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를 보내며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by 세템브리니

쓰고 있던 글의 초안을 마무리했다. 제목은 임시로 『자소설』이라고 붙였다. 지난 15년 동안 기업에서 인사 업무를 하며 수많은 자기소개서를 읽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었다. ‘회사에 오고 싶은 나’를 연출한 기획 문서에 가까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글로 서류 전형을 통과하는 일은, 인사 담당자였던 나에게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 어긋남이 이 글을 쓰게 된 출발점이었다.


형식은 자기소개서를 따른다. 동시에 면접에서 실제로 나올 법한 질문을 덧붙였다. 어떤 질문은 진부하고, 어떤 질문은 지나치게 사적이다. 그러나 답변은 한 방향을 향한다. 가능한 솔직하게 썼다. 면접장에서 그대로 말한다면 분위기가 얼어붙을지도 모를 정도의 솔직함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전의 연인들, 돈과 실패에 대한 기억까지 질문의 형식을 빌려 모두 꺼냈다. 이게 내가 생각한 자기소개서다. 다만 제목을 ‘자소설’이라 붙인 이유가 있다. 내가 기억하는 장면들이 온전히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 붙들고 있던 기억을 글로 옮기면서 깨달았다. 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선택에 가깝다. 나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웠는지, 그 편집의 손길을 문장 속에서 직접 확인했다.


전체는 스무 개 남짓의 주제로 구성했다. ‘나를 만든 첫 장면’에서 시작해 ‘반복되는 일상의 의미’,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기준’, ‘나에게 돈이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나라는 사람을 거의 해부하듯 묻는다. 각 주제마다 세 개의 질문을 두었다. 질문과 답을 끊어 이어가니 분량이 길어도 호흡이 나뉜다. 한 꼭지는 약 4,500자 안팎이다. 짧은 글에 익숙한 독자들을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2,000자 안팎으로 줄일 수는 없었다. 지금의 밀도로 끝까지 밀어붙이기로 했다.


보름 전부터 출판사에 투고를 시작했다. 투고는 처음이지만 다양한 책은 오래 읽어왔다. 출판사가 지향하는 결을 대략은 안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한 곳씩, 열다섯 곳에 원고를 보냈다. 그중 세 곳에서 거절 메일이 왔다. 내용은 비슷했다. 원고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출판사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머리로는 익숙한 문장이었다. 출판 관련 서적에서 수도 없이 읽었던 그 표현을 직접 받으니 처음에는 마음이 상했다. 시간이 지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답신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라서다. 지금은 회신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여긴다.


집필 방식은 단순하다. 초고를 쓴다. 사흘에 걸쳐 한 꼭지를 완성한다. 이후 세 번 고쳐 쓴다. 그리고 브런치에 연재한다. 수요일과 일요일에 올린다. 현재 18화까지 게시했고 여섯 편이 남아 있다. 3월 중순이면 연재가 마무리될 듯하다. 이후에는 전체 원고를 다시 다듬을 계획이다. 이미 세 번이나 퇴고했지만 읽을 때마다 부족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때마다 기운이 빠진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건너뛰고 완성에 도달하는 글은 없다고 믿는다.


다음 주부터는 면접 일정도 잡혀 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인사 경력을 쌓아왔으니 비슷한 자리에서 연락이 왔다. 사실 지난 회사를 떠날 때는 책으로 먹고살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나 일 년을 지나며 그 계획이 얼마나 낙관적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럼에도 이제는 직장인보다 쓰는 사람으로 나를 정의하고 싶다. 직전 연봉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스스로를 설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자소설』이 잘되어 강의와 방송으로 이어지고, 콘텐츠로 삶을 꾸려가는 장면을 여전히 상상한다. 상상은 아직 유효하다.


초안을 끝내고 나니 헛헛함이 밀려온다. 그래서 마루야마 겐지의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를 펼쳤다. 소설가는 아니지만 창작자로 수신자의 범위에 나를 옮겼다. 그는 말한다. “홀로 시작해 홀로 끝내는 것이 예술을 추구하는 자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것이 불편하다면 직장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합니다.” 문장에서 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이 길어지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리워졌다.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직장을 떠난 내 선택과 불안을 온전히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혼자 시작해 혼자 끝내는 삶을 선뜻 감당할 자신도 없다. 나는 스스로를 예술가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창작을 통해 삶을 확장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문장을 읽은 뒤에는 자신이 없었다. 내가 과연 홀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 백 곳이 넘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생각이다. 방황으로 얼룩졌던 학창 시절을 지나 다시 제도권 교육에 몸을 담았고, 이후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에서 인사 업무를 맡아 조직 안에서 사람을 다뤄왔다. 그런 내가 자기소개서의 형식을 빌려 스스로를 해부하듯 풀어냈다는 점은 분명 낯선 결을 지닌다. 이력과 서사의 간극이 이 책의 얼굴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일을 좋아하는 성향 역시 언젠가는 책의 외연을 넓히는 힘이 될지 모른다. 그래서 면접 자리에 앉으면서도 재취업에 전부를 걸지 못한다. 아직은 글이 열어둘 가능성을 스스로 접어버릴 수 없다.


회사를 나와 글을 쓰겠다고 나선 지 일 년이 지났다. 첫 작품이라 부를 『자소설』도 마무리에 다가섰다. 이제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예측하기 어렵다. 예전 직장 상사였던 강원국 작가가 한 말을 떠올린다. “글을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계속 쓸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실제로 일어나기를 기다려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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