 세 개의 세부 질문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1장은 ‘나의 성장 배경과 성격’이고, 그 마지막 질문은 ‘나를 설명하는 한 문장’이다. 이 질문은 다시 ‘나를 설명하는 문장은 무엇인가’, ‘그 문장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앞으로 그 문장을 바꾸고 싶은가’라는 세 갈래로 나뉜다.
이렇게 여섯 개의 장을 따라 답해 나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이 연재가 책으로 묶이게 된다면, 나는 세상에 나라는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내놓는 셈이다. 작가를 꿈꾸며 몽테뉴처럼 머리를 스치는 생각을 세상과 나누고 싶은 나에게, 이 시도는 충분히 의미 있는 첫 책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도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다.
오늘은 1부의 마지막 글, ‘나를 설명하는 문장’을 구상하는 날이다. 살면서 나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문장들이 떠오른다. 오죽하면 그런 문장들로 일기를 써보자며 ‘수없이 많은 문장을 만나며’라는 또 다른 브런치북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다만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한 문장을 고르려 하니 범위는 좁아졌다. 젊은 시절, 생의 의지가 넘치던 때에 만났던 문장들이다. 니체의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같은 말들이 떠올랐다. 몇 문장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하나를 고르기로 했다. ‘콩.자.반’이다.
DJ DOC라는, 우리 시대를 뜨겁게 달군 그룹이 있다. 데뷔 초에는 비슷비슷한 댄스곡으로 알려져 있어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 2000년에 발표한 5집 《The Life… DOC Blues 5%》를 듣게 됐다. 노래와 가사는 당시 내 취향을 정확히 건드렸고, 힙합이라는 장르로 나를 이끌었다. 그때 나는 고3이었다. 유난히 시끄러웠던 사춘기가 저물어가던 시기였다. 손을 놓은 공부로는 앞이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인문계 출신에게 기술 같은 게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런 복잡한 시기에 사회를 거침없이 비판하던 그들의 노래는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앨범의 마지막 곡은 〈Alive〉였다. 여러 힙합 팀이 참여한 곡으로, “우리 아직 안 죽었다”는 정신이 분명한 노래다. ‘콩자반’은 이 곡의 가사를 각 문장의 첫 글자로 줄여 만든 말이다. 가사는 이렇다.
콩,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우리네 인생.
자,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야. 바른 말이지, 모두 옳은 말이지.
반, 반찬 없는 밥은 맛이 없듯이 노력 없는 성공은 그 빛이 바래지 않을까? 하는 나 졸라 짧은 생각이었음.
이 세 글자를 떠올리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당시 내 방황의 끝을 탐탁지 않게 보던 친구가 있었다. 고3 때 반 부반장이었고, 공부 좀 한다고 표정이 건방져 보이던 친구다. 어느 날 방과 후 청소를 피해 그냥 돌아가던 길에 그가 나를 불러 세웠다. “너도 청소야. 마무리하고 가.” 순간 화가 치밀었다. 감히 나를 통제하려 들다니. 나는 그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들었다. 공부만 잘하는 놈에게 내가 누군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이상하게도 힘이 빠진 쪽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그 순간 분명해진 생각이 있었다. 힘으로 이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 녀석이 잘하는 걸로 이겨야지.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어이없이 가까워졌다. 심지어 나는 책상도 맨 뒷자리에서 그의 옆인 맨 앞자리로 옮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Alive〉의 가사를 정확히 따라 부르는 걸 들었다. 이런 노래를 모범생이던 그가 알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가사를 곱씹는 태도 역시 인상적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그는 공부를 잘했을 뿐 나처럼 편부모 가정과 집안 사정으로 마음고생을 제법 한 친구였다.
그날 이후 우리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화장실이나 매점에 가며 그 가사를 수도 없이 흥얼거렸다. 그때의 우리는 이 거지 같은 세상을 노력으로 바꿔보자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무서울 게 없던 시절이었다. 세월은 그때까지의 시간만큼 한 바퀴를 더 돌아 나이를 먹은 지금도, 인생을 관통하는 한 문장을 떠올리라니 그 장면이 가장 앞다퉈 떠오른다. 이 이야기를 이번 『자소설』 연재에 담아볼까 한다.
그는 졸업 후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나는 삼수와 편입 끝에 가까스로 대학 문턱을 넘었다. 그는 대학 시절 결성한 인디밴드의 보컬이 되어 예술가의 길로 갔고, 나는 여러 회사를 거치다 글을 쓰겠다고 나섰다. 지금도 우리는 가끔 만나 인생과 예술, 정치와 사회에 대해 떠들어댄다. 여전히 같은 결을 공유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