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침묵이 말을 걸어올 때

2026년 1월 12일

by 세템브리니

1.

아내와 딱 한 번, 이혼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 리테일 회사 인사팀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회사는 노사 분규가 정점에 달해 있었고, 내가 경험해 온 제조업 현장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당시 노동조합의 투쟁 방식은 집단보다 개인 대 개인의 소모전이 도드라졌다. 이를테면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이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상사에게 노사 갈등을 명분 삼아 대들고 맞붙는 식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노사 관계 담당자로 온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엔, 당시의 나는 역량이 한참 부족했다.


집에 돌아오면 입을 꾹 다물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은 단 한마디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말문이 트이는 순간, 간신히 막아둔 둑이 한꺼번에 무너질 것 같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집안일에는 점점 소홀해졌고 말수도 줄었다. 그저 이 지독한 노사 분쟁이 하루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아내도 답답했을 것이다. 아내는 평소답지 않게 사소한 일에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아내의 감정을 받아낼 여유까지는 없었다. 우리는 사사건건 부딪쳤고, 마침 찾아온 아내의 생일에 축하한다는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아내는 그런 서러움을 정면으로 맞았다. 그 과정에서 어금니가 빠졌고, 머리카락도 눈에 띄게 빠졌다.


2.

아내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잘도 풀어놓는다. 그런데 몇 년 전 회사를 옮긴 뒤, 그런 아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첫 이직이었고 회사 적응이 쉽지 않았던 시기였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힘들다는 말도 쉽게 하지 못했다. 점점 흙빛으로 변해가는 얼굴을 보며, 나는 아내가 이 회사를 오래 버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회사에서 15년을 일하다 옮긴 외국계 회사였다. 매일 쏟아지는 영어 메일과 외국인 직원들과의 잦은 미팅은, 아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외국어의 압박이었다. 게다가 아내의 포지션은 책임자였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이, 모든 부담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자리였다.


나는 아내에게 석 달만 버텨보라고 말했다. 잦은 이직으로 적응에 익숙해진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회사는 세 달만 지나면 보일 게 다 보였다. 아내는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고통은 환경이 바뀌면서 잠시 겪는 통과의례일 뿐이었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아내의 과묵함을, 말로 꺼낼 수 없는 고통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내 일로 지쳐 있던 와중에도, 꾸벅꾸벅 졸아가며 아내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두 가지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 건 몽테뉴의 『에세』를 읽다가 만난 문장 때문이다. 1권 2장 「슬픔에 관하여」에서 몽테뉴는 극심한 고통에 처한 사람은 온몸이 결박된 듯 얼어붙어,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에 놓인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두 문장을 인용한다. 그 문장들은 당시의 나와 아내를 정확히 비추고 있었다.


“얼마나 뜨거운지 말할 수 있는 자는 그다지 뜨겁지 않은 불 속에 있는 것이다.” — 페트라르카
“작은 슬픔은 말하지만, 큰 슬픔은 침묵한다.” — 세네카


지금의 아내는 다시 수다쟁이가 되었다. 회사에서도 아주 잘 지낸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힘들다, 밉다, 재밌다, 신난다 등,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쏟아낸다. 말 한마디 못 하고 병든 닭처럼 엎드려 있던 때와 비교하면, 이보다 다행스러운 변화도 없다. 말 못 할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된 그녀가, 그 시절 내가 겪었던 시간을 이제야 이해하는 눈치다. 오죽하면 당시에 이도 빠지고 탈모까지 왔겠는가. 직접 겪고 나서야 말조차 나오지 않는 고통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아내를 보며, 한편으로는 ‘쌤통’이라는 생각이 스치는 것도 아주 무리는 아니라고, 나는 솔직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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