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적 효능감

2026년 1월 13일

by 세템브리니

“너는 사람들이 보통 생각만 해보는 일들을 실제로 시도하게 만드는 사람인 것 같아. 우리도 덕분에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등산을 시작했고, 독서의 필요성도 느끼게 됐지.”


지난 주말, 상암동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네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초등학교까지 붙어 지내다 중학교에 진학하며 멀어진 친구다. 이후 삼십 년 가까이 각자의 삶을 살아오다, 마흔이 넘어 다시 가까워졌다.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진 또 다른 친구까지 더해, 셋이 부부 동반으로 만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삼사 년이 흘렀다. 배꼽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 중년이 되어 다시 연결되니, 서로를 향한 소회가 자연스레 깊어진다. 그래서인지 그날 들은 그 친구의 말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최근 들어 의무적으로 사람을 만나야 할 필요가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감초 역할을 하는 걸 좋아했고, 그 덕에 다양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나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고, 어떤 관계는 왜 자연스럽게 멀어지는가. 정답 없는 질문을 붙들고 고민하던 차에, 코 흘리던 시절부터 나를 알던 친구의 한마디가 더 깊이 와닿은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얼마 전에는 예전 직장에서 만난 선배와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가 툭 던진 말에도 오래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관계에 예민한 사람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이랑 지내는 게 좋아. 왜냐면 그들은 선을 넘지 않거든.” 사생활을 침범하는 가족이나, 가까워졌다고 자기만 고수하는 지인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선배의 말이 마음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내 생각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나는 이 감각을 ‘관계의 효능감’이라 부르고 싶다. 효능감은 내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감각이다. 조금 더 풀면, 내가 행동했을 때 실제로 변화가 생기고, 그 결과에 내가 영향을 미쳤다고 느끼는 상태다. 정치 영역에서는 이를 ‘정치적 효능감’이라 부른다. 신중하게 선택한 후보가 정책으로 응답하고, 그 결과가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느낄 때, 사람은 다시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이런 선순환이 정치적 효능감을 키운다.


관계도 다르지 않다. 내가 교류하는 사람이 있고, 나는 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동시에 그도 내 삶에 변화를 준다. 서로가 서로로 인해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며 만족감을 느낀다. 이 만족감이 관계를 지속하게 만들고, 우정을 단단하게 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관계의 효능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한동안 이 감각을 인지하지 못한 채 관계를 이어왔다. 상대를 더 알수록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불편해지는 관계들은 대부분 이 효능감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였다.


어떤 사람을 알게 된 적이 있다. 그는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췄고, 사회적으로도 꽤 책임 있는 역할을 해온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지식과 업적에 끌려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타인의 영향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자신의 속마음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서로에게 큰 의미 없이 스쳐 가는 이야기들로 대화와 만남을 채웠다. 그러다 보니 나는 깨닫게 됐다. 그는 나에게 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시간이 덜 지루할 뿐이라는 사실을. 결국 그 사람도 나에게 지루한 존재가 됐다. 이것이 내가 반복해서 경험해 온 무채색 관계의 패턴이었다.


친구의 말은 나의 선한 영향력을 칭찬하는 말이었지만, 곱씹어보면 내가 더 감동받는 지점이기도 했다. 나는 나로 인해 변하려는 친구의 태도에 더 마음이 간다. 그는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타인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려 늘 귀를 기울인다. 대화를 나눌 때도 자기 이야기를 준비하기보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다. 말의 주도권을 쥐려 하지도 않는다. 오랜 생각 끝에, 바로 이런 태도가 나를 그 친구에게 계속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오늘 읽은 한 블로그에는 ‘나이 들어 친구란’이라는 글이 있었다. “나이 들어 친구란, 불편하게 하는 친구보다 편안하게 하는 친구가 더 좋습니다. 자기 얘기만 하는 친구보다 내 얘기도 들어주는 친구가 더 좋습니다. 머리로 말하는 친구보다 가슴으로 말하는 친구가 더 좋습니다.” 이 문장을 아이폰 메모장에 적어두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로 남아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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