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일찍 가르치면 정말 유리할까

2026년 1월 23일 금요일

by 세템브리니

마흔을 넘기면서 부모가 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자녀 교육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언급되는 과목은 늘 영어다. “영어는 어릴수록 좋다더라”는 말이 거의 상식처럼 오간다.


카투사를 전역했고 외국계 기업에서 오래 일했다는 이유로, 나에게도 종종 질문이 온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하게 키울 수 있을까?” 나는 늘 영어 조기교육에는 신중하라고 말해왔다. 다만 그동안은 개인적 경험에 기대어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경험은 설득력이 있지만, 과학은 아니다.


최근 한 이론을 알게 되면서 그동안의 직관에 배경이 생겼다. 이중언어와 제2언어 습득을 연구한 언어학자 짐 커민스의 이론이다. 커민스는 언어 능력을 자전거에 비유한다. 앞바퀴는 모국어, 뒷바퀴는 외국어다. 겉으로 보면 두 바퀴는 분리돼 있지만, 실제로는 프레임과 체인으로 연결돼 있다. 이 프레임과 체인이 바로 사고력, 독해력, 추론력 같은 인지적 언어 능력이다. 어느 쪽 페달을 밟든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 공통의 구조가 튼튼해야 한다.


커민스는 언어 능력을 두 층위로 나눈다. 하나는 일상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다. “Hi”, “I’m fine”처럼 반복 학습만으로도 익힐 수 있는 영역이다. 이건 굳이 프레임과 체인으로 연결될 필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읽고, 이해하고, 설명하고, 비판하는 능력이다. 이 두 번째 능력은 단순한 노출로는 자라지 않는다. 사고와 독서를 통해 축적된다.


조기 영어교육이 종종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어를 일찍 접하면 발음은 좋아질 수 있다. 간단한 회화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모국어로 사고하는 힘이 충분히 자라기 전에 외국어를 밀어 넣으면, 아이는 단어를 ‘뜻’이 아니라 ‘소리’로만 배우게 된다. 문장은 이해가 아니라 패턴으로 외운다. 읽기는 되지만 생각은 남지 않는다. 이는 언어 능력의 성장이라기보다 훈련에 대한 반응에 가깝다. 마치 앞바퀴가 부실해서 뒷바퀴마저 완전할 수 없는 상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영어를 잘 따라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가, 아니면 생각을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가. 두 선택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순서의 문제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에서 언어를 ‘도구’로 여기는 태도를 경계한다. 언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언어로 사고하느냐에 따라 감각과 사고방식, 삶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들은 언어를 자동차나 계산기 같은 ‘도구’로 여긴다. 도구를 다루는 주체가 있고, 성능 좋은 도구를 손에 넣으면 일을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언어는 도구가 아니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언어로 만들어져 있다. 언어는 우리의 피이자 살이고, 뼈이자 피부다.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사고방식과 감각, 삶의 방식 전체가 달라진다.”
우치다 다쓰루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이 관점에서 봐도, 외국어 교육의 출발점은 영어 자체가 아니라 모국어다. 많이 읽고, 자기 생각을 말하게 하고, 이유를 설명하게 하는 것. 이 과정에서 길러진 사고의 힘은 언어를 바꿔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외국어 학습의 가장 강력한 토대가 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조기 영어교육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영어를 늦게 가르치자는 말이 아니다. 생각보다 영어를 앞세우지 말자는 이야기다. 아이의 언어를 키운다는 것은 단어를 늘리는 일이 아니라, 사고의 깊이를 키우는 일이다. 그 토대 위에서 외국어는 언제든 올라설 수 있다.

영어는 빠르게 시작한다고 깊어지지 않는다.


깊이 생각하는 아이는, 결국 어떤 언어로든 말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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